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는 스토리 상 스포일러는 없지만 다수의 하이라이트 신을 포함하고 있으니 라이징을 즐기실 분은 나중에 읽어주세요.
위의 글을 쓰던 시점이 아마도 베요네타 클리어 + 카미야 대인의 트위터 팔로우가 겹쳐 플라티나 게임즈의 극렬 빠돌이가 된 시점이었다. 위 글에도 썼듯 코지마 스튜디오의 크루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 코지마 스튜디오와 플라티나의 콜라보레이션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기획이었다. 더구나 메탈기어 레이를 들어올려 던져버린 후 뛰어올라가서 일도양단하는 모습은 뭐..플라티나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시간이 지나 저런 글을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올 초, 메탈기어 라이징이 발매됐다. 하지만 난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년 7월에 나온 맥스 아나키 때문. 뱅퀴시도 조금 어중간했지만 그래도 플레이할 만 했는데, 이 녀석은 종종 빵빵 터뜨려주는 것 외에는 답답한 액션일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발도 되지 않은 탓에 7천엔대의 게임을 사기도 애매해져서 아웃. 그렇게 한동안 플라티나는 내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그저 카미야 대인의 신작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난 메탈기어 솔리드 1을 2001년에 클리어한 이후 메탈기어 시리즈를 플레이한 적이 없었다. PS2판 2는 탱커편만 깨고 그냥 뒀고, 스토리가 궁금해서 3, 4를 한꺼번에 빌려서 플레이하지 방치 중이었는데, 얼마 전 빌려준 지인을 만난 술자리에서 그거 언제 돌려주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빌렸나 하고 집에 와서 4를 켜보니 세상에나 세이브파일이 3년도 더 전 것이었다. 블랙홀
여하튼 그래서 순전히 4를 플레이하기 위해 VITA용으로 2부터 플레이하기로 결정했다. 1을 클리어한 지 12년. 이번이 아니면 나는 메탈기어의 스토리를 영원히 즐길 수 없을 거라는 각오로. 그나마 휴대용이니 출퇴근때 할 수 있어서 이걸로라도 클리어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탱커 잠입 오프닝은 10년이 더 지난 지금 봐도 너무 멋지다. 하지만이게몇번째야
게다가 메탈기어와 나는 역시 맞지 않았다. 적에게 걸리지 않아야 하는 플레이는 나에게는 게임플레이가 아니라 스트레스였다. 순전히 스토리를 보기 위한 플레이. 게다가 마지막 메탈기어 레이와의 전투에서 컨티뉴 10회, 최종 보스전도 컨티뉴 5회 정도로 거의 초죽음이 되어 클리어했다. 새벽 2시인데 엔딩이 또 한시간이네 이게..게다가 스토리도 산으로 가네?
이런 센스엔 종종 감탄했지만..역시 나에겐 피곤
그리고 나서 3을 하려니 나의 인내심으로는 무리였다. 새로 추가되었다는 시스템들은 하나같이 피로감만 더 줄 것 같고, 분명 볼륨도 2보다 늘었을 것이다. 다행히 차선책을 하나 발견했다. PS2판 MGS3 서브스탠스에 게임의 모든 시네마틱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 어차피 시간대가 MGS3 - MSX판 메탈기어들 - MGS1 - MGS2 - MGS4이니 그냥 스킵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찜찜했다. HD가 아니라 뿌연 화면이었지만 한글 자막도 있고 해서 과감히 본편을 스킵하고 스토리만 보기로 했다. 어차피 결말도 대충 아는거라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토끼양과 누워서 설렁설렁..봤는데..
제길 이게 스토리가 아주 예술이네...ㅠㅜ 건버스터 볼 때마냥 별 생각없이 술술 넘어가다가 막판에 헉! 하고 감동하고 말았다.
탄력을 받아 곧바로 MGS4 시작. 게이머의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이지모드로 하기로 했다. 그냥 영화 한 편 본다는 느낌으로.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MGS2에서 사정없이 불려놓은 떡밥을 MGS3으로 숨을 고른 뒤 MGS4에서 모두 다 정리한 느낌. 20여 년간 풀어놓은 가공할 만한 양의 떡밥을 회수하는 이상, 시네마틱이 지나치게 긴 것도 이해할 만 하다. MGS3을 영상으로 보지 않았다면 MGS4를 제대로 못 즐길 뻔 했다.
내가 지향하는 게임플레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코지마 천재.
서론을 쓰다 보니 본문이 되어버렸는데, 여튼 이렇게 10년 간의 숙원을 풀고 나니 사실상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유일한 시리즈인 메탈기어 라이징도 궁금해졌다. 위키를 찾아보니 같은 주에 나온 DMC리부트보다 훨씬 많이 팔리기도 했다고.
구입한 뒤 위의 인터뷰 공개될 때 나왔던 1스테이지까지 해 보았을 때의 감상은, 본래 라이징의 컨셉이었던 택티컬+베기에서 그냥 플라티나식으로 가벼워진 액션 게임이었다. 갓 오브 워 같은 게임에 비하면 뭔가 좀 종잇장같은 느낌이랄까? 오브젝트 베기 물리처리도 좀 애매하고, 그냥 색다른 연출의 QTB가 있는 일본산 액션 게임 정도의 평이었다.
