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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기획 이야기

게임업계 벌써 일 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 17.
 오늘로 게임업계에 입문한 지 정확히 1년이 된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느라 깜빡 잊고 있다가
퇴근길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기본 소양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운 좋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1년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1년 동안 내가 뭘 해 왔는지 분기별로 되돌아보고자 한다.


업계 입문 직전(05년 12월)
 2학기 수업을 계기로 '나는 게임 기획자가 될 거야!'라는 결심을 바탕으로 매일매일 '게임 아키
텍처 & 디자인'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맨땅에 헤딩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때 집중해서 읽었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지금도 도움이 된다.


 1/4분기
 지금의 사무실에 팀장님과 파트장님 두 분과 나까지 해서 4명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게임
업계에 처음 입문한 나는 '게임회사 이야기' 외에는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고무되어 있었고, 게
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의 아이디어 문서(주로 게임플레이)를
작성했다. 문서도 허술하기 그지없고, 현실성 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지금 들춰보면 의외로 쓸만
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 나는 내 할 일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출근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 때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상력과 기획' 을 읽으면서 기획자는 할 일
을 찾아서(혹은 만들어서)해 나간다는 것을 배웠다.

 2/4분기
 프로젝트 시동 전에 준비된 기획서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완성했고, 지금 돌아보면 프로토
타입으로서 썩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그 후에는 여러 퍼블리셔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게임 비즈니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최근의 경향은 어떤지를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프로토타입을 비즈니스를 위한 것으로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였다. 시간이 지나고 게임의
방향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프로토타이핑의 진정한 목적은 게임의 컨셉을 간단히 구현하여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후 개발 단계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였음을 깨달았다. 게임기획 관련 책에 어디나 나와있는 말인데, 결국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확실히 내 지식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UI와 튜토리얼 기획을 했는데, 대부분 여러 게임을 해 본 경험과 최신
동향을 '대략' 파악하여 직관적으로 만들었다. 구현 단계에 피드백을 받으면서 구현을 위한 기획
서에는  작업명세와 요구사항이 확실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프로그래밍이라곤 교양 수업에서 자바를 20시간 정도 학습한 상태에서 스크립트 언어를 사용하
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 스크립트 언어를 통한 게임 개발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던 터라, 나
는 스크립트 언어를 '조금 더 어려운 RPG쯔꾸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많이 달랐으나 내가 게임
을 만드는 듯한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빙산의 일각이였지만.

3/4분기
 플레이 가능한 빌드가 계속 지연되자 팀원들도, 나도 위기감을 느꼈다. 이 시기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것이 기본일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그 긴 시간동안 내가 했던 것
은 조절 가능한 변수를 가지고 계속 바꾸고 바꿔가며 테스트하는 것 정도였다. 다른 일도 제쳐두
고 그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점점 사고는 편협해졌고, 팀원들에게서 좀 더 쉽고 단순했으면 좋겠다
는 피드백이 들어와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정말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하고 방어할 뿐이였다. 지
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창의성은 커녕 귀까지 막힌 좋지 않은 기획자의 본보기가 되어 있었으니까.
 PT를 앞두고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돌아갈 때, 나의 무력함을 느꼈다. 나는 경험부족으로 허둥지
둥댔고 당면한 과제 중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여름방학 동안 게임에 올인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획이 통과되었을 때, 거의
마지막 희망을 끌어안는 듯한 기분이였다. 하지만 그 기획 역시 이전의 편협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에는 쉽고 간단한 룰의 새로운 안으로 대체되었고, 그때까지도 편협했던 나는 한동안
겉돌고, 방황했다. 팀도 나도 가장 힘든 시기였다.

4/4분기
 팀으로서는 3분기의 실책을 보완하고, 새로이 다져나가는 시기였다. 나 역시 새롭게 마음을 먹고
일에 임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이나 개발 방법론에 해박하신 기획자 분이 새로 들어오신 뒤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조건 열정만으로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았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죽음의 행진'을 읽으면서 일정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과, 그런 경우에 우선순위를 신속
하게 설정하여 목표를 새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빌드가 유지되고 목표했던 게임플레이가 가시적으로 보여지자 나를 포함해서, 팀원들의 태도 역시
바뀌었다. PT때 역시 큰 문제가 발생할 뻔 했는데, 능숙하게 대처하고 있는 내 자신에 놀랐다. 경험
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러나 이번엔 네트웍이 발목을 잡았다. 알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생겼고, 그것이 서버-클라이언트
아키텍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기획보다는 일정 관리자의 역할을 더 많이 했다. 그 덕분인지 12월부터는 팀 내에서 공식적으로 PM
을 맡게 되어 일정을 조율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나 학교 팀 프로젝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나에게 딱 맞는 일이였다. 아직 미숙해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개선하는 중이다. 물론 기획 일이 메인이고 이쪽은 부업이지만.

 개인적인 성과를 정리해 보자면, 1년이라는 기간에 걸맞지 않게 많은 경험을 했다. 그러나 1년이라는
경력에 걸맞는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총 쏘는 법은 배웠지만 총알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
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으나 참 힘들고, 뒷날을 예측하기 힘든 곳이 게임 업계다. 그 현실을 알게
됐지만, 역시 내 평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쨌든 올해는 '실력'을 쌓는
데에 목표를 두려고 한다.


 하여튼간에..올해는 무조건 게임 나온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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