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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만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7

두릅이 2008. 11. 18. 02:47

 마크로스 7을 처음 봤던 건 아마도 94년 무렵, 게임챔프에서 다뤘던 애니메이션 계 뉴스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크로스 플러스와 마크로스7이 공동제작된다는 소식과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었는데, 당시의 내가 아는 마크로스는 52가지 게임에 있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횡스크롤 슈팅과,
SBS에서 방영했던 '출격 로보텍'(에서 로이 포커가 죽는 장면) 정도였다. 메카닉 디자인만 치면
스페이스 건담 V도 끼워줘야 할까..

 고3 초반 동안은 내 인생에서 확실히 오덕후(오타쿠 말고)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심코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봤다가 민메이에 완전히 빠져서 몇 달을 보냈다. 비디오를 사서 마지막
장면만 몇 번이고 다시 보는가 하면, 토요일 오후 교복을 입은 채로 용산까지 가서 '마크로스 송 콜렉
션'앨범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결국 앨범은 인천의 J-POP 매장에서 구했지만..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에 빠져있던 사이에 스쳐간 '마크로스 플러스'는 샤론 애플의 비주얼이나
극한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공중전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초시공요새에 이어 '있을 법한'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칸노 요코가 맡은 음악 역시 마크로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아니
그를 뛰어넘어 마크로스 자체의 품격을 높이는 수준이었다. OVA에 수록된 '마크로스 크로니클'영상
까지 본 후 내 머릿속에는 스타워즈, 건담 외에 또 하나의 연대기가 수록되었다.

  마크로스7의 영상을 처음 본 것은 그 크로니클이었지만, 짧아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일본
어를 알아들을 수 없던 시절이었기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르겠고..대여점에 꽂혀 있던 정식판
만화책 '마크로스 7 TRASH'에서도 파이어 봄버는 포스터만 몇 장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그들의 노래 때문. '7th MOON', 'MY FRI
END' 의 2곡과 'Dynamite Fire'앨범의 곡들을 고3내내 들었다. TV판에 주로 나오는 곡은 아니었지만
한 곡도 버릴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노래가 좋았다. 바사라가 염원하듯이, 나는 그들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02년에 비로소 구할 수 있게 되어 CD로는 구워뒀는데, 아마도 발키리 안에서 노래부르는 바사라를
보고 황당해 관둔 기억이 있다. 왜 이제와서 보게 되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최근 본 프론
티어의 영향일 것이다. 프론티어 2화에서 셰릴이 노래부르는 장면이 너무 좋았는데, 내가 그토록 좋
아했던 7의 노래들은 과연 어떻게 보여질 지 궁금해졌다. 발키리 안에서 기타를 연주해도 좀 참아주
자고 생각하며..

 결국, 원작이 방영된 지 14년만에야 비로소 보게 됐다.

 마크로스를 이루는 근간인 '노래', '삼각관계', '메카닉' 중 노래에 특화되었다지만, 이런 식으로 풀
어낼 줄은 몰랐다. 전투기에 탑승해서 노래하고, 미사일을 맞으면서도 발키리의 스피커로 노래를 들
려주고, 얻어맞아가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사실 요즘 센스로는 속아주기 조금 힘든 부분이다.
초반에는 작품 내의 등장인물들 역시 그런 바사라의 모습에 조소를 보낸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고 파이어 봄버가 활약하면서 이는 현실이 된다. 노래는 악의 근원에게는 무기
가 되고, 세뇌당한 동료들을 구해내는 치유제가 된다. 파이어 봄버의 노래에는 분명 무언가가 느껴지
지만, 개연성이 많이 부족해서 억지스러워 보인다. 서서히 밝혀지는 적의 수장이나 적의 요새, 간부들
의 등장 패턴과 대사는 완전히 전대물의 플롯 그대로다.    
   
 사운드 포스가 결성되고, 사운드 부스터라는 추가 무기가 생겨나면서 노래가 에너지가 된다는 설정
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지만, 유치할 뿐이다. 배경에서 마크로스 플러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이것이 과연 같은 세계인지 의심할 정도. 시대의 흐름 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보는
내내 지루함과 함께 그런 실망감이 몰려왔다. 이게 과연 10년 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만들었던 스
탭들이 다시 뭉쳐 만든 정통 후속작이라니..

 그러나 이런 느낌은 애초에 마크로스 플러스의 잣대로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있어 그런
오류를 알게 해 준 분수령은 적 간부인 기길이 바사라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장면이었다. 이 정도라면
이미 개연성을 신경 쓸 단계가 아니다. 그저 느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초반에 답답했던 바사라
의 행동들이, 나아가 이 작품의 스탭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마크로스7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마크로스 프론티어는 누구에게나 한
번 보라고 권해줄 수 있지만, 이 쪽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섣불리 보라고 건네기가 쉽지 않다. 동감한
다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깊게 들어오지만, 그런 계기를 가지지 못하면 그저 유치한 꿈이 될 뿐이기 때
문이다.  

 그렇게 이 세계에 빠져들 무렵에 이르러, 적들의 정체가 이전에 만들어진 또 다른 이종 개체, 프로토
데빌이라는 설정이 드러난다. 전작에서 언급된 프로토컬쳐가 왜 멸망했는지, 왜 음악 에너지에 반응하
는지를 설명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전대물 보스같이 생긴 적들도 '마크로스'라는 세계관에 포용된다. 
유치해 보였던, 적들을 일깨우는 음악과 꿈들 역시 연대기의 한 면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
한 것이다. 

 마크로스7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꿈이 이루어지는, 꿈 같은 이야기다. 좀 우습지만, '신경쓰
면 지는거다.'외에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만들어진 시기의 차이가 있는 만큼 프론티어에 비해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프론티어에서 말하려는 꿈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바사라는 은하를 향해 노래한다.
라스트 신에서 게페르니치가 노래를 따라부르고, 감화되면서 은하를 떠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조금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이런 것이 좋다. 좀 맛간 이야기가 나올지라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 할
거라면 제대로 하는 것 말이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보다도, 시나리오를 통과시켜 준 사람이 정말 대단하
다는 생각이 든다. 괴작이라 칭하는 사람이 이만큼 늘어날지라도, 이만큼은 확실하게 꿈에 근접하게 해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부럽다. 정답은 아닐 지라도, 게임을 만들 때도 꼭 잊지 말아야 할 생각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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