스샷은 초반부가 아니지만 여튼 일본 느낌이므로..(..)
그러나 다음날 2 ~ 3스테이지까지 플레이하며 타이밍 가드와 참탈 시스템을 익힌 후, 이 게임은 베요네타 이후 가장 재미있는 액션게임이 게임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버튼을 누를 때 이어지는 콤보의 감각이나 콤보 시 캐릭터의 동선, 적을 타겟팅하고 자동 추적해주는 시스템 등, 기반은 베요네타 거의 그대로지만 약간의 변경을 통해 다른 액션을 만들어냈다. 우선 2단점프가 없고 콤보 등이 간략화되어 있어 닌자대시와 슬라이딩 만으로도 쉽게 액션을 즐길 수 있고, 라이징의 기본 컨셉인 '베기'는 '참격 모드'가 되어 뱅퀴시의 슬라이딩처럼 블릿 타임 상태에서 차분히 여유를 갖고 벨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베요네타의 느낌이 너무 나길래 카미야 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베요를 개량한 엔진이라고..
기존의 메탈기어 솔리드 라이징이 못 풀었던 '놀이'는 베요네타에서 사용했던 회피 대신 가드를 이용하여 거의 비슷하게 풀어내고 있다. 마음껏 콤보를 하다가 적의 전조를 알리는 빛이 나타나면 (가능한 순간의 타이밍을 맞춰) 가드하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적의 약점에 대해 라이징의 본래 컨셉이었던 '무엇이든지 베기'를 실현한다. 적이 빈사상태가 되면 그냥 마음껏 자르고 또 자른다. 아니, 썰어버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실로 코나미라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잔인함이지만 플라티나라면 좀 과격하지만 경쾌한 액션으로 받아들여진다.
시나리오의 시점을 바꾼 것도 이해가 된다. 특수부대원일 지언정 인간인 MGS2의 라이덴과 초인에 준하는 MGS4의 라이덴. 그 사이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아무래도 라이덴은 인간과 초인 사이의 느낌이 될 것이고, MGS4에서 월광 정도가 나오는 세계관에서 지금과 같이 사이보그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자른다는 게임플레이를 인간에 적용했다간 베르세르크가 되어버릴 것일 테니, 이러한 결정이 이해가 된다. 사실상 뒤가 없는 마무리를 한 MGS4 이후의 언젠가를 허용한 이상 메탈기어의 크로니클 상에서는 조금 이질적인 내용이 되어버리지만, 단일 게임으로서는 컨셉과 게임플레이가 훌륭히 맞아돌아가게 된 것이다.
뭐 이런 분석적인 이유를 떠나서, 라이덴의 참격 후 참탈 성공 시의 액션은 베요네타에서 위치타임 후 처형을 성공했을 때 만큼,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뛰어난 쾌감을 준다. 단순하지만 기분이 좋아서 질리지가 않는다. 게다가 만피 회복. 심플한 액션과 성공 시의 연출이 더해져 크게 보면 PS2로 나왔던 시노비에 가까운 플레이 감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벽타기 대시가 없는데, 원래 없는건지 내가 조작을 모르는 건지..(..)
게임을 좀 더 하다보면 플라티나의 장기인 초인적인 타이밍 액션 연출도 빛을 발한다. 무너지는 건물을 뛰어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요, 적의 미사일 위로 도약하여 공격을 하질 않나..1스테이지의 메탈기어 레이 두동강은 시작일 뿐이다. 이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해지는데, 마지막 스테이지 보스전 스샷으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액션 게임의 백미는 역시 거대 보스전
피해다니며 짤짤이 공격하다 보면 기회가 오고, 보스의 팔을 떼어네 버린다.
으랏차~!
나머지 한 팔도 떼어내자
갑자기 팔을 든다.
그리고 그걸 대검으로 참격 모드............
이야 신난다~~!
어쩐지 좀 쉽다 했더니 더러운 마지막 보스가 남아 있었다. 그래 액션게임의 백미가 거대 보스라면 정수는 대인 보스전이지. 하지만 한 15번 죽고나서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HP회복할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만 공략을 보고, 다시 5번 컨티뉴해서 클리어했다. 기어즈 오브 워 보스 이후 가장 어려운 보스였던 듯. 난관을 헤쳐나오면 대망의..
북두백열권 for 라이덴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던 스튜디오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히 플라티나에 외주를 준 코지마 히데오의 신의 한 수와, 그것을 훌륭히 완수한 플라티나에 의해 또 하나의 끝내주는 액션게임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PS2용 시노비 이후 이 정도로 액션 자체에 집중해서 플레이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베요네타와 뱅퀴시의 큰 줄기였던 위치 타임과 블릿 타임 시스템이 게임 방향성을 찾지 못한 라이징 프로젝트에 훌륭한 해결책이 된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아마시간이없었겠지
여튼 플라티나 사랑해요 ㅠㅜ 8월 24일만 목놓아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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