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리뷰에 올리기엔 좀 애매한 글이 됐지만..일단 파이널 판타지 관련 글이 모아져 있는 여기에 올려본다.
FF5의 추억과 모순
그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는 게임이 FF5였지만, FF6가 첫 RPG였던 감동한 나에게는 그래픽과 음악 둘 다 역부족이었다. 1등신 캐릭터는 조잡해 보였고, 전투 음악도 그냥 전자음 같았다. FF6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FF5는 어린이용 만화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FF5는 의미가 있는 게임이었다. FF6이 발매되기 전에 게임월드에서 FF1부터 FF5까지 소개한 특집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지금도 줄줄외고있는각시리즈의특징은 그 기사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FF 시리즈의 리뷰를 쓰면서도 FF5를 자주 인용하고 예를 들기도 했다. 클래스라는 말을 들어도 MMORPG보다 FF5가 먼저 떠오르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여전히 나는 FF 5를 2시간 정도밖에 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1월에 버추얼 콘솔로 나온 덕분에 FF6을 클리어한 지 16년이 지난 이제서야 플레이를 시작했다. 만성 게임불감증에도 불구하고 3주 간 주말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을 했다. (거치형 콘솔로,것도 랜덤 인카운트에 턴제 전투 게임을!!) 일과 후 시간이 되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고 싶어서 빨리 퇴근하고(하교하고) 싶은 기분을 느낀 것은 와우 이후 6년 만인 것 같다.
홀수 시리즈의 오류. 하지만..
실제로 FF5를 플레이해 보니, 역시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특히 홀수 시리즈이니 설정이나 스토리는 그저 그렇고 시스템만 좋을 거라는 것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우주까지 나갔던 전작에 이어 차원의 규모로 커진 탓에 세계지도가 3개일 정도로 세계관이 방대해졌으며, 스토리는 FF2나 FF4보다 훨씬 어두운 편이다. 캐릭터 또한 주인공 바츠가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그렇지, 나머지 3명은 캐릭터는 상당히 입체적인 편이고, 자잘한 에피소드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다만 선악이 딱 떨어져 있는 1차적 구도와 뭔가 해결했다 싶으면 적이 나타나 허사로 만드는 전개의 반복은 확실히 시대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비슷한 전개지만 서정적인 스토리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FF6이나 세계관, 플롯, 캐릭터성 모두 당시 게임의 한계를 초월했던 FF7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는 사카구치식 FF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FF5까지의 시리즈를 기준으로 해도, 역시 FF5는 시스템 중심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감동적인 스토리나 세계관을 뛰어넘을 정도로 직업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조합하는 약사를 위해 모든 약에 대한 조합 테이블이 필요하고, 몬스터를 조종하는 마수사를 위해 각 몬스터가 가진 스킬 정보를 유저에게 노출시켜야 한다. 지형을 이용하는 풍수사를 위해 현재 전투중인 지형의 패턴 데이터를 기반으로 랜덤하게 스킬을 생성해야 하며, 돈 던지기를 하는 사무라이를 위해 전투 중에 현재 소지금을 가감해야 한다. 직업 시스템에 전력투구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턴이 돌아갈 때 가끔씩 게임이 멈추는 것이 처리하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키울 때 얻는 효과와 그에 대한 예외처리는 아무리 천재 프로그래머가 있어도 컨텐츠를 생산할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컨텐츠다. 이 정도 규모의 컨텐츠는 제작 시스템이 갖춰진 대작 게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재미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제작의 비용과 시간 외에 또다른 이유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어설픈 맥락을 허용할 수 있는 여유'다. 사실 깨어진 크리스탈 조각에 각 클래스의 힘이 숨겨져 있다는 설정은 맥락이 상당히 부족하다. 볼을 던지면 몬스터가 나오거나 카드에서 소환수가 나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FF6까지는 홀수 시리즈에 직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다음으로 나오는 짝수 시리즈에서 그 체계를 이용하여 캐릭터성과 능력 사이의 맥락이 잘 연결된 게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FF7부터는 짝수 시리즈의 전통대로 가게 되었다. 영화처럼 스토리와 연출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직업 시스템과 같은 어설픈 맥락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사, 마법사, 도둑으로 바꿔가며 성장하는 크라우드가 얼마나 우스울 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후 시리즈는 FF10까지 계속 같은 패턴이 지속되었고, (심지어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다시 디렉터를 맡은 9까지도) 모두 5에서 확립된 스킬과 마법 체계를 다른 매커니즘(마테리아, 정션, 장비 어빌리티, 스피어 보드...)으로 표현하였다. 혁신적인 시도도 많았지만 직업 시스템이 아닌 이상, 보조적인 캐릭터 육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FF5는 지금까지도 직업 중심 파이널 판타지의 완성형이며, 이전 세대 FF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앞서 스토리 부분에서 지적했던 사카구치식 FF의 한계가 오히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재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나온 '빛의 4전사'시리즈는 이런 니즈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시절
사실 40시간 내내 공략집을 붙들고 플레이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 상 막히는 부분이 종종 있었는데, 대부분 진행하는 조건이 특정 장소에 숨어있는 NPC에게 말을 걸지 않아서라던가 하는 이유였다. 자세히 보면 사실 그런 정보들은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숨겨진 이벤트 역시 주민들이 정보를 흘려주지만, 사실 전부 달성하려면 공략집을 보아야 한다. 최근의 시각이라면 불친절함이지만, 사실 오래된 게임의 불친절함은 그 당시에는 재미의 일부였다. 새 지역에 들어서면 마을 사람들한테 정보를 얻으며 노가다좀 해 주고, 잡지에 공략이 실리면 따라서 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멀쩡히 클리어했어도 놓친 것이 있으면 공략집을 처음부터 탐독하며 100% 달성을 노리기도 하고.
던전을 진행할 때의 퍼즐도 이스처럼 악랄하지 않고 적당히 복잡한 정도. 랜덤 인카운트나 턴제 전투도 슬슬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요소지만, 퍼즐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진 요소다. (FF6만 해도 FF5보다 훨씬 적다)
사실 FF시리즈의 백미는 숨겨진 요소지만 많이 찾지 못하고, 어빌리티도 40개 정도밖에 못 익혔지만 플레이하는 동안 너무나 즐거웠고, 탄탄한 시스템과 방대한 컨텐츠에 감탄했다. 여유만 있다면 풀 마스터 정도는 해 보고 싶은데..그래도 발매된지 20년이 넘기 전에 클리어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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