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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피아노, 클래식

[연습일지] 2012.9.19. 평균율 19번 프렐류드, 보칼리제

by 일본맛탕 2012. 9. 20.

생각해 보니 옛날에는 피아노를 치다가 나쁜 습관을 고치거나 실력이 늘었거나 남겨 두고 싶은 말이 생기면 연습일지를 쓰곤 했다. 한동안 일지는커녕 연습도 안 했으나... (중간에 피아노를 워낙 많이 쉬어서 ㅠㅠ) 오늘 레슨을 받다가 문득 느꼈다. 나는 이런 양질의(ㅋㅋ) 레슨을 받으면서 혹시 듣고 돌아서서 까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중에 이 곡들을 다시 치려 할 때는 레슨했던 내용을 홀라당 까먹고 안 좋은 버릇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가! 곡을 완성할 때마다 동영상 하나 찍 남기고 말기보단 그냥 옛날에 하던 것처럼 편하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조금씩 메모해야지.


지금 치는 곡들은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과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그리고 최근에 시작한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 다비드 동맹 무곡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습도 거의 못해서 우선 연습일지에선 생략.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9번 프렐류드(바흐)

Well-tempered Clavier No.19 Prelude(Bach)


체르니 40번을 치다가 재작년쯤에 평균율로 넘어갔는데, 처음엔 정말 너무 어려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_-;;;; 일단 그 전까진 템포가 빠른 곡은 쳐 봤어도 3성 이상의 멜로디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곡을 쳐 본 적이 없었고(아니, 사람 손은 2개인데 왜 멜로디는 2개가 넘는 거야!!) 원래 바흐 인벤션도 썩 잘 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비교적 수월한 곡들 위주로 치다가 요즘은 조금 테크니컬한(?) 곡을 치고 있는데 여전히 바흐는 어렵다... 일단은 손가락이 따라가기가 힘들고, 건반을 좀 짚을 줄 알게 되면 멜로디를 따라가기가 힘들고, 멜로디를 파악하면 그걸 탄력 있게 치기가 힘들다.



지금 치고 있는 곡은 19번 프렐류드. 유튜브를 뒤져 봤더니 악보와 함께 연주가 나오는 동영상이 있었다. 오오!

이 곡은 중간 성부를 파악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뭐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지만 ㅠㅜ) 한 손으로 두 성부를 쳐야 할 때 처음엔 어디서 끊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무작정 손을 다 붙이고 쳤더니 어디랑 어디가 이어지는 멜로디인지 파악이 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일단 악보를 읽은 다음 악보상에 보이는 쉼표에서 손가락을 제대로 떼기만 해도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악보에 쉼표는 없더라도 멜로디 한 토막이 끝날 때는 가볍게 손가락을 떼 주면 훨씬 좋아진다는 걸 알았다. 우리 쌤의 설명을 빌리자면 '빠~밤' 할 때 '빠~'는 힘있게 누르고, '~밤'에선 가볍게 들어올리고...


그리고 자꾸만 엉뚱한 곳에서 악센트를 넣고 있는 것 같은데, 건반을 짚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 치는지 파악이 잘 안 된다. 쌤 말씀대로 다음 연습 땐 동영상을 찍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확인해 봐야지. 악센트만 제대로 넣어도 단조롭게 치는 걸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요즘 느끼는 건데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걸 잘 못하겠다. 보칼리제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에 그쪽에 신경을 잔뜩 쏟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평균율은 연습이 잘 안 된다. 한꺼번에 여러 곡 치는 거 잘 못하겠어...ㅠㅠ 엉엉.



보칼리제(라흐마니노프) - 졸탄 코치슈 편곡

Vocalise(Rachmaninoff) - arranged by Zoltan Kocsis


아마 내가 지금까지 쳐 본 모든 곡들 중에 제일 어려운 곡이 아닐까... 이걸 처음 치기 시작한 게 작년 11월인데 그 사이에 피아노를 오래 쉬어서 실제로 연습한 기간은 1달 반? 2달?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처음엔 악보 보고 겁을 먹고 안 치려고 했는데 승부욕에 발동이 걸려서(;;;) 치기 시작했고, 어려워서 포기하려다가 첼로 버전을 듣고는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치기 시작했다.



