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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만화, 애니메이션

[만화] 프론트 미션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

두릅이 2010. 11. 12. 23:47
(자그니님 블로그의 학산문화사 도서 이벤트 리뷰입니다.)


 프론트 미션이 만화로 나온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플레이한 지 이미 십수년이 지난, 기억 속 어딘가에 남겨져 있는 조각 같은 것이 되어버려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 조각은 다시 꺼내어질 운명이었는지, 리뷰 이벤트로 책을 받게 됐다. 

  원작도 종군기자의 눈으로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지만 배경 설정의 역할이 강했고, 결국 주인공은 번처와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본 작에서는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주인공이다. 첫 페이지부터 그 참혹함을 처절하리만치 그대로 보여준다. 원작에서 느꼈던 참상은 마치 CNN에서 보도하는 이라크전을 봤던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의 전개에 모태가 되는 첫 화 역시 절망 끝에 불씨처럼 남아있는 희망이 가차없이 짓밟히며 끝나고, 2화는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삼았던 전쟁이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돌려주는 지 보여준다.

 원작이 나온 것이 95년인 만큼 국가가 연합해서 분쟁이 일어난다는 설정에는 20세기의 잔재가 묻어있지만, 전쟁과는 아무 관계없이 평온한 일본이 보여지는 장면에서는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대리전으로 표출되는 현대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은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으나, 왜 그런지는 조금 후에 깨닫게 된다.) 2화는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삼았던 전쟁이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돌려주는 지 보여준다. 규모만 다르지 우리 아버지 세대에 계셨던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한국을 취재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하철에 예비군이 그득한 모습은 위기라기보다 마치 우리나라의 일상을 찍은 듯한 느낌이었다. 정치적 이유로 그 전부터 많았겠지만, 내 기억속의 전쟁 위기론은 90년대 초반 북한의 NPT 탈퇴와 서울 불바다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누나나 선생님이 워낙 그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줘서인지, 비슷한 위기상황이 될 때마다 꽤나 겁을 집어먹었다. 가끔은 전쟁이 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본 작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장면이 그것과 꽤 비슷해서 진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많은 시리즈가 나왔으니 이미 나와는 접점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제 2차 하프만 분쟁, 프리덤 시티 등 기억 속 조각에 쓰여있던 단어들이 하나둘 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잠깐, 제 2차 하프만 분쟁? 그럼 게임과 같은 시대라는 건가? 아니, 게임이 1차 하프만 분쟁이었나? 갑자기 몹시 궁금해져서 검색해 보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책장을 뒤져보니, 있었다. 

   8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 샀었지만 몇 번이나 엔딩을 본 크로노 트리거, 성검전설2와 달리 프론트 미션은 95년 여름 이후 다시 플레이한 적이 없었다. 뒤적이면서도 내가 정말 샀었나 안샀었나 아리송했을 정도. 어쨌든 프론트 미션은 내 기억 속 뿐만 아니라, 우리집 책장에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 15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 본다.

  1편은 게임성이 그다지 우수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클리어할 때까지 딱 한 번 게임오버 된 적이 있을 정도로(지옥의 벽 부대와 싸울 때) 평이한 난이도였고, 마지막 보스는 장거리 미사일만 쏘아대면 노 대미지 클리어도 가능했다. 

 그러나 치밀한 메카닉 설정이 당시 게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했고, 번처의 커스터마이징이나 투기장 전투 등 즐길거리도 많았다. 이후 시리즈도 게임성 면에서는 평가가 낮았지만 두터운 팬 층이 형성되어 시리즈가 계속 이어져 왔고, 아머드 코어 같은 게임들은 이 게임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편은 그러한 흐름이 확립된 작품인 만큼 21세기 두 연합이 대립하는 현실적인 시대배경과, 병기와 생명공학이 결합된 세계관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기억에 더욱 깊게 남아있는 것은, 실종된 연인 카렌을 찾아 떠나는 로이드의 이야기였다. 후반의 비극적인 재회와 그 후 함께 길을 떠나게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떠올려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정황도 모르고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공략집에 번역된 대사(아마도 게임매거진 공략이었던 듯)를 읽고 처절하게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카렌, 이제 나와 함께 가는 거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숙적 드리스콜의 번처를 파괴한 후 결국 카렌과 재회하게 된 로이드의 대사였다.  



 감상에서 되돌아와 매뉴얼을 펴고, 첫 페이지에 있는 프롤로그를 읽어봤다. USN군의 라카스 공장이 OCU군에게 파괴되었다는 소식에 OCU는 이를 강력히 부인, 결국에는 USN군의 선전포고로 제 2차 하프만 분쟁이 발발...아..! 

 기억상실증 환자의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갑자기 기억 속에 있던 조각이 부채처럼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본 작에서 주인공들이 언급하는 USN군의 '황당한 뉴스'는 바로 원작 게임의 프롤로그였던 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스샷 찍기가 힘들어 에뮬을 돌리니 마침 대사도 한글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도 이 사건을 그대로 차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그려진 상태에서 이 장면을 다시 보니, 보여지는 인물들과 그 대사 하나하나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고, 조금전 감상에 빠졌던 재회 장면도 다시금 진하게 다가왔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것 같다. 만화책 한 권이 기억 속의 조각을 이렇게 크게 부풀려주다니..

  이렇게 몇 번 감동의 도가니를 맞고 나니, 본 작은 처음 읽을 때의 단순히 참혹한 전장이 아니라, 이토록 감동했던 스토리와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다음편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물론, 박스를 뒤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비록 복사이긴 하나) 게임의 2편 또한 궁금해졌다. 

 재미있게 즐긴 하나의 이야기는 시나리오가 끝나면 곧 잊혀지지만, 세계관에 빠지면 그 이야기는 연대기에 기록된 하나의 역사가 된다. 더이상 그 이야기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역사에 의한 결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아아 갑자기 고1때 제타건담을 보고, 수많은 설정 자료들을 찾아읽던건덕으로거듭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동안 푹 빠졌던 건담, 마크로스, 스타워즈에 이어 내 머릿속에 또하나의 연대기가 생겨나려고 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전개 역시 옴니버스 식일 것 같아서 원작 게임의 흐름과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계속 사 볼 생각이다. 


PS. 드디어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을 수 있게 됐다 만세! 이런 느낌도 참 오랫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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