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야기 첫번째.
나는 라면 중독자다. 밥보다 라면이 좋다. 농심의 노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대략 20년 가까이 온 국민의 사랑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는 짜파게티. 10년 쯤 이어오다가 판매량이 줄었는지 중국식으로 볶았다는 유니짜장이 들어간 '유니 짜파게티'가 나온적이 있지만 이름만 달랐지 쥐뿔도 바뀐 건 없었고, 5년 전쯤인가부터 올리브유가 들어갔다고 '올리브 짜파게티'가 아예 기본 명칭이 되어버렸는데 올리브 열풍인 요즘에도 별로 할말이 없는 걸 보면 역시 이름뿐이였나 보다.
군대에서 애용되는 뽀글이에서도 짜파게티는 단연 인기 품목인데 너구리 급의 굵은 면발이 익기 힘들어서 맛이 없을것도 같지만 약간 바삭바삭한 게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그곳만의 옵션으로 참치 반캔이나 야채소세지를 (숟가락으로 잘라서) 곁들이면 그야말로 진미. 외로운 군생활의 몇 안 되는 낙이랄까?
그런데 나는 짜파게티를 사람들과 좀 다르게 먹는다.
(조리예의 방식)
1. 물을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면과 건더기스프를 넣고 잘 끓인다
3. 면이 익었으면 물을 따라내고 과립스프와 유성스프를 잘 비벼서 먹는다.
4. 기호에 따라서 계란, 야채등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겉포장의 구라에 대한 비겁한 변명)
(내가 하는 방식)
1. 물을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면과 건더기스프를 넣고 잘 끓인다.
3. 면이 익었으면 물을 조금 남기고 따라낸다.
4. 유성스프와 과립스프를 넣고 약한불에 볶아내듯이 비벼준다.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조리예의 방식은 과립스프가 제대로 녹지 않아서 잘 비벼지지도 않고 커피가루처럼 뭉쳐서 그 부분만 짜고 나머지는 백면이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조리예대로 끓이신다면 이제부터는 조리법을 바꾸시길.
이쯤 되면 '두번째 끓이는 방법 나도 예전부터 써먹었다.' 소리가 들릴 법 한데, 두번째 방법은 내가 하는 방식이라기보다 내가(다른 사람한테 끓어줄 때)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 물을 일반 라면보다 아주 약간만 적게 잡은 후 과립스프와유성스프를 넣고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면과 건더기스프를 넣고 잘 끓인다.
3. 면이 익으면 불을 끄고 먹는다.
명칭을 뭐라고 해야하나..물짜장? 국물있는 짜파게티? 밍밍한 짜파게티? 내가 이렇게 먹는 것을본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무슨 짓이냐고. 이등병때 뽀글이를 할 때 저렇게 먹다가 '너 한젓가락 뺏기기 싫어서 그러는거지? 지독한 쉑히" 하면서 갈굼을 당하기도 했다. 근데 난 진짜 저렇게 먹는걸 좋아한다. 꼭 이렇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냉면을 먹을 때 물냉면과 비빔냉면 사이에서 고민하듯이 나도 둘중에서 고민을 하는 거다. (물론 냉면처럼 대부분 물 쪽이 이긴다)
내가 이렇게 먹는 것을 즐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할머니께서 내가 어렸을 때 라면을 자주 끓여주시곤 했는데, 할머니께는 짜파게티와 일반 라면의 차이가 없었다-_-; 어머니가 끓여주실 때는 일반 짜파게티이긴 했지만,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입맛이 맞아갔고 쪼금 더 커서 내가 끓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물 쪽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물 짜파게티가 솔직히 면은 조금 맛이 덜한테 무엇보다 큰 매력은 흰 쌀밥을 말아먹을 때. 까만 국물에 흰 알갱이가 동동동 떠있는 걸 보면 정말 먹음직스럽다는 것. 국물은 진짜 일반 라면이랑 똑같이 잡으면 밍밍해서 맛이 없고 물을 처음부터 조금 잡거나 약간 졸여서 끓이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게 아주 괜찮다. 춘장도 원래 된장으로 만든 거니까 그 쪽의 맛이 우러나는 걸지도..(짜파게티에 진짜 춘장이 들어가는지는알 수 없지만) 짜파게티에 고추기름 하나 넣어서 맛의 대변혁을 이룬 '사천짜장 짜파게티'에 이 조리법은 권하고 싶지 않다. 사천짜장의 최대 매력인 매콤한 맛이 대략 뭉그러지기 때문. 그냥 짜파게티와 별 차이가 없으니 돈이 아까운 거다. 페이스트 형태의 스프를 쓰는 짜짜로니를 이렇게 해 먹으면 개를 줘도 안먹을 걸작이 탄생한다는 것도 미리 경고해 둔다. 제대로 끓여도 뭔가 밍밍한 그 스프가 물에 풀어지면 대략 할말이 없는 맛이 난다. 짜짜로니가 짜파게티의 점유율을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것이 이 구수한 맛이 애초에 없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짜짜로니로는 절대 해먹지 말기를 권한다. 컵 짜짜로니라면 모를까..
컵라면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다른데, 짜장범벅이나 짜장큰사발의 조리법을 유심히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기엔 물을 붓고 그대로 먹으라고 쓰여 있다. 헌데 애초에 꽤 짠 편에 속하는 짜장범벅에는 이 조리법이 맞지만, 상대적으로 밍밍한 짜장 큰사발에 이 조리법을 적용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상이다. (솔직히 짜장큰사발을 이렇게 먹는 사람을 나 이외에 본적이 없다) 사천짜장 컵라면 버전에서는 생생 우동의 아이디어를 살려 물을 버리고 비벼먹을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사천짜장은 물짜장으로 먹기엔 좀 부적절한 맛이라 할 수 없이 물을 2/3 정도만 붓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사진에는 티가 잘 안나지만, 면과 비슷한 높이로 물이 차 있음. 표시선까지 물을 부으면 그게 물짜장.
이 버전의 매력은 면을 다 먹고나서 수프에 가깝게 남아있는 국물을 그릇안에 굴러다니는 건더기들을 한꺼번에 후루룹 마시면서 먹을 때의 느낌. 콩으로 만든 고기(명칭 까먹음)와 양배추를 잘근잘근 씹을 때 입안에 짜장스프 맛이 싸악 감도는 것이 정말 최고다.
사실 요 몇년동안은 물짜장보다 이 쪽을 더 자주 먹는다. 조리법이나 음미하는 법을 예찬에 가깝게 써놓았지만 아무도 이렇게 안먹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 :)
다음엔 너구리 이야기나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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