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상자가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완구? 플랫폼? 이기에 여러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팝업창을 걷어내니 기억 속에 있던 그 철제 프레임이 보였다.

과학상자를 처음 샀던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갖고 있는 친구네 집에서 체험하다 보면 역시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1호는 모터가 없어서 단순 공작밖에 할 수가 없고, 2호는 모터가 들어있지만 선반 정도만 가능했으며 표지에 지프가 있는 3호를 사야 제대로 뭔가를 만들어 볼 수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참 굴리던 92년 무렵에는 위의 사진처럼 총천연색이 아니고, 누런 색과 남색의 2가지 배색만 있었다. 언젠가 3호가 리뉴얼되면서 빨간색과 초록색 파츠가 추가되어서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과거의 기억, 어렸을 때 빠져들었던 것들을 자주 다루는 본 블로그지만, 과학상자는 거의 30년 가까이 잊고 살았던 물건이라 그 감상이 남달랐다. 많은 시간을 조립하며 보냈으니 기억은 선명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사진도 없고 그저 이런 거였지 하고 기억을 해 볼 뿐이다.
그 버전이 있는가 하고 웹 검색을 열심히 해 봤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고, 총천연색이 된 뒤의 박스만 나온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많은 소년소녀들이 즐겨온 덕분에 그 시절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후속 버전이 나와있던 것이다. 3호의 표지를 장식했던 지프는 레토나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꽤나 소박한 모양새였다. 기억 속에서 많이 미화됐던 것이다.

기억하고 있는 과학상자에 가장 근접한 것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있어 링크를 걸어 본다. 찾아보면서 처음 안 사실은 1982년에 처음 발매되었다는 것.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나랑 동갑이었다는 것은 몰랐다.
https://blog.naver.com/infinity71/100161554644
제일정밀 과학상자 시리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82년 국민(초등)학생 시절에 과학상자라는 것이 처음으로 출시되었...
blog.naver.com
과학상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내가 어렸을 때 갖고놀던 수많은 것들과 달리 일본의 원판이 없다는 것. 아기자기한 만듦새나 누구나 장인정신을 발휘할 있는 구성 상 일본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20세기 초 영국에 있던 물건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동경했던 것이 다 일본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뭐 이런 경험이 워낙에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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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러 기억들을 더듬더듬하다가 문득 과학상자에 대한 기록이 하나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당시에는 4월은 과학의 달이라 하여 글라이더나 고무동력기 날리기를 포함, 여러 과학 관련 대회가 열리곤 했다. 그리고 그 중에 과학상자 조립 경진대회가 있었던 것이다.
2호로 대회에 나갔는지 3호로 나갔는지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지만,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4학년이라 아직 어려서인지 다들 장난감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왔던 기억이 있다.

과학상상그리기 상장도 있었다. 우주선을 그려놓고 발사대에서 파동권과 타이거 쇼트가 나가는 걸 잔뜩 그려넣었던 것 같다.

그 수상실적(?) 을 바탕으로 2호에서 3호를 샀는지 3호에서 추가호를 샀는지 역시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5학년 대회에 나가자 신형 과학상자를 들고나온 거물 신인들이 나와있었다. 작년의 자동차를 조금 개량한 정도로는 상대가 될 수 없었고, 보기좋게 장려상에 그치고 말았다.

다른 상장을 찾아보니 6학년 때는 입선, 중학교 2학년 때는 장려상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반장이면서 공부도 1등이었던 친구가 관절 동작을 포함한 포크레인을 만들어 와서 압도적으로 1등을 했다. 세상에는 정말 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경험이 아닌가 싶다.
돌아와서, 주식회사 과학상자가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사이트에는 주문이 쇄도하는지 이미 대부분의 상품이 품절 상태였다.





과학상자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코딩교육에 발맞추어 코딩팩이라는 시리즈도 있었다.

7년 전에 소니에서 내놓은 KOOV라는 코딩팩을 취미로 구매했던 적이 있는데, 굉장히 단순한 디자인으로 어린이 유저를 노리고 나왔지만 가격이 사실상 5만엔이었다.
큰 맘 먹고 구매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었고 내구성도 좋지 않았다. 그 때 이 시리즈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걸 샀을 텐데 많이 아쉽다.

블럭은 레고처럼 만들고, 어린이용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를 벤치마크한 전용 코딩 언어도 제공한다. 맥이나 아이패드에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동작을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송수신기(아래 사진 오른쪽)가 금새 고장났고, A/S 문의를 넣으니 제품 교환만 가능하며 18,000엔이라는 말에 그대로 정크행이 되어 지금까지도 그냥 보관만 하고 있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사이트에 들러보니 지금까지도 경진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지는 하고있는 듯 하나,

역시나 가격 허들이 높은 편이다.

다시 돌아와서, 코딩보드 부품 라인업을 보니 정말 제대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소니의 쿠브는 이렇게 다양한 라인업이 있지도 않고, 디자인과 범용성에만 집중했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실 제품에 가까운 보드는 허들이 높아 보이지만 어딘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저연령층을 겨냥한 시리즈도 있었다.


부루마불마냥 그저 과학상자를 계속 생산하며 결국엔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것인가.. 하고 무심코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과학 인재의 양성에 진심인 회사였다.
내가 한참 갖고놀 때는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발매된 지 10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지만, 그 뒤의 32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고를 겪으며 제품을 만들어왔을 지 내심 고개가 숙여진다. 이번에 알려진 것을 계기로 어떻게 부활을 꾀할 수는 없을까 하는 희망을 걸어보며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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