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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도쿄 라멘탐방기

불이 나도 멈출 수 없는 라멘 지로(ラーメン二郎) 신주쿠 오타키바시도오리점(小滝橋通り店)과 그 방계들

by 대학맛탕 2024. 5. 31.

엊그제 라멘집에서 불이 났는데도 손님들이 나가지 않았다는 뉴스가 돌길래 그냥 찌라시인가 했는데, 오늘 그 뉴스가 공중파를 타고 있었다.
 
 

 
 
헌데 그 라멘집이 라멘 지로 중 (ラーメン二郎) 에서 유일하게 가 본 신주쿠점이라는 것이었다!
➡ 포스팅을 쓰는 도중 불이 난 곳은 라멘 지로 가부키쵸점이고 내가 간 곳은 같은 신주쿠의 오타키바시도오리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라멘 지로는 아무리 중심가에서 먼 지점을 가도 줄이 너무 길다. 그 근방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지 되려 더 줄이 더 길다. 도쿄에 살면서 여러 라멘 지로를 찾아갔으나 평일 3시 이럴 때에도 20명 이상 줄 서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부 실패했다. 평소에도 줄을 서느니 그냥 다른 걸 먹는 편이라 20명 이상의 줄은 그냥 논외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앞에 찍힌 분의 포즈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라멘 지로 센가와점(仙川店)에 줄을 각오하고 가 볼 생각도 해 봤지만, 리뷰를 보니 렝게(れんげ, 국물을 먹는 커다란 숟가락) 도 놓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뭐 이런 가게가 있나 하고 스킵했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늦은 저녁시간, 신주쿠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길에 라멘 지로 신주쿠점 앞을 무심코 스쳐지나가게 되었다. 항상 20명 이상의 줄이 있어서 스킵했지만, 그 날 따라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낮에는 대학생들이 장사진을 치루고 있어서인지 보통은 라멘집이 붐비는 이 시간대가 은근히 구멍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때다! 하며 30분 정도는 각오하고 줄을 섰다. 사람이 적다 해도 가게 바깥에 10명 정도 줄을 서 있는 것은 기본. 게다가 가게 안에서도 줄을 서고 있어서 실제로는 더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먹는 사람들과 거의 근접한 거리에서 등을 딱 대고 서 있기 때문에 먹을 때의 압박감도 엄청날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오고, 식권 자판기 앞에 선 나는 언제 또 올 수 있겠냐 하는 마음에 大二郎(だいじろう?おおじろう?누가 읽는 법 좀 알려주세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려서 카운터에 앉아 점원에게 식권을 건네자, 
 
'이거 다 드실 수 있겠어요?'
 
하고 물어왔다. 
 
압박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온 의외의 질문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이미 식권도 뽑은 마당에 뭘 어찌하리 하는 마음에
 
'네 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라멘이 나왔다. 

 
그릇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사진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지만, 그릇이 딱 나왔을 때 체감되는 크기는 세숫대야 냉면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지로 스타일 라멘은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어서 대략 어떤건가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커도 너무 컸다. 
 
보통은 잔뜩 쌓아올린 모야시로 배를 채운 후 면은 그 사이 약간 불은 식감으로 국물과 함께 천천히 즐기는 편인데, 일단 밑에 가라앉아있는 면의 양이 어느정도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면을 먹기도 전에 양에 압도되어 면을 먹기 시작할 즈음부터 이미 배가 꽉 찬 느낌이 되었다. 이 큰 라멘 그릇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눈앞에 있는 점원이 아까 '다 드실 수 있겠어요?' 물을 때의 그 눈초리가 생각나며 점점 먹는 속도가 느려졌고, 결국은 면을 반쯤 남긴 채로 '잘 먹었습니다' 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신주쿠점에는 다시 방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먹어서 객관적인 감상은 불가능하나 라멘의 맛 자체가 크게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라멘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과 특유의 등기름 육수맛은 확실히 지로만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일본여행을 와서 '여기가 그렇게 맛집이래~' 하면서 들어갔을 경우 그 기대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알기쉽게 표현하자면, 불이 나도 나가지 않고 먹을 정도로 황홀한 맛은 아니다.
 
