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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라면 이야기

라면 이야기 26 - 34년 만의 재회, 삼양 쇠고기면

by 대학맛탕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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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 쇠고기면과 갑자기 헤어진 이후 너구리와 육개장 사발면, 짜파게티로 농심의 노예가 된 나에게 삼양식품은 햄맛 삼양라면을 내놓은 정도밖에 기억이 없는 희미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쇠고기면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해서 진라면 순한맛, 스낵면, 안성탕면 등에서 간접적으로 맛보는 수 밖에 없었다.
 
농심 라면에서 쇠고기면의 향수를 느낀 뒤 다시 찾아보게 된 쇠고기면. 쇠고기면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우지 파동 때문이었고, 큰 타격을 입은 삼양식품은 95년에나 다시 쇠고기면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쇠고기면을 농심이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삼양 쇠고기면을 카피캣으로 생각해서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 오해로 인해 34년 간 눈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리워하던 쇠고기면을 드디어 만났다.
 
내 인생의 첫 라면.  

 
일본 라면에는 나트륨 함량이 표기되지 않아 요 근래 연속으로 한국라면 포스팅을 쓰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트륨은 약간 높지만 탄수화물과 지방 모두 농심라면보다 적은 편. 콜레스테롤도 0이면 오히려 건강한 라면 아닌가?

 
건더기 스프도 없고 딱 분말스프만 하나 있다. 묘조식품 (明星食品) 의 대표 라면 챠루메라(チャルメラ)와 겹쳐보이는 부분. 이렇게 라면답게(?) 말린 면도 오랜만에 본다.

 
스프를 풀어 미리 국물을 끓여주고,

 
면을 4분 간 끓인다. 보통은 약간 심이 남도록 끓이지만,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끓여주셨던 그 식감을 살리기 위해 살짝 더 끓여주기로 했다.

 
풀어헤치지 않으면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오랜만에 보는 듯. 

 
이거다. 노란 빛깔의 소고기 베이스 국물에 빨갛게 떠오르는 고추기름. 

 
어떻게 이렇게 모양과 빛깔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냐면, 초등학교 1학년 때 거의 매일같이 이 라면을 먹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식당을 하던 우리집에서는 끓인 쇠고기면을 600원, 신라면을 800원에 팔고 있어서 집에 박스째로 라면이 있었다. 감시를 피해 어떻게든 하루에 한 번은 쇠고기면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끓이지 못하면 부숴서라도.
 

 
먹어본 감상은..
어렸을 때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맛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34년 간 너무나 그리하던 그 맛과 재회한 것이다. 다 먹고 밥을 말아먹을 때의 그 마일드함까지. (밥 말은 사진은 생략했다.)

진라면 순한맛이나 스낵면의 그 구수함에 얼큰한 맛이 밸런스 좋게 섞여있는 국물맛. 신라면이 매운 맛으로 한국의 라면업계를 평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계열의 맛이 '한국 라면'이 되었을 것이다. 
 
진라면 순한맛과 매운맛을 섞는다고 이 맛이 되지는 않으니, 맛보려면 역시 이 라면을 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농심라면에서 이런 스타일 라면의 향수를 진하게 느끼긴 했으나, 다시 되돌아보면 무파마 스타일의 장국 베이스가 강해서 쇠고기면과는 사실상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삼양식품과 묘조식품, 닛신식품과 농심이 겹쳐보일 때가 많다. 새로운 기획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을 압도하는 측면에서 닛신식품과 농심이 닮았다. 그리고 무리한 기획이나 확장보다는 꾸준하게 제품을 개선해가는 측면에서는 묘조식품과 삼양식품이 닮았다. 
 
묘조식품은 90년대 경영 부진으로 결국 닛신식품의 자회사가 되었지만, 80년대 말 큰 위기를 맞았던 삼양식품은 힘든 시기를 버텨냈고,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히트로 시가총액에서 농심을 압도하게 되어 운명이 갈렸다. 
 
농심라면은 히트하면 일본에서도 판매하겠지만, 쇠고기면은 삼양식품이 더 사세를 확장해도 일본에서 판매할 것 같지는 않다. 돌아가는 여행가방에 잔뜩 넣어가서 아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