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끝까지 다 읽은 몇 안되는 책, 게임 기획의 정석.
원서는 2013년에 출간된 책이라 무려 10년이 지나 번역된 셈인데, 지금 읽어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페이지의 인용과 내 생각을 남겨 본다.
P.31 스펙터클은 이미 있는 것(감정 메카닉) 을 강화할 때 효과적이다.
'감정 메카닉'이라는 개념을 잡으니, 스펙터클이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됐다. 하지만 이 내용을 '스펙터클 없이도 메카닉만 잘 짜면 된다' 로 오해하면 안된다.
P.49 플로우는 플레이어의 수준에 완벽하게 맞는 도전이 제시될 때 나타난다.
나는 언제나 '정당한 플레이로 깨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레벨 노가다로 깨는 걸 극히 꺼리는 편인데, 이 플로우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엘든링/세키로를 플레이할 때 내 쪽이 소수파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플로우라는 것에 정답이 없고, 여러 사람이 각자의 플로우를 만들어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이 더 크게 히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써놓고 보니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냐' 류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디자인을 취해야 할 지 생각할 때 곱씹어 볼 만 하다.
P.55 경험의 엔진
'게임은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수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24살 때였다. 당시의 게임기획 지망생들 비슷한 케이스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카닉보다는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반대로 지금은 엔진 지식을 쌓고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 때문에 수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지만, 반대로 게임이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게임 디자인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년 전 수학의 필요성을 알려주듯, 감정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좋은 챕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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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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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우아함
'복잡한 관계를 가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일회성 기믹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몇 가지 게임 메키닉을 통해 평생동안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일한' 에 밑줄 쫙!
우아한 규칙으로 창발적인 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면 베스트지만, 언제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결국은 몇 가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유기적인 연결을 몇 번이고 고쳐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P.69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은 게임 디자이너에게만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도 비용이 든다.'
게임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의 구현 비용 때문에 망설이고, 종종 안 해준다고 삐지곤 한다. 만들었을 때의 가치를 따질 때 플레이어의 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타협점을 찾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P.186 게임 메카닉에 의한 완급 곡선

오래전에 전투 전개에 따른 플레이어의 감정 곡선을 그려본 적이 있는데, 게임 메카닉에 따라서는 이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임 메카닉을 만들기 전에 전체적인 전투 흐름이나 템포를 공유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P.186
'비슷한 범위의 의사결정이라도 주제가 다르면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

흥미로운 고찰. 기획을 셀프체크할 때 점검 항목에 넣어서 써먹어봐야겠다.
P.203
'운전 게임에서 극도로 느리고 둔하게 만들어 밸런싱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운전이 공정한 일이라 할지라도 지루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밸런스적 결정이 뼈아픈 실패로 돌아온 적이 있어서 이거 읽고 명치가 아팠다.😮💨
P.205
'의외로 플레이어는 항상 플레이어들은 항상 퇴보된 전략을 찾으려고 한다.
~중략~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그들이 이러한 틈새를 찾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게임을 파괴하도록 허용한 기획자를 미워할 것이다. '
저자가 엘든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꼭 들어보고 싶다!!
P.328 가치 곡선

