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볼일이 있어 나섰다가 급히 한 끼 때울 식당을 찾던 중 오랜만에 사이제리에 가기로 했다. 언제나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메뉴판을 펼친 뒤, 가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함바그 스테이크. (400엔) 달걀 후라이도 번듯하게 올라가 있다.
닭고기 디아볼라풍 소스 구이(500엔). 닭고기는 보기보다 훨씬 두껍고, 곁들여진 감자와 옥수수까지 먹으면 그냥 이걸로 한 끼가 될 정도.
푸치 포카치아 4개. (150엔) 이탈리아식 빵이라고 한다.
팝콘 쉬림프. (300엔) 사이제리야의 대표 메뉴.
콘크림 수프(150엔). 오뚜기 쇠고기 스프 야채스프 그 맛 아니고 어릴때 경양식집에서 먹던 그 맛이다.
드링크바(200엔)
그렇다. 1도 변하지 않았다.. (낚시 죄송)
더불어 괄호 안의 가격은 전부 세금포함이다.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은 스카이락 계열의 가스토 (ガスト) , 죠나상(ジョナサン)이 가장 많고, 한국에도 있었던 코코코스(COCO'S)나 씨즐러(Sizzler)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들도 1000엔 ~ 1500엔 사이로 만족스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200엔 정도에 드링크바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레스토랑이지만 역시 사이제의 이 무지막지한 가성비에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이제리야의 놀라운 점은 그냥 저렴한 것이 아니라, 맛있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가격을 보면 그냥 레토르트 포장된 걸 북 찢어서 데워서 나올 것 같은데, 솔직히 어느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맛있다.
메뉴판의 다른 메뉴도 한 번 살펴봤다.
밀라노풍 도리아(300엔). 이렇게 쌌나? 혹시 코로나 이후 더 내린가!?!?
에스까르고 오븐 구이(400엔). 항상 '이거 뭘로 만든거지?' 하며 먹지만 맛있다.
디저트도 편의점보다 싸다.
사이제의 진가는 사실 와인에도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죄다 오후에만 영업하던 시절, 술 좋아하는 지인과 사이제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이야기나 나누자 하고 만난 적이 있다. 겸사겸사 와인을 시켰는데, 이게 가성비가 미친 것이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맛있기까지 하다.) 결국 저 데칸타 500미리짜리를 몇 개나 시켜 마시다가 만취상태로 헤어졌다.
나처럼 만취상태가 된 사람이 많았는지, 매그넘이라는 병 와인까지 메뉴에 추가됐다. 이것도 한 병에 1,100엔.
사이제에 와놓고 정작 파스타는 메뉴도 메뉴판도 하나도 올리지 않았지만, 대부분 500엔 전후로 맛있는 파스타가 나온다.
계산하러 가면서 그래도 이렇게 마구 시켰으니 3000엔쯤 나오려나? 하면서 결제 시작...하니 1800엔 허허허허.. 그저 감사합니다.
계산을 기다리는데 포스에 공지가 붙어있길래 뭐지? 하고 보니 미츠이 스미토모 카드의 터치결제 7퍼센트 환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게 생각보다 엄청 많이 붙는다.) 아니 벼룩의 간을 떼먹지 이렇게 싸고 맛있게 먹고 뭘 포인트까지 환원받나 하고 기분좋게 가게를 나왔다.
다른 이야기로, 엊그제 맥도날드 서버 장애로 일본 맥도날드 전 지점이 영업정지되었을 때 트위터 공식계정에서 사과 트윗을 올렸다. 뭐만 터지면 불타는 트위터라 멘션을 살펴보니
괜찮아! 항상 고마워!
가끔은 좀 쉬어!
마침 잘됐으니 운동이나 좀 하고 나중에 더 먹어야지
가끔 기계가 고장도 나고 그럴 때도 있는거지
항상 신세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맛있는 버거 감사합니다.
감사와 응원의 멘션 뿐이었다. 맥도날드가 떠받치고 있는 지역 인프라(식사, 휴게공간, 공부 공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하지만 그 맥도날드도 코로나 이후 3번이나, 그것도 꽤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그런 상황에도 사이제의 가격은 그대로인 것이다. 사이제에 전산장애가 발생하면 아마도 더 따뜻한 감사의 메시지가 올 거라 믿는다. 지난달에 2년만에 한국에 갔다가 그 사이 또 치솟은 물가에 적잖이 놀라고 돌아온 터라 그 감상이 더해진다.
물론 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고, 모두가 너무 저가만 고집하면 모두의 생활이 하향평준화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이렇게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가게가 선택지로서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커피 말고 식사도 말이다.
일본여행이라면 모처럼 해외에 나왔는데 이런 저렴한 식사는 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턴이 한 번 빈다면 사이제리야에 가 볼 것을 추천한다. 500ml 데칸타 와인(400엔)과 함께.
'도쿄 이야기 > └ 아직 남은 도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쿄 부동산보다 많이 오른 산토리 위스키 가쿠빈(角瓶) 가격 (5) | 2024.06.18 |
---|---|
규동을 먹는다면 요시노야(吉野家) 네기타마 규동! (1) | 2024.06.16 |
일본에서 소맥이 그리울 땐? 홉삐(ホッピー) 세트 (0) | 2024.05.14 |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 세 번째 정주행 (4) | 2024.05.10 |
스시로 원신 콜라보 메뉴! (2) | 2024.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