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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군것질 이야기

[음식] 떡볶이의 유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25.

 난 떡볶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제대로 하는 떡볶이든, 싸구려 식당에서 반찬으로 주는 떡볶이든, 마트의 푸드코트에서 파는 궁중떡볶이든, 잘못 끓여서 풀죽이 된 떡볶이든 떡볶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면 품질에상관없이 그것 자체를 즐기게 되는 법, 그렇기에 나에게는 떡볶이의 맛에 귀천이 없다.

싸구려 재료라고 해서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떡볶이의 매력.
아무리 싸구려 떡볶이라도 나름대로 유파가 있다. 어제 올렸던 사진을 바탕으로 한번 살펴보자.



 1. 길에서 파는 검붉은 빛깔의 매운 떡볶이

   - 건대, 신천 등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에 으레 있는 포장마차의 떡볶이가 주로 이 계통이다.
   - 이전에는 밀가루 떡도 있었고, 근래에는 조랭이 등 유행을 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사선으로 썰린 
      쌀+밀가루떡이 가장 널리 쓰인다.
   - 검은 고추장이 맛의 핵심이다. 고추가루의 입자가 곱고, 매운맛에 가려지지만 단맛이 상당한 편이다.
   - 대림역 김밥천국은 김밥체인인데 놀랍게도 이 유파의 떡볶이를 판다.


 2. 학교다닐 때 200원 300원어치씩 시켜 먹던 풀죽같은 설탕 기반의 떡볶이

 - 떡가래 1개에 10원씩 해서 100원 ~ 500원어치씩 팔던 떡볶이.
 - 맛의 핵심은 밀가루가 풀린듯한 국물과 면을 먹듯이 이빨로 잘라야 끊어지는 떡의 달콤한 맛이다. 
  (쌀떡으로는 이런 식감이 나올 수 없다.) 
 - 떡을 뜯을 때부터 풍겨오는 밀가루향만 맡아도 조리했을 때 어떤 맛일 지 대략 예측할 수 있으며,
   설탕 및 화학조미료를 많이 넣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맛.
 - 공항터미널 맞은편 골목의 작은 사거리에 있는 '인성참치'에서 이 유파의 떡볶이를 반찬으로 주고,
   리필도 해 준다. (얼마전에는 설탕이 너무 심해서 사탕 수준이었지만.)


 3. 시장에서 플라스틱 접시를 비닐에 싸 주는 떡볶이

 

  - 2와 유사해 보이지만 이 쪽은 설탕보다 고추장의 비율이 훨씬 높다.

  - 출입문 앞에서 하루종일 익히고 있기 때문에 가끔씩 점도가 최상인 검은 떡 (사진에서 왼쪽 참조)을 
    맛볼 수 있다.
  - 연두색에 하얀 점박이무늬 접시에 담아야 제맛이 난다.(근거없음)
  - 사실 최근에는 밀가루떡볶이를 찾기는 좀 힘들다.

 4. 집에서 많은 재료를 넣고 해 먹는 떡볶이

  - 일반 고추장(태양초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체로 누런 빛을 띤다.
  - 보통 8:2 비율로 들어있는 뎀뿌라(얇게 편 오뎅)를 떡보다 더 많이 넣어서 먹을 수 있다.
  - 위의 스샷은 2004년에 내가 만든 떡볶이. 국물을 많이 잡는 편이다.
  - 아무리 노력해도 1 ~ 3의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이 한계점.

 4. 신당동 떡볶이류의 즉석떡볶이
   - 떡은 '떡사리'로 축소되어 있고 떡보다 그 외의 건더기들로 점철된, 본말전도의 떡볶이.
   - 사실 즉석떡볶이는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서 거의 검은 빛깔의 국물이 나오는데...제보 바람
  
 5. 김밥천국 등의 분식체인에서 파는 떡볶이

 

   - 쌀과 밀가루가 어중간하게 혼합된, 어중간한 굵기의 떡을 주로 사용한다.
   - 쫄면사리가 기본 토핑에, 양배추를 많이 썰어넣어서 국물이 대체로 누런 빛을 띤다.
   - 치즈떡볶이를 시키면 (우리가 보통 먹는 그)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 얹어주는 곳도 있다.


 6. 편의점의 전자렌지 조리용 떡볶이
    - 오래전에 구멍뚫린 떡볶이 컵라면 이후로 잠잠하다가, 편의점을 중심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
    - 롯데의 바람난떡볶이는 자주 볼 수 있지만 좀 캐주얼한 편이다.
    - 송학식품의 떡볶이는 고추장이 1의 떡볶이에 약간 근접해 있다.

 7. 올리브떡볶이

   

   - 최근 낙성대에서 발견한 새로운 유파의 떡볶이
   - 사실 올리브유 맛은 안 나고, 화학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편이다.
   - 사진은 황제떡볶이인데, 간장떡볶이와 일반떡볶이 나름대로 맛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떡볶이의 절정은 다음과 같다.

 1의 포장마차 떡볶이가 하루종일 익혀지고 또 익혀지다 보면 고추장에 절여져 떡 겉면의 점도가 높아진다. 
그 상태에서 떡볶이를 시키면 접시에 담으면서 떡볶이 국물이 확 끼얹어지게 된다. 떡볶이를 반 정도 먹었을
때 아직 먹지 않은 떡볶이를 보면 아까 끼얹어진 국물이 살짝 말라서 고추가루가 떡 겉면에 살짝 늘어붙어있다.

 이 때가 바로 절정.

 떡을 입에 넣을 때 떡 위의 고춧가루가 혀 끝을 스치고, 씹을 때 떡볶이의 쫄깃함은 최상이며, 떡/ 물엿 / 고춧
가루가 입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떡볶이 본연의 단맛과 매콤한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어젯밤 포스팅으로 여럿을 괴롭게 하더니 오늘은 자학을 하고 있다.

자, 여러분의 떡볶이 로망은 무엇인가요? 다른 유파의 떡볶이 제보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