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주 주말 테레타마(テレ玉, 사이타마 테레비) 에서 80년대 명작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주는 터에, 주말 저녁은 TV앞에 앉아있곤 한다. 올해 봄부터 기동전사 Z건담을 다시 방영해서 오랜만에 대사 하나하나를 덕스럽게 음미하며 보고 있다.
이미 몇 년 째 반복해 온 루틴인데, 방송 중간에 나오는 사이타마 지역광고 중 항상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쥬만 고쿠만쥬. (十万石饅頭). 전에 란마 1/2을 매주 볼 때 나와서 이제는 우마이, 우마스기루! 가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되었다.
골든위크 중 앞으로 뚝 떨어진 화요일 휴일. 예정은 없고 날씨는 좋아서 무작정 쥬만 고쿠만쥬를 먹어보러 사이타마로 떠나볼까? 하덛 월요일 밤 쥬만 고쿠만쥬 판매점을 지도에서 찾다가 오래전에 즐겨찾기 해 둔 곳을 발견했다.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 시(埼玉県所沢市)에 위치한 카도카와 무사시노 박물관.(角川武蔵野ミュージアム)
일본 최대의 출판/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카도카와에서 만든 박물관이라니 구경할 것이 많고, 구글 지도에서 보이는 건물 자체가 너무 인상적이라 간만에 멀리 나들이할 결심이 섰다. 카나가와 현(神奈川県)은 상당히 자주 갔지만 사이타마 현(埼玉県)은 은근히 가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묘한 두근거림도 있었다.
처음 내려보는 JR 히가시 도코로자와(東所沢) 역.

작은 역인데도 최근 새단장을 했는지 아주 세련된 역사가 인상적이다.

카도카와 박물관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동네 한복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 이 차분한 동네와는 상당히 이질적이고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가는 길에 카도카와에서 운영하는 작은 카페도 있었다. 설마 이름만 같은 건 아니겠지?

주택가를 빠져나오니 오른쪽엔 커다란 공원이 있고, 왼쪽에 거대한 운석이 하나 떨어진 듯한 풍경이 보였다.

지도에서 보고 압도되었던 그 운석같은 본관 건물. 나중에 알았지만 왼쪽에 보이는 상점가 건물은 더 크다.

입구에는 무슨 나무 무적이 잔뜩 걸려있었다. 신사인가?

순산기원, 소원성취, 걸그룹 홍보(?) 등이 붙어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웅장한 건물. 감수를 맡은 건축가 쿠마 켄고(隈研吾)에 의하면,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지층에서 고대의 화산 적층물이 지표면으로 솟아나오는 이미지를 건축화했다.' 고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었다. 아무튼 SF영화의 첫 장면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 웅장함은 확실하다.

1층 로비.

각국의 언어로 가이드도 준비되어 있다.

일본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 아니 TV에도 엄청 자주 나오고, 여기 써있는 약력을 보니 5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 관장까지.. 몸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1층은 무사시노 북 파크로 도코로자와 근처의 자료를 담은 책과 전시가 여럿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장 사랑하는 강 노가와(野川).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봤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두리번하다가 고쿠분지(国分寺) 역을 겨우 찾았다. 내가 주로 다니던 후츄 시(府中市)의 노가와 공원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1층은 크게 볼 것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니 단체관광 그룹이 몰려들었다. 이 곳의 메인이 되는 책장 극장(本棚劇場)는 4층인데, 5층이 비어있으니 먼저 가 보시라는 권유에 먼저 5층으로 올라가 봤다.
박물관 페이지에서 얼핏 보았던 그 책 많은 풍경. 일본 서점에 가면 출판사별로 책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봐야 할 지 모를 때가 많은데, 카도카와의 책만 전부 모아놨으니 도리여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여기저기 의자가 있어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일본 추리문학의 대가 요코미조 세이시(横溝正史)의 소설들이 가운데에 보인다.

소년탐정 김전일(金田一)가 항상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라 외치는 그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우스케(金田一耕助)가 활약하는 이누가미 일족(犬神家の一族). 영화 포스터로 유명한 그 거꾸로 잠긴 시체가 그대로 표지가 되었다.

만화/라이트노벨 도서관은 1층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에 TRPG특집 서가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술사 오펜, 슬레이어즈의 TRPG북. 원래 이런 TRPG 북으로 나왔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왼쪽에는 의외로 가장 많은 천지무용의 RPG 시리즈.

패미통을 발행하는 엔터브레인에서 출판한 TRPG 책들.

