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음식의 인기가 높아진 지도 꽤 되었다.
육회(ユッケ)
양념치킨(ヤンニョムチキン)
육개장(ユッケジャン)
치즈 닭갈비(チーズタッカルビ)
등등, 그냥 한국 음식이름을 말하면 대충 다 통할 정도. 그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은 치즈 닭갈비로, 체인점에서 자주 하는 한국음식 이벤트(韓国フェア)의 단골 메뉴다.
이렇게 한국음식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스턴트 음식의 인기도 높아졌고, 일본에서도 대부분의 한국 라면을 살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육개장 사발면은 한국과 가격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
반면 수요가 적은 라면은 아직도 한국에 비해 상당히 비싸기도 하다.
수입식품 상가같은 데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현지법인이 일본판 라면을 출시하고 있어서, 로컬라이징 된 한국 라면 패키지가 이채롭다. 타이틀부터 설명까지 완전히 일본어화한 것도 있고, 본래 제품 이미지를 생각한 것인지 한국어 그대로 내놓은 것도 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라면 패키지를 담아봤다.
한국 최초의 즉석면 삼양라면. 일본어가 되었는데도 원판 그 느낌이라 잘 로컬라이징된 게임 타이틀을 보는 것 같다.
넘사벽 점유율 1위 신라면. 농심은 한국 패키지를 그대로 쓰고 작은 글씨로 읽기를 덧붙이는 패턴이 많다. 일본어 읽기조차 안 붙어있는 것은 일본 사람도 辛자를 보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한국 점유율 1위의 자신감일까.
혹시나 한국 패키지를 그대로 가져온건가 해서 뒷면를 보았는데, 메이저 오브 메이저인 신라면이 그럴 리 없다.
PREMIUM이 붙은 신라면 블랙도 거의 한국 패키지 그대로. 신라면 블랙이 처음 나왔을 때 농심 상품기획과 브랜딩에 놀랐던 것 기억이 있다.
신라면 로고보다 기무치 글자가 더 큰 김치맛 신라면. 신라면인데 큼지막한 하얀색 폰트도 조금 이질감이 있다. 신라면보다는 덜 매우면서 김치 사발면 맛이 살짝 나는, 밸런스 좋은 맛이라서 자주 먹는다. 그런데 한국에 신라면 김치가 있었나?
개인적으로 농심의 지존이라 생각하는 너구리. 이름 때문에 귀여운 이미지가 있고 신라면에 밀리는 만년 2등이지만 사실은 신라면보다 선배 라면이다. 너구리는 라면 만든 사람도 천재지만 폰트 디자인한 사람도 천재인 듯. 한글도 카티카나 둘 다 이리 귀여울 수가..
오리지널이 ノグリ라고 다이렉트로 써 있는데 반해 볶음 너구리는 旨辛焼きちゃんぽん으로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름이 되었다. 오리지널을 보고 이것 본 일본 사람은 좀 혼란스러울 듯.
안손탄멘이 된 안성탕면. 인지도가 낮아 생산을 덜 하는지 신라면과 너구리보다 비싸다.
우마카라 카이센 짬뽕이라는 읽기가 붙어있는 맛짬뽕. 우마카라(旨辛)는 직역하면 맛있게 맵다는 뜻인데 보통 이게 붙어있는 음식은 한국 사람에게는 달게 느껴지는 편.
농심의 기조와 달리 이름까지 후루루 냉면으로 로컬라이징 된 둥지냉면. 폰트까지 자연스럽게 일본라면 같아서인지 오른쪽 아래에 조그맣게 둥지냉면을 붙여놨다. 왜 둥지인지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알 길이 없다.
일본법인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는 농심이라 역시 물량이 다르다. 생각난 김에 농심 홈페이지(https://www.nongshim.co.jp/)도 들러보았다.
신라면에 레토르트 소스를 곁들인 즉석조리 찌개를 배너로 광고하고 있었다. 순두부찌개는 일본에서 꽤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의외로 부대찌개와 김치찌개는 잘 보이지 않는데 농심이 제대로 승부수를 던지는 듯. 위에서 말한 한국음식 이벤트(韓国フェア) 에서는 대부분 이 '최고' 에 쓰는 폰트 디자인을 쓴다.
김치 사발면이 신제품이라니 이 무슨 이질감... 그나저나 이 サバル麺 아이콘 넘나 귀엽다 ㅋㅋ
연혁을 살펴보니 2010년 이전부터 이미 시부야에서 이런 판촉행사를 하고 있었다고. 신라면의 인지도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돌아와서, 정통 라면계의 영원한 2인자 진라면. 한때는 JIN RAMEN이라 쓰인 영어 폰트 패키지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측면만 로컬라이징된 패키지로 바뀌었다. 원본의 둥글둥글한 느낌에 비해 파워포인트스러운 폰트가 좀 어울리지 않는 듯. 로컬한 패키지가 있으니 여러곳에서 팔 법도 하지만 아직 동키호테 외의 마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사리면도 있었다. 라면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도 알려진 듯. 원본은 한국 라면 중에서도 폰트가 둥글둥글한 편인데 일본판은 아주 날렵한 폰트로 변했다. 사리는 뭔가 번역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대로 사리면.
유튜브 덕분에 전 세계에 알려진 한국 전통음식(?) 불닭볶음면. 4가지 맛이 전부 현지화된 것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원판과 일본어 타이틀이 절묘하게 배합되고, Extream함까지 잘 살려낸 로컬라이징이 돋보인다. 글자가 이리 많은데도 심플해 보이는 좋은 디자인. 炒め는 볶음이란 뜻으로 野菜炒め라는 요리도 있는데, 볶음면을 야키소바가 아니라 이타멘(炒め麺)으로도 쓸 수 있는지는 몰랐다.
한국 라면 기준으로도 엄청 매워서 과연 일본사람들이 이걸 먹을까 의심스러운 틈새라면. 팔도에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메이저 업체 라면인데도 현지화는 커녕 매뉴얼 스티커조차 붙어있지 않다. 동키호테에서 나름의 수입루트를 구축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서도 가격은 엄청 싸서 여러모로 수수께끼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리얼 치즈라면. 설명만 스티커로 로컬라이징 되었다. 원판도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 실은 라면 중 촤고가인 세금포함 214엔.
일본 시장에서의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공세는 매섭다. 일본은 컵라면에 관해서는 엄청난 종류와 라인업을 자랑하지만 봉지 인스턴트 라면을 한국처럼 자주 먹지 않아서 파고들 구석이 있는 듯. 닛신에서도 다양한 한국 스타일의 매운 면을 내놓고 있다. (구하는 대로 리뷰를 해 보겠다.)
동네 편의점에도 신라면은 대부분 있고, 농심의 2등 라면이 종종 로테이션으로 들어온다. 라면 사러 멀리 한국슈퍼 찾아갈 일이 줄었으니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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