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후 2시 반,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지용의 첫 리사이틀 《LISZTOMANIA》.
리스트의 곡들로 가득 채운 첫 솔로 음반 《LISZTOMANIA》에 수록된 곡들을 토대로 펼쳐진 연주회였다.
지용의 음반을 처음 샀을 때, 이런 말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앨범 재킷 사진이 너무 강렬해서('허세스러워서'라 말하고 싶은 것을 꾸욱 참으며...) 보다가 푸훗 웃어 버렸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젊기 때문에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재밌어 보였다. 앨범 재킷 전체가 화보집 같기도 하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프로그램북 첫 페이지에는 이런 글귀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마지막 페이지에는 또 이런 글귀가...
'나의 반짝임은 결코 멈추지 않을 테니까.' 푸훗... 아 귀엽고나 ㅋㅋㅋㅋ
보통 프로그램북에 실리는 곡 설명은 에디터나 평론가들이 쓰게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지용의 프로그램북에는 지용 본인이 작성한 곡의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신선하고 좋았다. 단지 전체적으로 영어의 번역투가 많이 남아 있어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연주자 본인의 해석을 귀로 들을 뿐 아니라 눈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그 정도쯤이야!
어쨌든 오후 2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에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흰색 정장을 입고 나온 지용이 앞쪽 관객과 합창석 관객에게까지 꾸벅 인사를 하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앨범에는 실려 있지 않은 '라 캄파넬라'였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곡. 난 어릴 때 아마 오르골 같은 데서 들어 봤던 것 같다. 지용은 이 곡을 지금까지는 그 누구 앞에서도 연주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좋은 곡을 앨범에도 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되는 메인 선율이 곡의 진행과 함께 스타카토로 변했다가 레가토로 변했다가, 조용한 소리가 되었다가 저음과 더불어 웅장한 소리가 되었다가... 첫 곡부터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자기 페이스대로 능수능란하게 피아노를 주무르는 지용을 보면서, 그와 참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어서 사랑의 꿈(녹턴 3번)을 쳤다. 예전에 윤디가 치는 것을 듣고 너무 좋아서 나도 꼭 연습해서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 줘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곡이었는데(결국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지금은 피아노를 쉬고 있지만...) 지용의 음반에도 실려 있길래 기뻐하면서 감상했었다. 음반을 들으면서, 젊은 패기로 통통 튀는 연주를 할 것 같은데 다소 느린 템포로 차분한 연주를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랄까, 필이 충만한 느낌이랄까? 본인의 느낌을 정말 충실하게 살려서 솔직하게 친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것은 오늘 연주회에서 더욱 풍부하게 드러났다.
1부 마지막 곡인 나단조 소나타를 내가 처음 들었던 것은 젊은 시절에 녹음한 아르헤리치의 음반에서였는데, 연주 도중 현이 끊어져 버릴 정도로 강철 타건을 구사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동안 굉장히 강렬하고 공격적인 소나타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지용의 소나타를 들으면서 그 곡이 이렇게 다양하고 선명하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놀라웠고, 신선한 경험에 귀가 즐거웠다. 단지, 모든 악장을 이어서 치는 바람에 집중하는 게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인터미션을 마치고 시작된 2부에서는 조명 장치가 함께 사용되었다. 이후 2부 내내 배경으로 영상이 깔렸는데, 아마도 지용이 직접 작업한 작품이라는 듯하다. 무대 전체에 푸른 풀밭 같은 영상이 비치는 가운데, 조용히 등장한 지용은 그 풀밭 사이를 헤매다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주변에서는 "어머, 연기하는 거야?" 하는 수군거림이 들리고, 나는 옆에 앉은 언니에게 "앗, 이런 곳에 피아노가?" 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는 지용을 흉내 내기도 하고 ㅋㅋㅋ 아무튼 그러면서 2부 첫 곡인 '헌정'이 시작되었다.
조명 장치는 그 다음 곡인 '물레질 하는 그레첸'에서 끝없는 슬픔을 표현하다가 '위안'에서 그 슬픔이 걷히는 모습을 나타내 주었고, '물위에서 노래함'과 '세레나데'에서는 잔잔한 물결을 표현하는 배경이 사용되었다. ('마왕'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허허벌판에서 계속 달렸다. 왜 달렸던 걸까? ㅎㅎ) 본인의 연주를 '손'으로 표현해서 '귀'로 들려줄 뿐 아니라, 프로그램북에 실린 '글'이나 연주와 같은 타이밍에 방사되는 '영상'을 통해 '눈'으로도 느끼게 해 주려는 듯한... 잘 포장된 선물세트 같았달까? '리골렛토 패러플레이즈'를 마지막으로 본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이후 앵콜곡으로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보웬의 토카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했다. 커튼콜을 할 때마다 그가 입고 있던 체크무늬 호박바지와 빨간끈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ㅋㅋ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솔직한 연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번 연주가 시작되면 놀라운 속도로 피아노에 흡입되는 모습에, 곡을 마치고 건반을 힘차게 훑고는 박차고 일어나던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에 남는다. 그 모든 건 젊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 ㅎㅎ 예술가적인 삶을 동경하는 내겐 마냥 좋아 보였다. 이번 연주회를 계기로 지용에게 더욱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눈여겨봐야지!
그런데!! 커튼콜이 거듭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는데, 지용은 그런 관심이 싫지 않은 듯 웃기도 하고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대놓고 플래시를 빵빵 터뜨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뭐 본인이 즐기는 듯하니 거기까진 괜찮았다... 근데!! 인간적으로!! 연주 중에는 좀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 3번째 앵콜곡 때, 연주자는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데 눈 시리게 플래시가 번쩍번쩍...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관객들,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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