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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영화, 전시

[영화] 화려한 휴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9.
 아마도 디 워보다 좀 앞서서 개봉했던걸로 아는데, 이제서야 봤다.

 디 워를 보던 날에도 약간 고민하다가 결국 디 워를 선택했고, 휴가 때에는 골치아프고 심각한 영화를 보기
싫어서 트랜스포머를 한번 더 봤다. 그런데, 좀 많이 늦었다. 진작 이것부터 봤어야 했다.

 도서관에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다가 광주사태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후로 왜 모두가 아는 사실
인데도 재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건지, 그 끔찍한 일을 감행한 당사자들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진상 규
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열받고 억울했다. 울고 싶었다.

 초반의 무력 진압 때까지는 그런 내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정말 왜 그래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광주
시민들의 상황은 리얼함 그 자체였다. 병사와의 추격전도 숨막힐 정도로 긴장이 됐다. 그런 느낌은 실질적인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중반, 그러니까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신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갑자기 모든 사건의 초점이 주인공과 일부 개그 캐릭터에게만 맞춰지고, 극적 재미
를 위한 장치들 때문에 정작 문제의 본질인 광주사태는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전두환의 맞수였다가 정치적으로 밀
려난 던 가공의 인물인 퇴역장교 박흥수의 존재 역시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그에 의해 조직화되어가는 시민군을
보여주면서 갑자기 광주 시민들이 실미도 부대원들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실미도 부대원들도 억울한 사람들이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던 인봉이 돌아오고, 진우의 선생님을 비롯, 여러 사람이 시민군에 가담하는 장면
부터 문제는 심각해진다. 마치 자신들의 사상을 관철하려고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이라면 살고 싶어서
미치고 팔짝 뛰어야 정상이지, 의연하게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계속되는 '도청 점거 라이프' 속에 공수부대와의 대치 상태라는 긴장감이 완화되는 것도 모자라, 5일 후라는 날짜
가 결정된 이후에는 '마지막 슬픔의 클라이막스'를 점층시키는 장면만 계속된다. 이들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죽을 염려가 없다. 마치 중요 이벤트 직전에 세이브해놓은 RPG게임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준비된 마지막 장면. 인물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면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감흥이 없다.
어차피 가공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나올 지언정 광주에서 벌어진 엄청난 일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냥 재난
영화나 전쟁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들 같다. 주인공들의 슬픔에 울어줄 것이 아니라, 광주사태라는 비극 자체에
대해 통곡해야 하는데 말이다.

 웃는 망자들 사이에서 혼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신애의 라스트 신 후에,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무슨 메시지라도
나올 줄 알았다. CGV광고로 쓰이는 이요원의 멘트 말고, 정말 그 날을 잊지 말자는 문구 말이다. 그런데 없다. 그냥 
스탭롤이 흐른다. 나의 바램이 좀 더 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디 워에서 나온 그런 감정에의 호소가 여기에야말로
필요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빠져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투덜투덜 많이도 늘어놨다. 그래도 고맙다. 그 날을 기억시켜줘서. 진짜 그 놈들은 인간 아니다.
 (그 놈들의 범위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제일 나쁜 놈은 지금도 뻔뻔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거 정말 피가 거꾸로 돌 노릇 아닌가.

 

 
 다음에 화려한 휴가 검색창에 치면 카페글 중에 광주학살 사진이 포함된 것이 있다. 보다가 더이상 못 보겠어서
닫아버렸다. 정말..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