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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기획 이야기

수학과 게임 기획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8. 26.
좋아했던 과목 vs 싫어했던 과목은?


이 트랙백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나도 학창시절에 수학을 싫어했다. 또 수학이 싫었다는
사람들의 다수가 그렇듯이 초등학교 때는 수학을 좋아하는 편이였지만 정확히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거의
손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에 처음으로 30점대 시험점수를 남겨서 그랬던 건지..

 비슷한 시기 영어도 같이 손을 놓았지만 그나마 단어라도 외워서 어떻게든 시험을 넘길 수 있었던 영어와
달리 수학은 어떻게든 매달렸다. 고2때 이과를 지망했는데 1년 내내 모의고사에서 40점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수리영역을 제외한 모든 과목이 내가 높은데도 그것 하나 때문에 대여섯명에게 제쳐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는 공식을 적용해서 최종 답안이 나오는 식을 도출하는 말 그대로의 '논리적 수학'에도 약했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뒤바뀌는 '산수' 역시 집중력이 부족해 항상 실수가 많았다. 말 그대로 수학을 못하는
2가지 핸디캡을 모두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수능의 압박까지 다가오는 고2 말에 나는 문과로 전과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그 해 겨울방학동안
처음으로 과외를 해서 공통수학의 정석을 처음으로 한번 다 봤다.


    기념으로 지금도 갖고 있는 공통수학의 정석. 얼마나 괴로웠으면 표지에 '즐거운'이라고 써붙였을까..

 고3이 되어서는 고2때 거의 버리다시피 했던 수1을 다시 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당시 수학 문제집 중에서는
쉽기로 이름난 블랙박스 수리영역 1과 디딤돌 '기본' 수학 문제집은 정석의 빨간 공식 밑에 있는 기본 문제만
풀 수 있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교재였다. 수능이 다가올 때에 이르러서는 '1점짜리 공통수학' 이였나.

 여하튼 대략 5년동안 수학이라는 과목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대학교에 가니
전공은 죄다 일본어, 교양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이 인문학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5년
간 수학의 수자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이미 나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과목이니까.

 그리고 게임 기획자의 첫발을 내딛은 지금, 5년간의 스트레스와 5년간의 공백기 때문에 엄청난 후폭풍을
맞고 있다. 게임 기획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시스템 기획은 수학을 모르고서는 말이 안된다. 게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파라미터들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스템 기획이기 때문
이다. 공식을 외우기에만 바빴던 내가 공식을 만들려고 하니 이거야 원..애초에 기본 공식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써먹으려고 하니 찾아보기가 다 날아갔다 OTL..

 하지만 하나하나 배워갈수록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없다. 물론 아직 나는 수학으로서 게임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면 멀고도 멀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자연 현상을 완벽하게 수학으로 풀어내는 것은
매우 복잡하기도 하고, 몇몇 변수들 때문에 수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면도 있지만, 역으로 수학 공식을
통해 게임 안의 자연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에 비하면 아주 간단하다. 둠이나 퀘이크같은 게임들은 하드
웨어가 발달할 때마다 그 복잡한 자연 현상을 게임 안에 더더욱 세밀하게 구현해서 시대를 앞서가는 리얼한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자연 현상을 약간 비틀어 줌으로서
게임플레이적인 면에서는 훨씬 큰 재미를 얻어낼 수도 있다. 그 가격(수식의 복잡함)대 성능(뿌려지는 화면
및 게임플레이)비의 최적점을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정말 능력있는 기획자라고 해야 하겠다.

 뒤늦게나마 그것들을 쫓아가야 하는 지금은 내가 정말 저런 것들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부하고 공부하자!! 라고 매번 나를 채찍질하지만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아쉽다.
누군가 내게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수학을 공부해야 되'라고 귀띰만 해주었으면 철없는
나는 수학만 죽어라 팠을지도 모르니까. 고2때 문과로 전향한 것은 결국 수능점수를 높게 받기 위한 것 외에 아무
런 이유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잡지(주로 게임월드 ^^;)를 독파하다시피 해서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라고 자부했었는데, 게임 역시 수학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안 건 채 1년이 못된다.

 고등학교때 수학 선생님이 일년에 한두 번씩 수업을 하지 않고 수학 과목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파하는 것을
들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이니까 저렇게 열변을 토하는 거겠지'
라고 속으로 되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게임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을 바꾸어 놓은 모든 자연과학, 혹은 일부 인문학(통계학, 경제학) 은 수학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였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3D 그래픽과 지금 글을 입력하고 있는 PC나, 정보를 공
유하는 웹 마저도 수학 및 논리학이 접목된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것이 있기에 생겨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어쨌든 뒤늦게라도 깨달은 것은 수학은 분명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신화학은 상상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수학은 물리학이나 경제학이라는 보조 수단을 통해서 현실을 증명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D 그래픽을 통해서 상상계를 눈앞에 펼쳐줄 수도 있다. 그들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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