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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피아노, 클래식

[독주회] 2010.11.1. 윤디 피아노 리사이틀

by 일본맛탕 2010. 11. 2.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쇼팽의 곡들로만 이루어진 CD를 발매하고 세계를 투어 중인 윤디!
몇 달 동안 클럽발코니 유료 회원 연장을 깜빡하고 있었던 탓에, 내한하는 소식도 한동안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알게 되어 부랴부랴 회원 연장도 하고 예매도 하게 되었다.
(근데 왜 요즘은 '윤디 리'라고 안 부르고 그냥 '윤디'라고만 부르지? 잘 모르겠다 ^^;)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 역시 모두 쇼팽으로만 구성되었다.

제1부
 - 녹턴 Op.9-1, Op.9-2, Op.15-2, Op.27-2, Op.48-1
 -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드 E flat 장조, Op.22

제2부
 - 마주르카 Op.33 No.1~4
 - 피아노 소나타 2번 B flat 단조, Op.35
 - 폴로네이즈 제6번 '영웅', Op.53

연주하는 곡들을 미리 예습하지 못하고 가서 조금 불안했는데, '에이 쇼팽이니까 뭐, 괜찮겠지~' 하며 어느 정도 안심하고 갔지만, 역시나 예습을 해 올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 좀 듣고 갔더라면 얻는 게 더 많았을 텐데...

어쨌든! 연주회는 조용한 녹턴으로 시작되었다.
소근소근 고요하게 시작하는가 싶더니 깔끔한 음색이 이내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윤디의 음반도 갖고 있지 않고, 또 평소에 윤디의 연주를 잘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어떤 식으로 연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10년 전 쇼팽 콩쿨에서 15년 만에, 그것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자가 나왔고 그게 윤디였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그의 연주 스타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쇼팽의 스페셜리스트라면 상당히 달콤하게 연주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의 연주는 아주 담백했다. 오버 액션도 별로 없고... 의연하고 담담한 자세로 앉아서 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또 녹턴에서는 끝음을 치고서 손을 떼지 않고 끝까지 건반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소리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턴 마지막 곡인 Op.48-1은 이번에 처음 들어 봤는데, 매우 특이하고 흥미로운 곡이었다. 강렬하고 웅장한 느낌... 누가 이게 녹턴이라고 해 주지 않으면 잘 모를 것 같은 곡이었다. ^^;

이어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E flat 장조를 이어서 쳤다. 주로 뒤쪽의 폴로네이즈만 들어 봤지, 이렇게 연달아 칠 수도 있는 곡인 줄은 몰랐다. 서로 상반되는 주제를 이어서 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녹턴에서 손을 푼(?) 윤디는 화려한 테크닉으로 청중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소리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영롱해라~

인터미션 시간이 지나고 2부가 시작되었다.

난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녹턴과 마주르카가 뭐가 다른 건지 헷갈렸고, 지금도 사실 잘 구분이 가지는 않는데(굳이 말하자면 마주르카는 춤곡이니까, 춤곡스러운 3박자 계열이 많다는 것 정도?)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자칫 잘못하면 마주르카를 녹턴스럽게 치게 되기 쉬운데, 윤디는 둘을 구분해서 적확하게 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피아니스트라고. 쇼팽을 꼭 바흐처럼 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템포 루바토가 쥐약인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_-; ㅋㅋㅋ 오히려 윤디의 마주르카는 소리가 살짝 뭉개진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음 잘 모르겠다.

이어 피아노 소나타는 2번 장송행진곡을 쳤다. 2번은 1번이나 3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들어 보니 정말 좋았다!! 4개의 악장이 따로 놀아서 초연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각각의 주제가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재미있다. 특히 딴- 딴-따딴- 하는 무거운 주제가 나오는 3악장(바로 장송행진곡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악장)의 느낌을 상당히 섬세하게 잘 살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대망의 폴로네이즈 6번 '영웅'!!!
윤디 본인도 쇼팽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는데, 나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서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난 아르헤리치랑 임동혁이 친 것을 제일 많이 들었는데, 확실히 이들과 느낌은 달랐지만 윤디만의 매력이 흠뻑 묻어나서 너무 좋았다. 템포가 상당히 빠른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테크닉이 예술이었다. 어쩜 그렇게 손이 날아다니는데도 음색이 저렇게 맑을 수가 있을까?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윤디가 다시 나와 앵콜 첫 곡으로 연주한 곡은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중국 민요였다. 오오~ 높은음 쪽에서 구슬이 굴러가듯 영롱한 소리를 내는 대목에서는 라벨의 물의 유희가 떠올랐다. 영롱영롱~한 곡을 치고 들어가서는, 다시 나와서 두 번째로 친 곡은 쇼팽 에튀드 혁명!! 다소 의외의 선곡이라 그런지 객석에서는 일순간 함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역시 엄청나게 휘몰아치는 대륙의 손가락...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건반을 휘어잡고는 격정의 연주를 마치고 들어갔다.

한 곡만 더 쳐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쨌든 좋은 연주를 듣고 와서 기분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