RPG북이라는 건 아마도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게임북 같은 걸까? 살짝 들춰보니 시작 시나리오와 인덱스가 매겨진 페이지가 여럿 있었다.정확히는 모르겠다. 마법소녀 프리티 사미, 마법학원 루나, 기동전함 나데시코 등 다양한

띠지에 있는 MAGIUS를 찾아보니, Multiple Assignable Game Interface for Universal System의 약자로, 범용적 시스템이 복합적인 할당이 가능한 게임 인터페이스라고 한다. 90년대스러운 조어다.
후지미 드래곤 북(富士見ドラゴンブック)이라는 출판사에서 고안해 낸 시리즈로, 솔로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모두가 가능하다고 한다. 슬레이어즈가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하니 오래전에 얼핏 들은 기억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5층은 사진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서 오래 보지는 않고 4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계단이 또 볼거리다.

아, 펄프 픽션은 이런 책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었구나.

4층까지는 세 번 정도 이런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4층으로 내려오니 휘황찬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박물관 페이지에서 거대한 서가가 있다는 건 봤었는데, 이런 쇼도 있는 줄은 몰랐다.

오오~ 하며 보려고 하니 금새 종료. 영상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렇지 상영종료 후의 서가 역시 엄청난 광경이다. 4층이 바로 책장 극장이었던 것이다. 20분쯤 뒤에 다시 상영한다고 하니 일단 다른 구역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종으로 높게 쌓아올린 것과 상반되는 듯 횡으로 쭉 늘어선, 책으로 가득한 광경.

카도카와의 기념품을 모아둔 곳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잔뜩 있는, 살아있는 책 박물관이었다.

각 구역에는 인상적인 조형물과 아이들을 위한 시설도 있었다.

영화쪽 책을 보다가 발견한 매트릭스 스토리보드.
일본에서 일하게 된 뒤에는 스토리보드(絵コンテ)를 볼 때가 종종 있어서, 언젠가부터 스토리보드 책을 보면 무조건 멈추고 펼쳐본다.

모두가 아는 그 장면. 헐리우드 영화는 이렇게 디테일 넘치게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걸까?

홉스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철학자들 맞겠지?

사해문서! 하고 놀랐지만 에반게리온에서 들어만 보고 뭔지도 몰랐던 그것.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성서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원 전 2세기, 그것도 동굴에서 발견되었다니 에반게리온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코즈믹

중간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절단 비너스(切断ヴィーナス)라는 사진집. 의수를 사용하는 모델들의 사진들만 모았다.

다른 서가에 있던 쿠모가게? 거미가게? 하다가 아 구멍가게 ㅋㅋ 했던 책.

우키요에에 그려진 동물 특집의 상어... 가 아니라 고래였구나.

이 책 천국의 정식 명칭은 에디트 앤 아트 갤러리로, 9개의 테마별로 책을 모아뒀다.
1. 기억의 숲으로(記憶の森へ)




2. 세계역사 문화집(世界歴史文化集)


3. 어려운 책들(むつかしい本たち)
むずかしい가 아니라 むつかしい라고 한 건 무슨 큰 의미가 있나 했더니 오사카 방언이고, 도쿄에서도 자주 쓴다고 한다.



4. 뇌와 마음과 미디어(脳と心とメディア)



5. 일본의 정체(日本の正体)


5. 남자와 여자 사이(男と女のあいだ)


7. 이미지가 가득히(イメージがいっぱい)


8. 일도 생활도(仕事も暮しも)


9. 개성으로 승부한다 (個性で勝負する)


한번 꼭 펼쳐보고 싶었는데, 슬슬 책장 극장 상영이 시작된다고 하여 사진만 남긴 특촬물 전사(全史). 지금 보니 50~60년대라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아졌다.

그렇게 9가지의 테마를 모두 돌아보고 나면, 아까 위에서 본 책장 극장에 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년에 고인이 되신 공포만화의 거장 우메즈 카즈오(楳図かずお)의 무서운 책 시리즈.

세라복과 기관총(セーラ服と機関銃), W의 비극(Wの悲劇)등 카도카와 출판의 유명한 소설들.

TV에서 한 번 본 일본의 김치 부(서클). 1년만에 전국 장아찌 그랑프리를 획득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오래전에 번역된 듯한 문고판 나니아 연대기.

가 이렇게 꽂혀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 소설 시리즈도

같은 구도로 한 번 찍어 보았다.

이 정도 구경만 해도 볼거리도 많고 시간도 때우기 좋았지만, 1층의 만화책/라이트노벨 도서관에서는 아주 뽕을 뽑을 수 있다.
하편에서는 책장 극장의 멋진 쇼와 라노베 도서관,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주변 풍경을 좀 더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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