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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게임

[책]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27.
  실은 회사에 처음 왔을 때 있던 책이었는데, 원서라 읽을 수가 없었다. 윌 라이트의 추천사가
있어서 보통 책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책 제목도 딱딱해고, 왠지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어쨌든 읽을래야 읽을 수가 없었다. 출판일을 보니 그 때가 번역판이 출간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 때의 내가 이 책을 보았다면 어떤 감상을 받았을 지 참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게임'이란 존재를 '가변인수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된,
추상화된 경험'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터디 모임의 가입신청서에 그렇게 썼던 것으
로 기억한다. 

 아주 기본적인 가속/감속 개념만 있는 레이싱 게임이나, 강체나 충격량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현
실에 근접한 물리 엔진을 사용한 레이싱 게임이나, 운전이라는 경험을 추상화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판타지 세계관의 RPG게임은,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성립된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재구성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적용 사례를 테스트해 나가는 것이 곧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후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개념을 일찌감치 뛰어넘어서 그 경험의 본질은 무엇인지 꿰뚫고 있고, 나아가
그것이 진정으로 미치는 사회적 영향까지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패턴을 인식하고, 그 패턴을 학
습하며, 나아가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것, 인지 불가능한 패턴을 '소음'으로 인식한다는 견해는, 다
양한 장르의 게임에 대한 유저의 선호도를 너무나 잘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번 탄복했던 부분은 바로 게임의 예술성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게임의 기본적 구성 요소들, 즉 플레이어와 게임 디자이너가 매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
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면 할수록, 게임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가능
성은 높아진다.

p.166 내용 중에서..
 
 시스템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것은 다른 예술에서 형식미를 중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형식미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형식에 의해 만들어진 그 자체가 예술성인 것과 같이, 게
임의 시스템 디자인은 재창조하고자 하는 '경험'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재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에서 예술성의 최고 경지는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가정이지만) 

 다른 예술의 설명에서 조금 지리해지지만, 곧이어 나오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게임을 전적으로 형식적 추상 시스템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직 시스템 디자이너만을 게임
디자이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무용의 '안무'에 비견되는 게임의 형식적 핵심 요소에 새로운 용어
를 만든다면, 그 자업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용어에서 도출된 타이틀을 붙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게임의 핵심인 유희소와 허구적 장식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경우 사용자 경험에 심각
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또한 장식적인 요소와 허구의 주제를 제대로 선택할
경우 전체적인 경험이 강화될 수 있으며 플레이어에게 보다 직접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임의 형식적 요소만으로도 의미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매우 추상적인 의미일 것이다. 조준
에 대한 게임은 조준에 대한 게임일 뿐이므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준에 대한 게임
중에 총을 쏘지 않는 게임을 상상하긴 쉽지 않지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게임은 이미 나와 있다.

p.178 ~ 180 내용 중에서

  나는 항상 게임 속 피쳐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려 하곤 했다. 현실적인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로비',
'대기실', '상점', '캐릭터관리' 같은 무미건조한 이름을 그대로 붙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모두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게임에 몰입한 상태의 몇몇 유저에게는 게임 속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싶었다. 위의 이야기를 보니 그래도 그런 시도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만든 허구적
장식 자체가 유치할 수는 있을지라도) 

 아주 작은 게임플레이 요소라도, 거기에 살을 붙여가면 훌륭한 상호작용 모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복잡한 사회현상이라도 단순한 룰을 통해 훌륭한 게임이 될 수 있다. 게임의 목적은 시뮬레이터
가 아니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맥락이라는 점을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마지막의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내용은 감동 그 자체, 다만 게임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
게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이런 견해를 완전히 이해할 유력자가 우리
나라에 과연 있을지.. 어쨌든 이 부분을 읽으면 빛이 보인다. 재미가 아니라 수익모델로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일지라도, 디자이너의 역할만 견지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재미를 창출할 수 있지는 않을
까 생각해 본다. 패키지 시절이 좋았지...타령은 이제 그만 할 때도 된 것 같고.

 분야와 현재 위치에 관계없이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면 꼭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