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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아직 남은 도쿄 이야기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 세 번째 정주행

by 대학맛탕 2024. 5. 10.

출처:FOD 결혼 못하는 남자 소개 페이지(https://fod.fujitv.co.jp/title/4490/)

 
연휴 때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를 다시 봤다. 이걸로 3번째 정주행.


지난번 타마테크(多摩テック)이야기를 해서 기억에 남았던 건지, 최근에 본 부적절에도 정도가 있어!(不適切にもほどがある!)에서 요시다 요우(吉田羊)를 보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넷플릭스를 켰더니 리스트에 뜨는 것이었다.
 

20대와 40대가 함께 공감하는 드라마

2000년대 초반 친구들이 케이조쿠(ケイゾク)를 한참 볼 때나 군대 갔다와서 고쿠센(ごくせん)이 인기있을 무렵도 왜인지 일본 드라마와는 연이 없던 터라 파견의 품격(ハケンの品格)과 노다메 칸타빌레(のだめカンタービレ) 정도가 본 드라마의 전부였다. 그리고 2008년, 실제 방영보다 2년이 지나서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이 작은 화면으로 열심히도 봤더랬다. 당시엔 '스마트폰'이 보통의 핸드폰과 다른 무엇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시절.
 

 
 
40대에 다시 봐도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자극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음이 너무 궁금하고, 코믹한 장면이 여럿 나와도 만화같지 않다.

활발히 콘카츠(婚活)를 하는
20대와 독신생활이 익숙해진 40대의 고민이 교차되는 터치도 좋았다. 그래서 20대였을 때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아베 히로시(阿部寛)가 연기한 주인공의 캐릭터가 워낙 독특해서 그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다른 인물들도 결혼과 나이듦에 있오 저마다의 고민을 보여주면서 엮어가는 부분에서 여러모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쿠와노의 동생으로 출연한, 90년대 아이돌 그룹 COCO의 멤버였던 미우라 리에코(三浦理恵子)가 출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보컬로서도 워낙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특징이었는데, 드라마에서의 목소리와 말투도 그와 비슷했다.

오른쪽 아래 분

 

드라마로 보는 2000년대의 일본 풍경


드라마도 정말 재밌지만,  2002년 이후 가 보지 못했던 2000년대의 일본 풍경을 볼 수 있어서 푹 빠져들어 봤던 것 같다.

쿠와노의 건축 사무소는 파워맥이 구비된 세련된 구축 건물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맨션은 드라마의 작위적인 모습이 아닌 일본의 생생한 생활상이라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다.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폴더폰 등을 보면 와 2000년대의 그 시절이구나 하며 추억에도 젖게 한다.
 
쿠와노가 항상 들르는 렌탈 DVD샵은 이제 많이 사라져서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2018년의 더운 여름날, 고탄다(五反田)역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김에 주변을 둘러보고자 했다. 강가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다 묘한 기시감이 들어서 결혼 못하는 남자 로케이션 지역을 찾아보니 쿠와노가 살던 맨션음 역시 고탄다가 맞았다.
 
10년 넘게 뇌리에만 남아있던 타마테크(多摩テック)는 아래의 이유로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의 좋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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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닛테레 금요 로드쇼(日テレ金曜ロードショー)에서 지상파 최초로 스즈메의 문단속을 방영해서 드디어  보게 되었다. 중간에 효고현 고베 시의 니노미야스지 상점가(二宮筋商店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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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보니 너무나 익숙한 곳이 로케지역으로 나오는 것을 알게 됐다. 3화에서 미치루와 나츠미가 쇼핑을 하다가 괴상한 모자를 사는 쿠와노를 발견하는 씬은 타마 뉴타운 서쪽의 미나미오오사와(南大沢)에 있는 미츠이 아울렛 파크(三井アウトレットパーク)다. 
 
저렴한 가격에 옷을 살 수 있는것도 좋지만 아울렛을 너무 예쁘게 꾸며놓아서 옷을 살 일이 없을 때도 종종 나들이를 가곤 했었다.

 
 
극중에는 잠시 쇼핑을 하러 나갔을 때 목격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주인공들이 사는 고탄다에서 40킬로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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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 뉴타운 서부 지구의 미나미오오사와(南大沢) - 서쪽 편

본 블로그에서 직접적인 글을 쓴 적은 없지만 몇 번이고 언급했던 타마 뉴타운(多摩ニュータウン). 드디어 그 첫 포스팅을 올린다.  타카하타 이사오의 걸작, 평성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 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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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는 사랑입니다

쿠니나카 료코(国仲涼子)가 분한 미치루가 키우는 개 켄쨩(ケンちゃん)이 퍼그인 것도 챠밍 포인트. 상황에 맞는 연기가 일품이라 일본에서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검색하니 켄쨩 최근, 켄짱 죽었다, 켄짱 오이 등등 다양한 연관검색어가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18년이나 지났으니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잘 살고 있겠지.
 

 
 
세상에 DVD까지 발매됐었다 ㅋㅋㅋ

 
 
중2때부터 6년간 퍼그를 키웠기 때문에 퍼그는 정말 각별한 견종이다. 키우던 퍼그와 켄쨩이 너무 닮아서 몇 번이고 재생을 멈춘 채 보기도 했었다.

 
퍼그를 키워 본 사람만 알겠지만, 퍼그 중에서도 잘생긴 퍼그와 못생긴 퍼그가 있다. 이 구도가 되었을 때 얼굴모양이 딱 이쁘게 잡히느냐 아니냐로 판단 가능하다.

