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에 진출한 참이슬
어느날 단골 바에 가니 어떤 분이 참이슬을 시켜서 마시고 계셨다. 한국 소주, 특히 참이슬은 이미 일본에서 널리 퍼져있지만, 정통 바에서 참이슬이 주문되는 건 조금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2017년에는 참이슬을 사려면 타마 지역 기준으로는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의 한국 수퍼에 가야만 했다. 당시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신오쿠보에 다녀왔으니 분명 동네 슈퍼나 마트에는 없었다. (동키호테에서는 이미 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18년이 되면 이미 트와이스나 BTS,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2차 한류 붐이 거세질 즈음으로, 드라마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인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참이슬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오기 조금 전부터는 동네 편의점에서도 참이슬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많이 마시는 그냥 소주(플레인?)는 아니고 머스컷 맛이었다.
그 뒤 더해가는 인기를 증명하듯 편의점에 비치되는 참이슬의 종류는 늘어갔고, 이후엔 제사지낼 때 소주를 사러 신오오쿠보에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살 때는 300엔이 조금 넘고, 한국 식당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 병에 1000엔으로, 일본에서 다른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싸지만 한국에서 마시는 것을 생각하면 비싼 편이다.
위에 이야기한 바에서는 참이슬이 한 병에 2000엔 가량 했다. 살짝 검색을 돌려보니 바에 따라서는 병당 3000엔인 곳도 있었으니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다. (고작 참이슬인데!!)
일본에는 JINRO(한국의 진로와는 다른 25도 소주) 소주가 오래전부터 진출해 있어 진로라고 하면 마시지 않아도 대부분 알지만, 진로를 즐기는 층이 장년층이라 참이슬을 즐기는 층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래서 진로를 음독하면 JINRO, 훈독하면 チャミスル로 실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려주면 일본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하긴 한국에서도 '참 진 이슬 로' 였다는걸 모르는 층이 슬슬 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한국 술집에서 고급 술로 변신한 하이볼
요새 한국에서 하이볼 붐이 엄청나다는 것도 이미 옛말이 되었다. 술집에는 한글로 된 산토리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주세가 그렇게 엄청난데도 위스키 애호가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하이볼이 유행한 계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일본 여행이 크게 대중화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일본 드라마도 한국에서 나름 인기가 있지만, 한국 드라마의 소주처럼 하이볼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는다. 한 잔 하는 신에서 첫 잔의 생맥주나 거나하게 취하는 신에서는 니혼슈 혹은 위스키가 나온다.
하이볼은 소주 다음으로 원료가 가장 싼 술이기도 해서 어딜 가든 가장 저렴할 뿐만 아니라, 저렴함을 내세우는 체인 이자카야라면 200 이하에 내는 곳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2024년 2월 시점으로, 한국에서 하이볼을 봤을 때는 충격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우선은 가격. 한 잔에 대략 8천원~만원 수준으로, 본래의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싸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본래의 하이볼과 거의 다른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위스키를 한 방울 넣은건가 싶을 정도로 색이 투명했고 달디단 토닉워터를 섞어서 위스키 맛은 아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엄청 달아서 이게 뭔가 싶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런 느낌이었다.
최근엔 하이볼을 자주 마시지 않아서 혹시 가쿠빈 가격이 오른 탓에 일본에서도 올랐을까? 생각하며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에 갔을 때 오랜만에 주문을 하려고 보니 300엔. +100엔에 진하게 타 주는 옵션이 있어서 역시나 조금은 올랐구나.. 하며 시켜보니 이건 뭐 원액마냥 너무 진해서 되려 물을 조금 타서 마셨다.
일본에서의 참이슬처럼 한국에서의 하이볼도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적어도 중장년층은 그다지 마시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과 일본 각각에서 가장 대중적인 술이 이렇게 정반대의 이미지로 전파된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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