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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도쿄 라멘탐방기

도쿄도 쵸후 시 고쿠료쵸(国領町)의 이시카와야(いしかわや)

by 대학맛탕 2024. 5. 28.

 
지난글보기<<< 도쿄도 스기나미 구 카미오기(上荻)의 하루키야(春木屋) 오기쿠보 본점
 
2019년, 지난 번 소개한 시바사키테이(柴崎亭)가 있는 츠츠지가오카 역에서 각역정차(各駅停車)를 타고 두 정거장 뒤인 고쿠료(国領) 역에 이시카와야(いしかわや)라는 새로운 라멘집이 오픈했다.
 
역 앞이긴 하지만 상가건물 1층 통로라는, 라멘집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은 위치에 있었으나, 밖에서 봐도 엄청 세련된 스타일의 라멘집이 보여서 무작정 들어갔다.

처음 주문했던 아지타마 중화소바(味玉中華そば). 로스트 비프보다 조금 더 약하게 익혀낸 매력적인 챠슈에 아지타마까지 해서 750엔. 멘마도 무슨 레고 블럭마냥 튼실하고, 무엇보다 국물이 담백하면서도 필요한 맛은 다 내는, 한 젓가락에 '여기 좀 하는데?' 하는 인상을 주었다.

 
 첫 인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한 달도 안 되어 재방문했다. 가게의 대표 메뉴는 맛보았으니 조금 특별한 것으로 해 보고자 주문한 이시카와 블랙(いしかわブラック, 750). 블랙이라니 신라면 블랙처럼 프리미엄 같은건가? 하면서 한 젓가락 해보니, 코끝이 찡해지는 후추맛이 밀려들어왔다. 정갈한 겉모습에 비해 꽤 묵직한 펀치는 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서(M?) 이후에도 자주 먹는 메뉴가 되었다.

 
 
그 다음 방문했을 때는 라멘을 주문하니 今日もお疲れさまでした(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치비 나마비루(꼬마 생맥주)를 라멘이 나오기 전에 서비스로 주었다.

 
아니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이런거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데 허허.. 하며 한 모금 들이키고 나니, 그제서야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 시바사키테이(柴崎亭)랑 비슷한 것 같은데?'
 
꼬마 생맥주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시바사키테이에서밖에 본 적이 없고, 주위를 둘러보니 세련된 인테리어 역시 꽤 닮은 부분이 있었다.

그 날 주문한 하치오지 라멘(八王子中華そば, 750엔)이 나오니 그 추측은 점점 더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시바사키테이의 양파 중화소바(玉ねぎ中華そば)와 상당히 비슷한 비주얼에, 국물맛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꽤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교를 위해 시바사키테이의 양파 중화소바 사진을 하나 가져와 봤다. 그러고보니 로스트 비프같은 챠슈 역시 상당히 비슷했다.

 
이렇게 혼자 끙끙 앓아도 별 수 없어서 바로 물어봤다. 혹시 여기 시바사키테이의 계열점이냐고. 카운터의 점원 분 은 살짝 웃으며 계열점은 아니고 시바사키테이에서 2년 수행한 점원이 독립한 가게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계열점이냐고 직접 묻다니 돌이켜보면 완전 스트레이트한 한국식 화법. 그 덕에 궁금증은 바로 풀리고 점원 분은 상세하게 라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일본에 있다보면 일본식 화법이 점점 몸에 익어가지만, 가끔씩 한국식 화법이 잘 통할 때도 있다.
 
함께보기>>> 도쿄도 쵸후 시 츠츠지가오카(つつじが丘)의 시바사키테이(柴崎亭)

도쿄도 쵸후 시 츠츠지가오카(つつじが丘)의 시바사키테이(柴崎亭)

지난글보기첫 번째 라멘 탐방기에 이어 다시 쵸후 시로 돌아왔다.먼저 이 깔끔한 비주얼의 완탕면을 보자. 마치 봉지라면 표지를 보는 듯 한 이 정갈함.  2017년, 일본에 온 지 몇 달 안 되었을

willucy.tistory.com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양파를 잔뜩 넣은 이 메뉴를 솔직하게 '八王子(하치오지)'를 붙여서 부른다는 점이었다.