 
축 늘어질 때와 달릴 때 얼굴형태가 수시로 변하는 것 역시 퍼그의 매력. 

 
쿠와노의 베란다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켄짱의 포즈 역시 퍼그가 자주 하는 행동이자 챠밍 포인트다. (요건 드라마의 한 장면)
 

 
DVD 살까 말까 급 고민 시작.
 

의외였던 조연 두 사람의 관계

언제나처럼 너무 돌아갔으니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와서, 2019년엔가 나온 시즌2도 너무 재밌게 봤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너무 이질적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로 시즌1 못지않게 재밌었다. 그 이야기는 시즌2를 또한번 정주행한 뒤 풀어봐야겠다.
 
다 보고 뭔가 아쉬워서 시즌1을 13년만에 다시 봤는데, 40대가 되어서 보니 20대에 볼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주인공들이 '고독함'을 느끼는 묘사에 더욱 공감이 갔고, 자식들과 함께 살고싶지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실버타운에 들어가고자 하는 쿠와노 어머니의 모습도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두번째 볼 때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극중에 나오는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인물이 부부라는 사실이었다. 쿠와노의 비즈니스 파트너 사와자키 역으로 나오는 타카시마 레이코(高島礼子)와 매 화마다 '카네다 업데이트했어!'로 등장하는 바람둥이 카네다 역으로 나오는 타카치 노보루(高知東急, たかちのぼる) 가 실제 부부였던 것이다.
 
타카시마 레이코가 맡은 사와카키는 이지적인 일본 여성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그녀가 구사하는 비즈니스 일본어는 정말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딕션을 자랑하니 여성의 경우에는 그대로 따라해도 좋을 정도.

 
타카치 노보루가 연기한 카네다 역시 조연급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카네다 홈페이지의 묘한 허당끼와 그에 집착하는 쿠와노에게도 공감이 가고, 바에서 만날 때마다 쿠와노에게 인사 후 여자에게 들이대는 능청스런 연기는 저 사람은 정말 저럴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다. 쿠와노에게도 시청자들에게도 밉상에서 점점 호감으로 바뀌어가는 신기한 캐릭터.
 

 
그런데 검색을 하면서 타카치 노보루가  마약류를 소지한 채 30대 여성과 함께 러브호텔에 있다가 체포되었고, 이후 유치장에 있는 상태에서 이혼 신고서를 타카시마 레이코에게 보내면거 결혼 19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드라마에서 모든 것이 정반대라고 봐도 될 정도였던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도 신기했는데, 드라마의 이미지가 그대로 현실이 된 것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작업 BGM으로 손색없는 OST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는 게 잘 안되서 언제나 노동요보다는 작업 BGM을 찾아서 듣곤 한다. 골든위크가 끝나서 집중이 너무 안되는 차에 혹시 있을까..? 하며 유튜브 뮤직을 검색해보니 시즌 1, 2의 OST가 있었다! (유튜브 뮤직 링크)
 
트랙명 하나하나가 드라마의 장소나 대사를 을 떠올리기 쉽게 되어 있어서 아 이거 거기구나 하기도 알기 쉽다.

 
드라마 첫 장면부터 나오는 휘파람 소리의 그 곡은 곡명이 '결혼 못하는 남자' 였다. 배경이 초여름이라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약간 습하고 더운 분위기가 흐르지만,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휘파람이 이루는 하모니에 기분은 마치 남국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악기가 클래식이라서 톤은 다르지만 일상물 특유의 완급조절은 아즈망가 대왕 OST가 떠오르기도 한다.
 
약간 의문을 자아내는 분위기의 BGM도 있다. 스타카토 연주를 하는 이런 곡조를 뭐라고 하는지 너무 궁금한데.. 5번 트랙 켄쨩과 타츠오(ケンちゃんとタツオ)이니 아시는 분이 계시면 덧글 부탁드린다.
 
전체적으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BGM같은 악기 구성에, 너무 시끄럽거나 졸리지 않은 적절한 템포가 작업 BGM으로는 최적이다. 당분간은 계속 귀에 꽂고 일할 듯.
 
 

세 번째의 감상

이번에 다시 볼 때는 또다른 감상 포인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쿠와노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삐뚤어진 표현으로 내뱉는 것을 보면서 내내 웃었지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40대 남자들이 그렇게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자기가 관심있는 이야기에는 열중해서 시작하면 1절로 끝나지 않고, 자존심만 커져서 사과도 잘 못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서 상대를 내려다보려고 하고.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결혼 못하는' 으로 축약되어 있지만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면서 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리고 외로움. 딱히 이번에만 느낀 감상 포인트는 아니지만 혼자라서 좋을 때가 있는 반면 혼자라서 외롭고 고독한 감정이 교차하며 결혼이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은 1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2010년대를 지나며 결혼 건수가 드라마틱하게 낮아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더.
 
이렇게 우리내 삶의 많은 부분이 드라마에 투영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주말에는 아무래도 시즌 2까지 다 봐버릴 것 같다. 시즌 1 마지막 장면에사 쿠와노와 하야사카가 사이좋게 밥을 먹으러 맨션으로 들어가는 그 장면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다.
 
 
P.S.
등장인물들의 사진을 검색하다가 하야사카 역의 나츠카와 유이(夏川結衣)가 모델 출신으로 1992년에 데뷔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P.S.2
글 쓰면서 결국 켄쨩의 DVD를 주문하고 말았다. DVD의 코멘터리에 의하면 그 해 방송대상에서 특별상을 받고, 한동안 퍼그 붐이 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