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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기획 이야기

그간의 잡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9. 4.
 지난 2주간은 31일 사내 PT에 치여 정신없이 보냈다. 온 신경이 일에 집중되어 있어서 출퇴근 PSP외에 다른
게임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메신저에서 말 걸어오는 분들께 '바쁘니 일하러갑니다. 나중에 말걸께요'라고
말하고는 다시 일하기도 했다. 무언가 점점 꼬여가는 불안감에 대한 반증이였을까? 휴일에 할 일이 뚜렷히 보
이지 않아도 사무실에 일단 나오고, 야근하며 밤새도록 테스트하기도 했다.

 PT결과를 놓고 보자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초월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마감 2주 전부터 우려하던 테스트 환경 사전 구축 및 최종 빌드에 관한 QA
시간이 부족했음은 물론이고, 점점 마감에 다가갈수록 모든 것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정도는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졌다.

 결국 우리는 일정을 못 지켰다. 제대로 된 QA를 거치지 못했음은 물론 필수적인 feature도 대부분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PT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제대로 못 했으면 못 한대로 뭇매를 맞고 강한 다짐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였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였다. 우리 팀이 노력하고 만든 것의 반도 보여
주지 못했다. 녹이 슬어 총알이 나가지도 않는 총을 가지고 싸우러 나간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
을 알고 있던 팀원(나를 포함한)들 중 어느 누구도 PT취소라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마감 직전인 29~31일 동안은 온 신경이 일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진작부터 예견된 대로 일이
꼬이는 것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그 상황에 대한 나의 대처능력에 한계를 느낀 것이였다. 나는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능력도 부족했고 급박한 상황에 침착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굴었으며, 애초에 직위를 그다지 따지지도 않았
던 환경이였는데도 그걸 핑계삼아 최악의 사태를 막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 혼자만 죄다 한 건 아니지만 방학
동안 그야말로 올인했던 결과가 고작 이거라고 생각하니 가슴 속에서부터 화가 났다.

 다음날 대책회의 결과 드러난 문제의 원인은 역시나 프로젝트 및 리소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
이였고, 부가적으로 일부 파트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지적됐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번 마일스톤의 문제 원인과
비슷했지만 이번엔 폭탄이 제대로 터졌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약간의 안전사
고가 일어났을 때 문제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봐야겠다.

 업계에 입문하기 전, 아니 불과 지난달에도 나는 프로젝트 관리 부재의 사례를 든 수많은 포스트모르템을 읽고
있었고, 입문하게 된 계기인 조직행위론 텀 프로젝트에서는 게임회사에서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활발할 커뮤니케이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발표 후 강의실에서 쏟아졌던 박수갈채가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실제 상황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학교에서 배운 거 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이럴때 드는 것 같다. 물론 그 반대
의 경우로 '학교다닐때 공부 좀 할껄'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말이다.

 PT하는 동안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역시 지나고 나니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정도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고, 벌어지지 않아야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크게 터졌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던 문제까지 발견될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만큼은 확실하게 정해졌다.

 뼈아픈 고통으로 우리 자신의 포스트모르템을 완벽하게 얻어낸 지금 이 순간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때는 정말 팀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게 이번달도 죽어라 달려 볼 거다.












...어익후 그런데 개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