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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조카에게 레고 만들어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8. 12.
어젯밤엔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늦게 잤는데, 아침부터 조카가 날 깨운다.

조카: 삼촌 일어나요!!
나   : (모른척 하다가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레고 만들어달라구?
조카: (찔렸는지 우물쭈물하더니) 아, 아니요 아침먹으라구요!
나   : 그럼 삼촌 밥먹고 다시 잔다?
조카: 아..아니예요! 만들어줘요!
나   : ^_^ (이녀석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이틀전에 약속을 했으니 두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 4시간쯤 잔 셈이지만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약속한 대로 박스 표지에 있는 용을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 날개로 쓰는 부직포가 없었다. 이모가
포장지인줄 알고 버리신 것이다. 울상인 조카를 달래서 그냥 뼈다구 용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번엔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주는 와이어가 없었다. 그 쪽은 형수님이 안 쓰는 건줄 알고 버리셨댄다 -_-;
 결국 표지를 장식하는 용과 킹기도라는 물건너가고, 뱀 다음으로 제일 쉬운 도마뱀 공룡을 만들
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간단한 것만 만들어 주면 되니까 좋았다. (아니다 솔직히 아쉬웠다.)

 내가 사다준 레고는 조카가 만들기에 좀 빡세긴 했다. 관절부위 조립은 거의 1500원짜리 건프라 급
이고 깨작깨작 작은 부품도 많아서 7살 조카가 만들기엔 무리였다. 그런데 내가 7살 때였다면 당시
유행하던 400원짜리 가리안을 슬슬 만지기 시작할 즈음인데..아마 그 때의 나에게 이런 것을 갖다줬
다면 일주일 걸려 8가지 다 만들어보고 나만의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 보고자 했을 거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건지도..)

 어쨌든 조카는 그저 갖고노는 것만 좋아하고 어렵다고 배우려 들지를 않았다. 나는 시간이 더 걸려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줘서 만드는 기쁨을 알게 해 주려고 했는데 만들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영어숙제
했냐는 형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거 하는동안 나는 계속 만들고 있는데, 왠지 나만 재밌게 갖고노
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어숙제를 다 하고 돌아와서 또다시 하나하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
다가 조카는 또 불려갔다. 반쯤 만들었는데 조카는 이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미술학원이랑
과학학원이랑 브레인스쿨인가 하는 지능개발 학습소를 간댄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이다.

 오늘은 인천 집에 가기 때문에 다녀와서 갖고놀기라도 하라고 공룡을 완성했다. 만들면서, 그리고 다
만든 걸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레고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 친구네 집에
서 해봤던 건 파란색 깔판과 집짓기용 벽돌과 창문, 지붕, 그리고 나무들 정도였는데 이건 완전히 프라모
델 만큼이나 멋지고 견고하게 잘 짜여져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어도
학원에 가서 그림을 배우고 과학학원에 가서 실험을 해야 한다는 현실은 뭔지..

 일곱살이라면, 아니 어린이라면 로봇이 진짜로 있다고 믿고 나도 언젠가 저런 로봇을 꼭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야 할 때 아닐까? 비록 언젠가 그 꿈들은 깨지겠지만 그건은 중학생 이후라도 절대 늦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친가 쪽의 일곱살짜리 조카가 NPC와 퀘스트의 보상 개념을 이해하며 메이플 스토리를  하는 것을
보았을때도 크나큰 충격이였는데.. 메이플 스토리에 빠져 산다는 요즘 초등학생들은 과연 그 안에서 무엇을
볼까? 나도 저런 용사가 될 거야! 같은 꿈은 꾸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게임은 게임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혹시 20년쯤 지나면 젊은이들은 다 컴퓨터와 게임만 할 줄 아는 애늙은이가 되어 있고 나같이 '철없는 어른
들' 만이 장난감을 갖고노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 새삼 두려워진다. 이제부터라도 조카녀석에게 꿈을 심어
주는 장난감을 사줘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엔 레고 스타워즈 사줘야지........(누가 만들려고 ^^?)



     부품을 반밖에 안 쓴 모델이 이정도. 모든 관절이 자유자재로 구동된다.(80년대 완구 광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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