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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츄 역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하루종일 공부한 어느 날, 급 배가 고파져 오늘은 고생했다고 되뇌이며 이자카야 방랑기 맵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방랑기 맵에서는 쵸후 시(調布市), 후츄 시(府中市), 무사시노 시(武蔵野市)가 한 구역으로 묶여있어 상당히 많은 가게가 한꺼번에 나온다. 쵸후까지는 5정거장이고 다른 지역도 못 갈 것은 없지만, 시간이 좀 늦은 편이라 후츄 역 근처의 가게에 가기로 결정했다.
후츄로 필터링하니 나온 곳은 두 곳.
이자카야 이소키치(磯吉, いそきち) → 사츠마아게(さつま揚げ, 핫바 비슷하게 생긴 어묵)
이자카야 오오사다(大定, おおさだ) → 오뎅
의 두 곳이었는데, 묘하게 장르가 겹쳐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우선 오오사다 페이지를 보니 오뎅은 맛있어 보이나 저녁을 오뎅만 가지고 먹기에는 배가 좀 고플 듯 했다.
그런데 스핀오프 방송 여자 이자카야 방랑기(おんな酒場放浪記) 맵에서 오오사다페이지를 보니 야키니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오뎅과 야키니쿠라니 이런 조합은 처음 봤다.
그리고 나서 다시 본가 페이지를 보니 요시다 루이(吉田類) 씨 앞에 고기불판이 있는 것이었다.
지체없이 가게로 돌격!
들어서서 카운터에 앉으니 눈앞에 커다란 오뎅솥이 벌써부터 후각을 자극한다. 게다가 카운터에는 맛집의 상징인 1인 야키니쿠용 불판이 놓여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카운터 반대편에는 좌식 테이블석이 있어서, 이미 단골손님들이 꽤 드시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2014년 이자카야 방랑기에 나온 사진도 붙어있다.
야키니쿠라고 하지만 간판 메뉴는 돼지고기, 그것도 야키통에 쓰이는 부위가 대부분이었다. 소고기의 주요 부위도 리즈너블한 가격으로 준비되어 있었지만 혼자 왔기도 하고, 야키통을 내가 직접 구워먹는다니 그건 또 어떤 느낌일까 심히 궁금해졌기 때문에 돼지고기 모듬세트인 돈짱모리(豚ちゃん盛)를 주문했다.
오뎅은 개당 143엔이고, 규스지는 츠쿠네(닭고기 경단꼬치)와 소시지 든 치쿠와는 180엔, 규스지는 200엔이었다. 보통의 오뎅집과 달리 감자가 있는 것도 특이한 점.
메뉴 중 신경쓰이는 것 또 하나가 왼쪽 아래의 レバ刺しっぽいもの(생간 같은 것)였다. 아래에 빨간 글씨로 '아쉽지만 생간은 아닙니다.' 라고 쓰여 있다.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생간을 팔지 않지만, 비슷한 것을 찾는 니즈는 나름 있나 보다.
고기를 기다리며 홉삐 쿠로(ホッピー黒)로 한 잔 시작. 니혼슈를 담는 글라스에 글라스에 소주를 꽉 채워주는 인심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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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이 달궈지기도 전에 빠르게 고기 도착. 야키토리 6꼬치분이라고 해서 그냥 딱 적절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양이 꽤 많았다. 고기 색깔이나 고깃결이 참 이쁜 것이, 야키통 고기가 이렇게 깔끔한 느낌이었나? 하고 신기해했다.
홉삐도 잘 말아놓았고 그럼 한번 구워보실까..!
불판을 덜 달구었는지 촤아악~ 지글지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조금 기다려야 할 듯.
고기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모르고 실은 가츠사시(ガツ刺し)도 하나 시켰었다. 굽는게 늦어서 오히려 딱 적절한 타이밍.
ガツ는 오소리감투고 刺し는 사시미를 줄인 말로, ~~사시 라고 하는 것은 내장류를 데친 뒤에 차게 식혀서 식초에 절여 낸 안주. ガツ도 잘 하는 야키통집에만 있지만 ガツ刺し는 더욱 그렇다. 아사쿠사(浅草) 센소지 서쪽에 마주하는 홉삐 거리(ホッピー通り)나 신주쿠(新宿) 가부키쵸 건너편의 오모이데요코쵸(思い出横丁)에도 하는 집이 종종 있으니 메뉴판에 보이면 무조건 주문해 볼 것을 권한다.
가츠사시 몇 점 털어넣고 홉삐 쿠로 한 잔 싸악 넘기니 이런 행복이 없다.
