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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도쿄근교여행

이자카야 방랑기① - 하무라 시 오자쿠다이의 분부쿠(ぶんぶく) 

by 대학맛탕 2024. 3. 13.

먼저 이자카야 방랑기(酒場放浪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TBS계열에서 20년 째 장수하고 있는 이자카야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아주 심플해서, 시인이자 방랑객 요시다 루이(吉田類)가 도쿄의 한 역을 방문해서 낮에는 조용하게 동네를 산책하고 신기한 가게 저녁이 되면 목적지인 이자카야에 가서 마시는 것. 가게를 나와서 가게 이름으로 시를 하나 짓고 '그럼 저는 한잔 더 하겠습니다~' 하며 끝.

 

워낙 역사가 긴 만큼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그동안 방송한 가게를 지역별, 장르별로 필터해서 찾아볼 수 있는 방랑 맵을 제공하고 있다. 이 방랑맵만 찾아다녀도 도쿄의 숨은 맛집은 다 찾아볼 수 있고, 특집으로 지방의 이자카야도 소개한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이자카야의 문을 드르륵~ 열 때의 그 설렘과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과 손님들, 취기가 올라가면 옆자리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등, 일본 이자카야의 그 즐거움을 모두 대리체험할 수 있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서 항상 '저기서 맥주를 마셔야지!!!' 했던 아쉬움을 완벽하게 해소해 준다.

 

요시다 루이씨가 항상 느긋하게 산보하며 신기한 가게에서 담소를 나눈 뒤 '그럼 요거 한잔 하러가겠습니다!' 할 때의 타격감이 아주 일품. 종종 이게 방송인지 진짜 술판인지 모를 정도로 술을 드시는데 이게 이 방송의 최대 매력이다. 유튜브에 방송 이름으로 검색하면 꽤 딸려나오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기를(굳이 링크는 싣지 않겠다.) 

 

2003년 1회 키치죠지 '이세야 총본점'

 

2024년 1176회 아사쿠사 '모가미야'

 

여자 이자카야 방랑기(おんな酒場放浪記)도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스핀오프 방송으로, 본 방송에서 갔던 곳을 여성 패널이 방문해서 마시는 내용. 요시다 루이 단독인 본 방송과 달리 3명의 여성패널이 로테이션으로 방송한다. 패션모델 쿠라모토 야스코(倉本康子), 하모니카 연주자 테라사와 히로미(寺澤ひろみ)가 출연하고 있고, 3번째 패널은 여러 명이 거쳐갔다. 여기도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맵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쿠라모토 야스코씨가 완전 분위기메이커라서, 어느 술집을 가던 모두 건배건배~ 로 시작하고 떠들썩해진다. 반면 테라사와 아츠코씨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마시는 스타일. (하지만 술을 마신 뒤에는 특유의 크으으으으으...캬~~~~~~를 시전한다 ㅋㅋ)

 

이 방송을 2022년에야 알게 된 뒤 '아니 왜 이런 방송을 지금까지 몰랐을꼬...' 한탄하다가,

 

나도 방랑을 시작했다.(급전개)

방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니까. (근거없음)

 

처음으로 선택한 지역은 하드오프 방랑기로 가 본 적이 있는 하무라 시(羽村市). 서쪽에는 도쿄의 끝 오쿠타마(奥多摩町)로 넘어가는 오메 시(青梅市)、동쪽에는 요코타 미군기지가 있는 훗사 시(福生市) 마주하고 있는 조용한 거리다. 그래서 검색 필터에서는 오메 시 주변( 青梅市周辺) 을 골라야 찾을 수 있다.

 

2017.08.06 도쿄도 하무라 시 오자쿠의 게임샵 PAO

낮 코스는 도쿄 서쪽에 있는 오우메 시(青梅市)와 오쿠타마마치(奥多摩町)신주쿠에서 주오센을 타고 1시간을 넘게 가야 닿는 곳이다.도쿄도 전체 행정구역으로 보면 왼쪽에서 1/3지점에 있긴 하

willucy.tistory.com

 

 

하무라 시로 필터하니 마침 내가 가봤던 오자쿠(小作)가 첫번째로 뜨길래 바로 픽했다. 가게 이름도 너무 귀여운 분부쿠. 방송을 보기 시작하기 불과 두어달 전에 방송했다니 크으으... 탄식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들르기도 하니 산책하고자 오자쿠 역보다 한 정거장 앞인 하무라 역에 내렸다. 타치카와를 지나 오메 선이 되면 대부분 이렇게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하무라 역도 요코타 공군기지와 가까워서인지 미국식 햄버거 레스토랑이 있었다. 단품 메뉴가 맥도날드 수준이라 매우 신경쓰였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오자쿠 역이기 때문에 일단 스킵했다. 

 

기간한정 메뉴 양념치킨 버거와 양념치킨 플레이트. 일본에서 한국음식이 정말 인기가 많아서, 얌뇸치킨 이라고 30대 이하는 다 알아듣고 치즈 닭갈비는 학교 급식에도 나와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하무라 역에서 오자쿠 역으로 가는 길목의 상점가. 이자카야, 다이닝 바, 야키토리, 스낵까지 골고루 늘어서 있었다. 언젠가 이 지역도 방랑을..

 

 

고즈넉한 주택가를 지나서..

