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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천기통(天気痛, てんきつう)을 아십니까

by 대학맛탕 2024. 4. 5.

4월 1일. 일본에서는 회계년도와 학기가 시작하는 날로, 올해는 특히 월요일이기도 해서 그 의미가 더 깊었다.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대졸신입 입사식을 개최하고, 모두들 이번 분기도 잘 해보자고 의기투합하는 그 날.

 

하지만 날씨에는 AI가 없기에 그런 의미를 모르는 건지, 4월 1일 월요일의 도쿄는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아주 꾸리꾸리한 날씨였다. 

 

그런 날씨 탓인지, 안그래도 바쁘게 처리할 일이 많은 월요일에 오전부터 가벼운 두통이 시작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두통은 오후부터 더욱 심해져서, 결국 2시간 휴식을 하고 일을 재개하기로 했다. 

 

일요일에 하루종일 공원에 있어서 몸살이 난 탓인가.. 아침에 일어날 때 목이 심하게 칼칼했던 걸 보면 간밤에 감기에 걸렸나.. 여러가지 가설은 있지만 확증은 없어서, 화요일엔 본래 가려던 이비인후과에 가서 간단한 진찰과 약을 받았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 일을 시작하자마자 두통이 엄청 세게 몰려왔다. 화요일에 처방받은 약에 한방약이 끼어 있어서 못 타온 관계로, 병원 앞에 있는 약국을 찾아가고자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후딱 다녀오려고 하는데 맙소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투덜투덜하며 약을 타고 점심으로 모스버거를 산 뒤 가게를 나서니 비는 그쳤지만, 날씨가 월요일마냥 꾸리꾸리했다. 그 하늘을 보고 갑자기 머리를 딱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천기통(天気痛, てんきつう).

한국어로 번역하면 '날씨통' 정도 되겠다.

 

몇 년 전에 처음 알게 된 단어로, 회사 동료분과 잡담 중에 오늘 이상하게 두통이 있다고 말하니 '그거 天気痛아니에요?' 라고 하셔서 급하게 단어를 검색해 봤다.

 

검색결과 출처: https://www.zenyaku.co.jp/k-1ban/detail/weatherpain.html

 

 

기상의 변화에 의해 지병이 악화되는 「기상병」 중에서, 통증이나 기분장애에 관한 것을「날씨통」이라고 부릅니다.「날씨통」의 증상이 생기는 경우는 사람마다 달라서, 머리나 목, 어깨 등이 아파지는 증상, 기분이 가라앉거나 현기증이 일어나는 등, 몸과 마음의 컨디션 난조 이외에도, 오래전에 다친 상처의 통증, 관절 류마티스나 천식, 갱년기 장애가 악화되는 등 다양합니다.

 

한국에서는 겪어본 적이 없는 증상이라, (그 땐 젊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마치 어딘가에 홀린 듯 혼란스러웠다. 좀 더 알고자 그냥 날씨통을 검색해보니, 매일매일 날씨통이 어느정도로 위험한지 알려주는 사이트까지 있었다.

 

오늘의 날씨통 지도를 보니 아까의 두통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게 높은 곳에 있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앞통수와 옆통수를 교차적으로 압박하는 듯한 두통이었다. 

출처:웨더뉴스(https://weathernews.jp/s/pain/)

 

도쿄의 날씨는 서울보다 훨씬 변덕쟁이다. 비가 오고 개는 타이밍은 특히 그래서, 갑자기 비가 내려서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샀더니 택 뜯고 비닐 뜯고 나오면서 펴니까 비가 그쳐 있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흐린 날에는 날씨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구름 레이더(雨雲レーター)를 본다. 

 

아래 비구름 레이더를 보면 서쪽의 스기나미구에서 동쪽의 에도가와구까지 국지적으로 구름이 없지만,

출처:야후저팬 날씨 사이트(https://weather.yahoo.co.jp/weather/zoomradar/)

 

 

불과 20분 후만 되어도 해당 지역의 강수량이 10퍼센트를 넘어가고, 미나토구와 신바시 사이는 3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출처:야후저팬 날씨 사이트(https://weather.yahoo.co.jp/weather/zoomradar/)

 

 

최근 몇 년 간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러워서 지난 3월에는 갑자기 최저기온이 영하 1도까지 내려갔다가(도쿄는 어지간해서 영하가 되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낮 최고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갔다. 

 

서울에 비하면 겨울에는 엄청 따뜻하고 미세먼지도 없지만, 날씨가 맑으면 꽃가루가 날리는 화분증(花粉症)가 만연하고 날씨가 꾸덕하면 날씨통이 찾아오는 도쿄. 어서 완연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아마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 습한 여름이 오겠지만 말이다.

출처:야후저팬 날씨 사이트(https://weather.yahoo.co.jp/weather/zoomradar/)

 

 

 

그리고 오늘의 날씨..두통약을 미리 챙겨둬야 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