다만 그 이후 지로 스타일 라멘이 쿨타임 걸리듯 정기적으로 생각나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먹는 것을 보면 요코하마 이에케(横浜家家) 만큼 그 장르적 특성은 분명하다. 살인적인 웨이팅을 버텨낼 체력이 있다면 꼭 한 번은 맛보기를 권한다. 大二郎는 시키지 말고.
 
 
라멘 지로 신주쿠 오타키바시도오리점은 신주쿠 북쪽의 세이부신주쿠(西武新宿) 역에서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있다.
 

 
 
지난번 라멘 탐방기에서 소개한 몽고탄멘 나카모토(蒙古タンメン中本) 신주쿠점에서 기어가도 될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나카모토에 가 보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지로의 방계 라멘집들

지로 스타일 라멘을 일본에서는 지로 인스파이어(二郎インスパイア)라고 한다. 영단어 inspire의 뜻 그대로 '지로에서 영감을 받은' 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짝퉁 지로인데, 그렇다고 다 지로만 못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오히려 요코하마 이에케보다 그 이후의 바리에이션이 다양해져서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다. 재미있는 건 지로의 단점인 '지저분해 보이는 가게 내부'도 그대로 물려받은 곳이 많다는 점이다. 
 
인스파이어는 딱 들어서 좀 직관적이지 않으니 지로의 방계 라멘집이라 표현하면 적절할 듯.. 하나 지로에서 수행하여 독립한 것이 아니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애매하다. 음식의 유전자가 전파되었다는 의미로 그냥 방계를 혼용하도록 하겠다.

급하게 하드에서 찾아낸, 가 봤던 지로 방계들을 사진으로 소개하겠다.(발견 시 계속 추가)
 

타치카와의 지역 체인 타치카와 마시마시(立川マシマシ)

 
타치카와 역 남쪽출구의 어반 호텔 타치카와 지하에는 여러 라멘집이 모여있다. 그 중에 한 곳에 점포가 있고, 고쿠분지에도 분점이 있다. 거대한 차슈가 만족스럽다.

 
이건 지로 인스파이어 공통인데,(정작 지로에 있는 지 모르겠다.) 마늘 양과 등기름, 무료 야채 토핑의 양을 주문할 때 물어본다. 전부 보통으로 하면 두번째 것이 나오니 자신이 있는 여행객은 마시 이상으로 시켜볼 것.

 
 
 

 
타마 지역의 체인점 라멘 다다(ラーメン田田)

 
타마 지역에만 있고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체인점. 기본 라멘도 좋고, 기간한정으로 어레인지한 라멘이 항상 있다. 다른 라멘집과의 콜라보 메뉴를 내는 것도 특징. 사진은 생선육수로 맛을 낸 니보시 라멘.

 
야채 마시마시(野菜マシマシ)를 시키면 이렇게까지 올려준다는데, 무서워서 야채 마시(이것의 반 중량) 만 시켜봤다.

 
 

쵸후에서 하시모토까지 걸친 체인점 郎郎郎(さぶろう)

二郎(じろう)는 주로 둘째에게 붙이던 이름인데, 3남에게 붙이는 三郎(さぶろう)를 비틀어 표현한 듯. 프랜차이즈 느낌으로 지로를 재현한 맛에 간장이 좀 강하지만 가게가 비교적 깨끗하고 챠슈가 튼실해서 자주 갔었는데 하시모토점과 쵸후점이 다 폐점했다. 구글 검색에서도 잘 안 나온다.
 

 
 
 

신예 인스파이어, 라멘 부타갱(ラーメン 豚ギャング)

 
후쿠오카의 지로 인스파이어에서 시작하여 도쿄에 1호점을 냈다. 보통은 간장 국물을 쓰는 지로 계열과 달리 돈코츠를 푹 우려낸 육수가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