양파를 저며서 쫙 깔아주는 것은 먹어본 사람은 모두 아는 하치오지 라멘 특유의 스타일인데, 시바사키테이는 그냥 양파 중화소바라고 하고 있다. 평양냉면을 '메밀면수 냉면'이라고 하면 조금 기만적이지 않은가.
 
또 다른 날 먹었던 하치오지 중화소바. 빛깔 때문에 짜장면 같은 색깔이 되었는데, 그만큼 국물이 꽤 진하다. 

 
 
당시 살던 곳이 츠츠지가오카 역보다는 고쿠료 역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후 이시카와야는 가장 자주 가는 라멘집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바사키테이는 기간한정 메뉴가 많아도 가게의 기본 스타일 내에서 약간 변형한 패턴이 많은 반면, 이시카와야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었다.
 
가장 심플한 시오 중화소바(塩中華そば, 600엔). 미스터 도넛에서 간편식으로 팔기 때문에 종종 먹는 시오소바를 본래의 요리로 만들면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게다가 굵은면!(太麺, ふとめん) 챠슈와 아지타마, 멘마까지 그대로라 다른 메뉴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아마도 술 먹은 다음날, 메뉴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 주문해봤던 가물가물한 재첩 시오 소바. (しじみの塩そば, 900엔) 재첩을 우려낸 국물의 시원함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지만 기본 메뉴에 비하면은 포스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위에 소개한 이시카와 블랙에 아지타마를 추가한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메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메뉴.

 
후추 양이 이 정도로 상당히 강렬한 맛을 자랑했다. 

 
이건 아마도 하치오지 블랙(八王子ブラック, 800엔). 하치오지 중화소바의 블랙 버전인데,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후추의 양이 장난이 아닌데다 산초의 알싸한 맛까지 난다. 이쯤 되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맛은 아니지만, 한두달 에 한 번씩은 생각나는 강렬한 펀치.

 
삿포로 미소 라멘(札幌味噌らーめん, 900엔). 메뉴 중 유일하게 중화소바가 아니라 라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미소라멘은 차별화된 맛을 내기가 힘든 편이라(덕분에 인스턴트 라멘에서 눈속임하기는 좋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주문했는데 역시나 좋은 의미로 기대를 배반하는, 여기에만 있는 미소라멘이었다.
 
미소라멘 집에서는 매운 미소라멘(辛味噌ラーメン)을 함께 파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런 선택지를 손님에게 맡기지 않고 고춧가루로 포인트를 주어 독특한 개성을 살리고 있다.

 

 
완탕 중화소바(わんたん中華そば). 이건 또 챠슈가 로스트 비프마냥 나왔다. 써 놓고 보니 로스트 비프나 훈제나 그게 그거.

 
윗 사진은 색깔이 좀 이상하게 나왔는데, 치즈가 풀린 것처럼 보였던 하얀 것은 바로 이 완탕만두였다. 깔끔한 맛과 함께 양도 푸짐히 즐기고자 하면 이걸 선택하자. 기본 라면도 결코 양이 적은 것은 아니니 소식하시는 분들은 주의.


 
이시카와야는 케이오 선(京王線) 고쿠료(国領) 역에 있다. 고쿠료 역은 급행이 서지 않는 역이라 급행 또는 구간급행을 타고 위에 이야기한 츠츠지가오카 역에 내려서 갈아타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각역정차(열차에는 各駅라고 쓰여있다.)를 타고 가야 한다. 특급(特急)이나 준특급 (準特急) 을 타면 두 역을 다 지나쳐 바로 쵸후 역으로 가버리므로 주의. 
 
 

 
 
오랜만의 도쿄 라멘 탐방기는 여기까지.
다음에는 고쿠분지 ~ 하치오지 지역에만 걸쳐 있는, 뽀얀 국물의 사리곰탕면 맛 라멘집 두 곳을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