 

 

지나가는 길에 있던사실은 여기가 목적 하드오프 하무라점. 여기만으로도 두시간은 때울 수 있을 수 있는 규모였지만 오늘은 목적이 이게 아니기에 간단히 둘러보고 지나쳤다. 다음 고독한 수집가에서 다뤄보기로.

 

 

 

주오 선 선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자쿠 역의 유흥가가 나온다. 2014년 하드오프를 찾아왔다가 이 근방에서 스낵바 거리(スナック街)를 처음 보고 그 규모에 엄청 놀랐더랬다. 하지막 '스낵' 하면 소싯적 본 만화에서 접대부가 있는 술집으로 봤었기에 뭔가 무서워서 들어갈 엄두를 못 냈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런 곳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마 혼자 카운터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노래 한 곡씩 하는 동네 사랑방같은 곳이 더 많다.

 

이 날은 급히 지나가느라 다른 날 찍은 사진을 좀 더 실어본다.

 

 

 

 

 

돌아와서, 오자쿠 역 북쪽출구에 도착. 오늘의 목적지인 분부쿠는 남쪽 출구에 있어서 이 육교를 건너 역을 통과했다.

 

드디어 가게 앞. 노렌이 거꾸로 되어있는 데다가 한 글자가 나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장 오른쪽에 있는 가게다.

 

 

들어서자마자 큰 보울 (아래 사진에 위쪽에 살짝 나온 그릇) 에 잔뜩 담긴 안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파는 집은 높은 확률로 맛있다.

 

언제나처럼 먼저 홉삐 쿠로(ホッピー黒) 세트를 시켰다. 홉삐는 맥주맛이 나는 무알콜 음료로, 맥주가 귀하던 시절 맥주맛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소주에 타서 마시는 맥주맛 토닉워터 비슷하게 되어 있어서 이자카야 세 곳중 한 곳 정도 비율로 홉삐를 판다. (관서 지역에는 없다고!)

 

업무용이 아닌 가정용 홉삐(20ml 양이 적다)가 나와서 조금 의아해했지만, 소주의 양을 보고 홉삐의 2/3이나 되는 걸 보고 아주 인심좋은, 그리고 많은 손님들이 거나하게 취하는 가게라는 것이 느껴진다. 냉장고에서 꺼내오는 얼음 글라스도 두근두근함을 더한다.

 

 

 

먼저 모츠니코미(もつ煮込み)를 주문. 돼지곱창을 된육수에 푹 익힌 요리로, 함께 푹 삶아진 무와 당근도 단맛을 더해준다. 많은 이자카야에 있지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제대로 해서 내는 집은 적고, 이 요리를 간판으로 하는 이자카야도 있을 정도로 평범하면서 깊이있는 요리.

 

 

다음은 햄카츠를 2개 시켰다. 크기가 보통의 햄카츠가 아니라 돈까스 수준이라 2개가 너무 많아보일 지경. 함께 곁들여주는 특제 시즈닝을 꼭 뿌려서 먹으라고 일러주셨다. 이미 이 타이밍에 소주 하나 비우고 알맹이 추가(中のお替り、홉삐 음료말고 섞는 소주만 주문)를 한 것은 토크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게에 전시된 요시다 루이씨가 그려진 병을 보고 물어보다가, 통성명을 하다보니 이자카야 방랑기를 따라나섰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점장님이 '방송 보고 온 거구먼?' 이라고 털털 웃으시지만 못 봐서 억울한 것은 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자카야 방랑기는 디렉터와 스탭이 일단 탐색전으로 가게에 들른 다음에 여기다 싶으면 촬영 제의를 한다고 한다. 분부쿠에 교섭이 온 그 날은 오자쿠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마지막으로 찾은 가게였다고.

 

점장님 말고 서빙하는 아주머니도 입담이 참 좋으셔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다 옆에 다른 손님이 오니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해주시고, 같은 관심사가 있는 손님은 또 이어주시고 한다. 이런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또 아무 이야기도 안 하고 그대로 조용히 마실 수 있으므로 안심하고 방문해도 된다.

 

메뉴판을 보니 문어 마리네이드가 있었다. 햄카츠가 의외로 펀치가 묵직해서 배도 불러오기에 이걸 주문. 

 

 

그대로 옆에 온 손님들의 스쿠버다이빙 이야기를 들으니 술이 술술술.. 오자쿠 역 주변은 예전에 도시바 공장이 있어서 그 회사원들로 엄청 붐볐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4년에 처음 봤던 거대한 스낵바(スナック, 스낙쿠) 거리가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공장이 없어진 뒤로는 많이 조용해졌지만, 그래도 즐거운 곳이니 스낵바라도 한 번 가보라고 등도 떠밀어 주신다.

 

TV에서 보던 이자카야 방랑기 이상으로 즐거웠다. 다음엔 또 어디를 방랑해 볼까.

 

 

 

분부쿠가 있는 오자쿠(小作) 역은 주오 선(中央線)을 타고 갈 수 있다. 도쿄 역과 하치오지 타카오(高尾) 역을 잇는 주오센은 타치카와(立川) 역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가장 위쪽의 오메 선(青梅線), 중간의 이츠카이치 선(五日市線)이 있다. 하무라 역은 오메 선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오메 행을 타거나 타치카와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다음회 예고) 후츄 시 미야니시쵸의 돼 지구와 오뎅가게 오오사다(大定).

기대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