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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도쿄근교여행

페르소나 5의 성지, 도쿄도 세타가야구 산겐자야(三軒茶屋)

by 대학맛탕 2024. 3. 11.

 

2019년 어느 날, 뒤늦게 페르소나5를 플레이했다. 게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거점 동네 주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심심하면 PS4를 켜 둔 채로 음악을 듣기도 했고, PS4를 켜기도 슬슬 귀찮아져서 녹화한 걸 유튜브에 올려서 듣곤 했다. 

 

 

 

 

그리고 클리어할 즈음이 되어서 그제서야 주인공의 거점 동네 욘겐자야 (四軒茶屋) 가 가공의 동네가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지역이 시부야, 신주쿠, 긴자같은 곳이다 보니 이름도 요상한 이 곳은 컨셉 상의 동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래 이름은 산겐자야(三軒茶屋)로, 페르소나 시리즈를 개발한 아틀라스의 사무실이 오랜 기간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네다공항 근처의 세가 건물이 입주해 있다고. 포켓몬 시리즈를 개발한 게임 프리크도 여기 있었고, 마찬가지로 지금은 치요다구 칸다로 이전해 있다. 

 

너무나 좋아하는 가상의 공간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이미 설레이는데, 심지어 당시 살던 동네에서 거리까지 가까웠다. 30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면 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주변 풍경을 보며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코마에 시(狛江市)부터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 이르는 자전거 산책이 시작되었다.

 

 

 

코마에 시는 신주쿠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조용한 동네로, 도쿄에서 가장 작음과 동시에 일본에서 두 번째로 작은 시이기도 하다. 타마가와 강을 경계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카나가와 현 카와사키 시로 넘어가게 된다. 

 

세타가야도오리로 출발. 세타가야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길 이름은 세타가야도오리인 것은, 대략 장한평에서 천호대로를 달리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된다. 타마가와를 건너면 카와사키 시 노보리토(登戸), 거기서 그대로 내려가면 다시 도쿄도 마치다 시(町田市)가 나온다.

 

 

쵸후, 코마에는 베드타운이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논밭이 있던 동네라 아직도 곳곳에 농지가 있다. 종종 으리으리한 집을 지나칠 때도 있는데, 예상하듯 이 지역에서 큰 땅을 갖고있던 집들이라고 한다. 동네 스낙쿠에서 한 잔 할 때 여기서 농사지으시는 할아버지께 팔뚝만한 무를 하나 받은 적도 있을 정도로 정이 넘치는 곳이다.

 

노가와(野川) 강을 건널 즈음에 있는 커다란 맥도날드.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주말에 가면 항상 가족들로 붐빈다. 일본의 맥도날드는 편의점만큼이나 지역밀착형 시설로, 평일에는 노인 분들이 커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세타가야 경계로 넘어가면 조금씩 단독주택보다 맨션의 비율이 올라가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진다. 하지만 아직 23구 느낌은 나지 않고, 고즈넉하고 조용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지나가다 보이는 맨션이 예쁘게 생겨서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었다. 찾아보니 그린 하이츠 세이조라는 맨션으로, 1975년에 지어졌다.

 

오래전에는 손님이 많았을 것 같은 잡화상점.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 같은 3층짜리 맨션.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층 연립주택이 많았는데, 주로 저층에만 붙어서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일본에서의 맨션은 층 수나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가리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길을 지나가니 오쿠라 주택단지 거리가 보인다. 이 단지는 JKK(도쿄도 주택공급공사)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무려 1958년~1961년 사이에 지어진 곳이었다. 아파트가 칠순을 넘은 셈이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라고 하니, 이 곳에서 한 평생을 보내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지도에서 보면 노가와 강을 끼고 푸른 녹지에 둘러싸인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쿠라를 지나서 기누타 공원 (엄청나게 오래된 벚나무가 가득한 곳으로, 꽃놀이 철에 소개하겠다.)을 지나면 도심에 한껏 다가간 풍경이 시작된다. 여기부터 세타가야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종종 보이는 70년대 말~ 80년대 초반 연식의 맨션. 

 

가끔씩 이렇게 한국 아파트처럼 생긴 맨션도 보인다. 자세히 보면 완전히 다르지만.

 

 

중간에 한국 반찬가게가 보였다. 코리안 푸드 샵 키 무 치.근데 이 정도로 터를 잡고 반찬을 파는 곳이면 상당히 맛있는 곳이라는 건데 그때 한 번 들어가볼걸 그랬다.

 

 

 

골목으로 계속 자전거를 몰고 가니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지도를 몇 번 쳐다보며 산겐자야 역 쪽으로 가긴 가는데..

 

 

 

 

 

드디어 산겐자야의 그 골목으로 가는 입구. 거대한 타워맨션 그랑 드 메종 산겐자야 숲(グランドメゾン三軒茶屋の杜)가 랜드마크다. 맨션에 메종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보통 엄청 오래된 메종일각 같은 곳이 많은데 여기는 좀 달랐다.

 

그리고 마침내 입성. 잠시 한바퀴 둘러보자.

 

 

매일 능력치 올리러 돌아다니던 그 욘겐자야의 그 느낌이 느껴지시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시면 배경이 잘 보이는 낮 영상을 한번 더 보셔도 되겠다.

 

 

 

 

 

그렇게 너무 신기해하면서 같은 길을 몇 바퀴 돌고 사진을 찍다가 마침내 익숙한 그 곳, 향긋한 커피향이 날 것 같은 그 가게 앞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곳엔 커피가게는 없었고, 스낙쿠가 있었다. 

 

그리고 골목길 끝에서 딱 막힐 때 보이는, 그 주황색 맨션도 멀리 보인다. 처음에 올린 동영상에서 보던 딱 그 구도. 재미있는 가게들이 많이 보여서 밤에 와 보고 싶다.

 

또다른 막다른 길. 게임에서는 이 길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절대 나갈 수 없었지만,

 

나왔다! 이런 곳이었구나! 산겐자야는. 역 근처로 가보니 과연 23구 느낌이 물씬 풍기는 번화한 거리였다. 

 

오늘의 목적은 그 쪽이 아니라 다시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동네 목욕탕 굴뚝도 찍어봤다.

 

 

맛있게 저녁도 먹고(배가 고팠는지 사진도 안 찍었다.) 그렇게 산겐자야 투어 종료. 6시를 좀 넘은 시간이지만 일본은 해가 엄청 빨리 진다. 이미 밤이 되어 자전거로 9킬로를 다시 달리자니 눈앞이 캄캄해서, 지도를 확인하며 계속 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다가 우연히 들어선 곳이 코마자와 올림픽 공원.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치러졌던 곳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어딘가를 발견할 때 너무 신나고 짜릿한 마음. 서울 올림픽보다 훨씬 오래전이지만, 왠지모를 기시감이 느껴져서 또 한참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광장은 올림픽공원과 어딘가 닮은 느낌이라 기시감을 느꼈다. 지금은 석촌호수 근처에 높은 건물이 너무 많이 생겨서 스카이라인이 조금 다를 것 같긴 하지만, 내 기억속의 올림픽공원은 이런 모습이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또 투어를 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돌아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완전 지쳐서 그저 페달을 열심히 밟은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도 쓰기 시작할 때와 달리 너무 많은 길을 와버려서 지쳐있는 중이다. 아름다운 노가와 강변을 감상하시길 바라며 이번엔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