어느새 바싹 구워진 고기. 육즙이 쵸큼 말랐지만 아직 야들야들.
손님이 꽉 들어차니 그냥 일본드라마 찍어도 될 정도로 나 빼고 다 친한 그 분위기.
..를 견디지 못하고 옆자리 아저씨 두 분의 대화에 끼었다. 배도 살짝 차서 슬슬 심심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저씨들이 이나기 시 (稲城市) 와카바다이(若葉台) 에 아무것도 없다는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시길래 신경이 쓰여서 저도 와카바다이 가봤어요~! 하며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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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기 시 아무것도 없다고 하시고서는 이사하려고 집 알아본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어디가 좋고 어디가 좋고 하시며 이사오라고 영업 들어오신다. 사실은 너무 뭐가 없어서 결국 접었지만 말은 못하고 그냥 영업 잘 받았다.
와카바다이 역 근처의 맨션들은 비교적 요즘에 지은 것들이 많아서 UR은 되려 적은 편이기도 했고, 그 중에 가장 괜찮았던 곳이 생각 이상으로 임대료가 비싸서 접은 것도 있었다. 반대편의 코요다이(向陽台)는 복층 맨션이 꽤 싸게 나와있던데다 동네 이름만큼 채광이 참 좋긴 했지만, 이나기 역에서 버스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니 조금 고립된 느낌이 들어서 결국엔 관뒀더랬다.
그렇게 타마(多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술잔이 비워지고, 홉삐 안쪽(なか)를 추가로 주문. 이번에도 꽉 채워 나온다.
그리고 술을 주문하니 고기가 얼마 안 남아서 오늘 둘 다 가보기로 하고 오뎅도 주문해 버렸다.
소시지 들은 치쿠와, 규스지(牛筋소 힘줄), 그리고 커다란 감자.
일본 이자카야의 오뎅은 대부분 이렇게 접시에 약간의 국물과 함께 주는 식으로, 한국의 오뎅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한국에 있을땐 이 짭쪼롬한 국물 호로록하며 오뎅을 즐기는 이게 그렇게 그리웠는데, 이걸 자주 먹으니 한국의 그 푸짐한 오뎅탕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나중에 지인들을 데리고 다시 와서 시켰던 큰 오뎅. 고기먹고 적절히 취할 즈음 오뎅을 시키면 기막히게 잘 맞는다.
슬슬 돌아가려 하는데 60대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통성명을 하니까 김씨라고 하신다. 일본에 와서 일본에서 나고 자란 교포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60대 이상에서 이렇게 한국어가 유창하신 분은 또 처음 봤다. 닉네임이 キムちゃん이시라고.
그렇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이야기 듣고, 요즘 한국이 어떤지 이야기해드리고 하니 또 술이 술술 들어갔다. 일본 이자카야는 음식과 술이 맛있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옆자리에 온 분들과 이야기나누는 것이 너무 즐겁다.
오뎅에는 역시.. 하며 마지막 턴으로 니혼슈를 주문했다.
니혼슈도 아주 좋았는데, 나중에 이자카야 방랑기 페이지에서 보니 이 가게의 니혼슈는 전부 야마나시 현(山梨県)의 니혼슈 사사이치(笹一) 라고 한다.
일어날 때가 다 되어 옆자리에 다른 아저씨가 앉으셨다. 오늘 잔업에 낼도 5시 출근이라 못 마시고, 밥 먹으러 오셨다고. 그런데 내 오는 메뉴의 포스가 으아아아.. 아니 마파두부에 챠항 말아주는 데가 세상에 어딨어... 한입 달라고 할 뻔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화요리집에 자주 있는 마카나이(賄い, 식당의 점원들이 끼니로 먹는, 메뉴판에 없는 메뉴) 라고 한다. 마보챠항(麻婆チャーハン)이라 부른다고.
기분좋게 취해 역으로 걸어가며 거리 풍경을 찍었다. 많이 취했었나 보다.
이자카야 오오사다(大定)는 신주쿠 역에서 특급으로 23분 걸리는 케이오 선(京王線) 후츄 역(府中駅)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도쿄 경마장(東京競馬場)에 갔다면 도보로 10분 조금 넘는 거리이니 슬슬 걸어가도 좋다. 단, 경마가 끝난 직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니 조금 일찍 나와서 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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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로 걸어올라가는 도중에는 오오쿠니타마 신사(大国魂神社, おおくにたまじんじゃ)에 잠시 들러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껴봐도 좋겠다. 종종 마츠리를 하기도 한다.
경내에는 후츄 고향과 역사관이 있으니 여름이라면 잠시 더위를 피해 들어가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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