만들고 있는 게임의 특성을 이렇게 비교하는 방법도 있구나. 원서가 출판된 2013년엔 이런저런 제안을 자주 할 때인데, 그 때 알았다면 SWOT분석 비슷한, 2축 사분면에 게임 타이틀을 배치하는 것 말고 이렇게도 해봤을 듯.
..제안받는 높으신 분들은 복잡하다고 그닥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획하고 있는 컨텐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에 한 번은 써먹어보고 싶어졌다.
여러 명 모여서 플래닝 포커 하듯 항목 별 점수를 매기고 데이터를 뽑아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듯?
P. 330 가치 집중
'위대한 게임들은 모든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몇 가지를 매우 잘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 FF7 리버스를 클리어한 직후에는 (아주 일부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필요 이상의 자원을 투입한 곳이 많다.
B+ 수준의 미니게임을 강제한다 하더라도 전체 게임의 플로우를 방해하지 않으니 그것은 무조건 플러스 요소라고 생각했지만, 새 시스템(=미니게임)의 추가는 69페이지의 '플레이어에게도 비용이 발생한다'는 내용에 비추어보면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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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링이나 젤다는 100시간은 우습게 넘기는데 FF7R2가 엔딩까지 85시간 걸리는 것이 뭐가 다른가? 했는데 다른 점이 있었다. 젤다와 엘든링은 그들이 잘하는 것만으로 플레이시간을 채워넣었다는 것.
다만 이건 좀 결과론이라, 젤다나 엘든링에서 잘하지 못한 부분에 쓴 시간이 있는지 좀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분석이 될 수 있겠다.
P.334 한국에서의 스타크래프트
'많은 오래된 정부 사회 및 연금 프로그램이 단계적으로 폐지되어, 대규모의 노년층 시민들이 일자리 없이 은퇴하기에는 충분한 소득 없이 방치되었다. 이런 50대 은퇴자 수천 명이 찾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잡으려고 PC방을 열었다.'
게임 디자인 책에서 한국의 시사가 나오다니 허허허.. 사실 전 지구로 봐도 유례가 없는 게임인구의 확장과 e-sports라는 새 산업의 탄생이긴 했다.
(몇 페이지인지 메모 안함..) 밸런싱
'측정 기능을 추가하여 플레이어의 위치, 체력, 무기, 시간, 게임 저장, 사망, 부상, 퍼즐 풀기, 몬스터와의 전투 등 모든 주요 활동을 자동으로 기록했다.'
이거 하프라이프 이야기였던가..?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이걸 빡시게 해서 그런지 개발 중반부터는 필수고, 솔직히 초반부터 해도 손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13장. 의존성 내용 전부

11. 계획과 반복은 이미 했던 것들에 대한 복습으로, 12. 지식 창출은 신선한 통찰이지만 실행 가능성을 높지 않게 봐서 챕터 3 - 프로세스 전체에 좀 회의적이었으나 13. 의존성 후반부에서 정말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인용할 엄두도 안 나니 그냥 사서 읽으시라!
11년 전 이 글을 쓰며 생긴 고민에 딱히 답이 없어서 '그냥 처음부터 잘해야 된다' 라는 잠정 결론으로 두고 살아왔다.
드디어 그 해답을 본 느낌. 그리고 통찰 뿐만 아니라 방법론까지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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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권한
'기습 똥싸기'

서두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아 이건 멘탈을 좀 바로잡고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정말 이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내는 건가? 하는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사장님이 '원신이 흥하니 우리 게임도 다음달 오픈월드 컨텐츠를 넣읍시다' 라고 하는 것을 서양에서는 '기습 똥싸기'라고 한단다. 다만 절대로 비꼬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13장까지는 재밌는 강의를 조금 산만하게 들어왔지만(그래서 메모는 열심) 여기부터는 술술 들어와서 반대로 메모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P.450
제안할 때의 대차대조표.

단점이 너무 적게 쓰여있다.
바쁜 사람들의 주의를 넘어 전달하기 위해서는 1분은 턱없이 부족하며, 아무 결과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 장점에서 기대한 것들에서 부풀려진 희망의 2배만큼 멘탈 대미지+ 쪽팔림이 적용된다.
아, 위의 것은 좋은 스튜디오의 예, 아래는 나쁜 스튜디오의 예였다. 또 안읽고 앞서나가 버렸네 ㅋㅋ

다만, 이것이 팀에 의해 명확히 나누어 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고, 게임 디자이너의 숙명같은 거라 언제나 이 프레셔와 싸워야 한다.
유일한 팁 하나. 맡겨진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제안하면 성공률이 감소하고, 맡겨진 일을 끝내고 제안하면 성공률이 올라간다.
내가 후자처럼 한다고는 말 안 했다🫠
P.457 닭삑삑이 동기 부여기
비슷한 것을 첫 플젝에서 경험했는데, 당시 서버 프로그래머 분이 서버가 떨어지면(=내부 테스트 및 작업이 중단) 사이렌 경보음이 개발실 내에 울려퍼지도록 했었다.
보통은 (소리는 못 내고) 속으로 욕을 할 상황이나 그렇게 하니 서버가 떨어지면 다들 허허 웃고 한탐 쉬었다.
역자 후기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이 역자 후기에 쓰여있어서 그래도 졸지 않고 읽었구나 생각했다.
'게임은 경험의 엔진'이라는 것만 확실히 기억해 두고 종종 발췌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게임 디자이너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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