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게임

[책] 팩맨의 게임학 입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9.


 영어가 안 되니 일서라도 게임개발에 도움되는 책이 없을까 항상 고민했는데, GDStudy의 성우씨가
알려준 책.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팩맨의 개발자 이와타니 토오루가 쓴 게임개발 방법론 책이다.
잘 알려진 번역서에 비유하자면 검과 회로 정도 되겠는데, 저자 자신의 어릴 적 경험과 팩맨 개발에
대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 분량이라서 일반적인 방법론 책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선배 개발자가 후배 개발자에게 던지는 조언 모음'정도가 되겠다. 


챕터1. 팩맨의 방법론 1955 ~ 1980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남코의 플레이 스테이션 참여까지, 남코의 게임개발 역사라고 보아도
좋을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출시 직전 스피드를 2배로 올렸던 팩맨의 유명한 일화
는 물론, 이후 저자가 프로듀스를 했던 게임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가 있다. 책 내용만이
아니라 실제로 나온 게임들을 보면 남코는 창조적인 기업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최근에는 그
근거가 되는 게임이 '태고의 달인'과 '괴혼'뿐이라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챕터2. 게임학
 책 제목에 해당되는 부분. 저자의 아이디어 수집방법이나 그만의 개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재미가 우선이다'같은 내용은 여타 책에서도 자주 본 내용이지만, 다음의 2가지는 확실히 생각
해볼만 한 주제다.

 모든 것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작년 초 '한국의 기획자들'이라는 책에서 배웠던 것으로, 기획에서 리서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자신은 창조적인 사람이며, 그때문에 자신만의 것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는 강
박관념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다면 툴툴 털어 버리고 이미 시도되지 않았나 조사해 보자.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

 '발상력'이란, 지식/정보와 같이 태어나서부터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얻은 후천적인 정보를
선택하고 조합해서 '절묘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p.122 '플래너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에서

동사를 게임으로 만들기
 팩맨은 '먹는다'라는 행위를, 리블러블은 '둘러싸다'라는 행위를 기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본문에서는 '핥다'라는 행위를 예로서 설명하고 있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
각도 든다. 하지만 어떤 행위에서부터 출발하여 살을 붙이는 것은 분명 유용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후가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하다.
(리블러블은 어떤 면에서 땅따먹기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는데, 리블러블이 훨씬 고차원적이라
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챕터3. 게임개발의 실제
 기획팀장 혹은 개발팀장 등의 '관리자'급을 위한 내용들. 본문에서는 플래너와 디렉터, 프로듀
서의 3가지 역할을 정의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팁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플래너는 기안자, 디렉터는 개발팀장(or 파트장), 프로듀서는 개발팀장 정도 되겠다. 일본에서는
기획자, 플래너, 크리에이터 등의 직함이 혼용되고 있는 듯 하다.

 위 문단에서 오타가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인 디렉터와 프로듀서의 범주는 저자 역시 명확한 정의
는 내리지 못하고 있다. 두 가지를 겸임하는 경우도 있고 나누어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굳이 기준을
나누자면 디렉터는 개발 자체에 관련된 일, 프로듀서는 직접적인 개발보다는 개발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더 많은 역량을 쏟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디렉터에게는 문제 해결력, 프로듀서에게는 많
은 인생경험이나 '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년간 실무를 경험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의 일반론이 쓰여 있었다. 몸으로, 생각으로 얻은 결론
은 프로듀서가 개발 내부에서 신경쓸 것은 처음에 그렸던 그림이 변질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자신이 중요한 것(컨셉)과 중요하지 않은 것(세부내용)을 구분하는
능력과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챕터4 ~ 8. 유명인사와의 대담
 미야모토 시게루, 오구치 히사오, 나카무라 마사야 등 게임업계의 거물들과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미야모토 시게루와의 대담에서는 '기획자는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그의 철학이 또한번 드러나고 있고, 재미 그 자체에 대한 집중 역시 드러난다.

 저자에 의한 유도심문(?)이 의심스럽지만, 두 거장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는 최근의 게임 크리
에이터들이 '게임'만을 생각의 원천으로 삼기 때문에 더 복잡한 룰을 재미를 만드는 것으로 착각한
다는 것이다. 게임만 연구할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경험도 많이 해봐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체감한다.

인상깊었던 대담 하나만 번역해 본다.

더이상 더할수도 뺄 수도 없는 게임

이와타니 토오루(이하 이와타니)
 오구치 씨는 스탭의 배치를 생각할 때 배려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오구치 히사오(이하 오구치. 세가 대표취체역.)
'전뇌전기 버철 온' 프로젝트를 시동했을 때에는 정말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스탭만이 모여 만들었었습니다.
로봇의 디자인에는 유명한 인물을 기용해서 게임 내용을 채우는 것도 피규어를 제작해서 그것을 사용해서
기획을 다듬어 갔습니다. 감독하는 입장인 저로서는 '질려버릴 정도는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었
습니다만(웃음). 하지만 게임은 대단히 좋은 것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진
결과라고도 생각합니다.
 그 뒤 '전뇌전기 버철 온'의 속편이 나왔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게임인 '위닝 일레븐' 시리즈처럼 버전업과 함께 좋아져 온 게임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시리즈물
이라는 것은 최초의 타이틀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작품은 게임 본래의 재미가 다이렉트로
표현되기 때문이겠죠.
 히트메이커 시절에 속편을 만든 액션 게임인 '크레이지 택시'나 테니스게임인 '파워 스매쉬'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속편은 완성된 시스템에 무리하게 추가요소를 집어넣기 때문에 본래 하려고 했던 부분이 플레
이어에게 전달되기 힘들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크레이지 택시의 경우는 크레이지 택시 2에서 점프기능을 채
용했습니다만, 점프를 시키는 것으로 자동차 게임이 아니게 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개인적으로는 첫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타니
 저도 릿지 레이서는 첫번째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구치
 '리블러블'과 같은 정말 새로운 게임 컨셉의 경우, 그 시점에서 게임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더이상 속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만드는 만드는 사람이 전하
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게임 속에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포츠 게임이나 영화, 만화의 게임처럼 어떤 것(원작)을 투사한 게임이라면 선수의 변경이나 캐릭
터의 추가라는 시리즈 전개도 성립한다고 생각하지만, 게임 룰에서의 오리지널로 만드는 것은 첫 작품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편을 무리하게 만든다고 하면 본래 하고싶었던 것이 희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와타니
 '팩맨'이나 '리블러블'의 경우는 이 이상 아무것도 더할 수 없고 뺄 수 없는 게임이잖아요?

오구치
 '이이상 아무것도 더할수없고 뺄 수 없다' 인가요? 좋네요 그거! 정말 그렇네요.

이와타니
 이 캐치프레이즈, 다음에 어딘가에서 사용해 주십시오.(웃음)

오구치
 그렇네요.(웃음)


 일본 개발자의 장인정신 같은 것이 느껴지긴 하지만, 개발 리소스를 그대로 묶어버린다는 것은 온라인
게임의 업데이트식 개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기술에서 뒤쳐져 버린 버추어 파이터 5를 보
면 저런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 같지만, 완결된 재미로 상상 이상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최근 닌텐도의 행
보를 보면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 답인지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결정할 일이겠지만..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즐거움을 만든다는 사실과 그것을 서비스한다는 정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하는 게임의 공통적인 요소인 것 같다. 재미 이론에 비하면 심도깊은 사고보다는 어른의
충고정도 느낌이 들지만 좋은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번역판 내줄 출판사 어디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