우와, 이것도 악보가 동시에 나오는 동영상이 있었다니! 감사히 링크합니당 ㅋㅋ


우선 이 곡은 가장 쉬워 보이는 첫 부분이 의외로 정말 까다롭다. 일단 가장 임팩트 있게 들어가야 할 첫 음이 메인 선율이 아니라 반주고, 그 다음 음은 똑같은 건반 3개인데도 가장 아래의 음이 저음 멜로디가 시작하는 부분이라서 힘을 배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곡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손에서 땀이 난다. 덜덜덜 ㅠㅠ 언제가 되면 이 긴장감이 덜해질까... 그리고 이 주제의 3도 반주를 칠 때 내가 자꾸만 손목을 흔들며 예쁘게 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약하게 치면서 감정을 넣으려고 해서 그런 것 같은데, 발랄한 곡이 아니니까 반주 부분에서는 손목을 이용하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고 플랫하게 치고, 메인 선율뿐 아니라 왼손의 저음부를 묵직하게 짚어줘야 한다.


곡의 중간 부분은 선율을 나눠서 파악하는 게 힘들었는데(어떤 음과 어떤 음이 하나의 멜로디로 이어지는지..) 그럴 땐 피아노 버전이 아닌 다른 버전을 들어보면 도움이 된다. 나는 첼로로 메인 연주를 하고 피아노가 반주를 하는 버전을 자주 들었는데, 첼로 선율로 메인 멜로디를 파악하고, 피아노 반주(독주가 아니라서 비교적 단순하다)를 들으면서 다른 성부를 파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짚은 곳이 있어서 쌤이 교정해 주셨지만. 히히히.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제일 마지막 주제... (동영상의 5분 20초 언저리부터)



손가락 번호를 일일히 써 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여기까지 쳐 놓고 이 곡을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절망적으로 안 쳐졌다. 피아니스트가 치는 CD를 듣고는 내가 이렇게 칠 수 있을까 싶어서 더욱 겁을 먹었다. 하지만 예전에 다른 곡을 치면서도 너무 어려운 부분이 나와서 포기하려다가 그 부분만 100번씩 쳤더니 신기하게도 손이 돌아가서 무사히 곡을 마쳤던 경험이 있기에(베토벤 비창 1악장이었다), 이번에도 분명히 연습을 하면 될 거라 믿었다. 근데... 잘 안 됐다.


그래도 믿고 계속 쳤다. 10번, 20번, 30번... 집중 연습을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처음부터 이어서 쳐 보기로 했다. 그런데... 으와!! 늘 잘 치다가도 이 부분에서 항상 멈칫하면서 곡이 끊어졌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이 부분을 막히지 않고 끝까지 쳤다. 마지막까지 치고 나니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해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햐~ 이 맛에 피아노를 치는구나! >.< 성취감 성취감.


그래서, 뭐 여튼 건반은 짚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테크닉이 많이 부족하다. 악보를 읽지도 못하다가 이렇게 짚을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연습하면 테크닉도 분명히 좋아지겠지. 그렇게 믿어야겠다.


그나저나 이 부분에선 너무 멜로디를 의식한 나머지 멜로디 부분을 너무 세게 꽝!꽝! 짚고 있었다. 왠지 안 그러면 주제부가 묻힐 것 같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꾹꾹 눌렀는데 너무 과했던 것 같다. 부드럽게 쳐야지!



보칼리제 피아노 편곡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나는 그동안 Zoltan Kocsis 버전이 최고로 악마의 편곡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에밀 길렐스가 치는 보칼리제 영상을 찾았는데 이 버전도 만만치 않다 ㄷㄷ;; Richardson의 편곡.



그나저나 우리 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내가 연습하면서 느꼈던 부분이랑, 고민했던 부분을 귀신처럼 척척 알아맞히신다. 완전 능력자야!!!


오늘의 연습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