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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피아노, 클래식

베토벤 - 디아벨리의 왈츠를 주제로 한 33개의 변주곡

by 일본맛탕 2012. 2. 19.
흔히들 베토벤이라고 하면 웅장한 교향곡이나 협주곡, 32개에 이르는 장대한 피아노 소나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말년의 베토벤이 33개나 되는 변주곡을, 그것도 왈츠에 기반한 곡들을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나도 연극 <33개의 변주곡>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디아벨리의 왈츠를 주제로 한 33개의 변주곡(원제: 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은 악보 출판사 사장인 안토니오 디아벨리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변주곡으로, 사실 디아벨리는 베토벤에게 33개나 되는 변주곡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작곡한 주제를 토대로 당대에 유명했던 작곡가들에게 1곡씩 변주곡 작곡을 부탁한 후, 그것을 한데 모아 책으로 출판할 생각이었다. 디아벨리가 작곡을 의뢰한 작곡가에는 베토벤 이외에도 체르니와 슈베르트, 그리고 출판 당시 12세였던 리스트도 있었다.

안토니오 디아벨리가 작곡했던 변주 주제부(출처: 위키백과 영문판)

1819년, 베토벤은 처음 이 의뢰를 받고서는 '구두 수선공의 헝겊조각(Schusterfleck / cobbler's patch)'이라며 주제를 폄훼했다. 물론 디아벨리가 요구하던 날짜에 변주곡을 제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년 후인 1822년부터 그는 변주곡 작곡에 돌입하게 되었고, 이듬해인 1823년에 총 연주 시간이 50분을 넘는 33곡의 방대한 작품을 쏟아냈다. 결국 디아벨리는 베토벤의 작품집을 1824년에 단독으로 출판하게 된다. (디아벨리가 당초 기획했던 작품집은 1823년에 50명의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아 먼저 출판했다. 마지막 코다는 체르니가 작곡했고, 곡의 넘버링은 작곡가의 이름 알파벳 순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정보는 이곳을 참조.)

연극 <33개의 변주곡>에서는 왜 말년의 베토벤이 보잘것없는 왈츠 변주곡에 몰입했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풀려는 학자 캐서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연극에서도 베토벤의 선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 이유 자체가 미스터리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왜인지 스스로 밝히고 죽은 게 아니니 -.-;;) 좀 찾아보니 '막상 디아벨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보니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참가하는 대박 프로젝트(?)라는 것을 안 베토벤이 자기도 체면 구기지 않으려고 뒤늦게 합류했다'는 다소 멋없는 설도 있었고, '악보집 출판 때문에 평소에도 디아벨리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어쨌든 늦게나마 마음을 먹고 작곡을 시작했다'는 현실적인 설도 있었다. 심지어 '이 형편없는 주제를 이 몸이 멋지게 바꿔 주마' 하는 오기가 발동했다는 설까지. 하지만 그 어느 설도 '1곡이면 될 것을 뜬금없이 33곡이나 작곡했다'는 것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후에 베토벤은 이 변주곡들을 '불멸의 연인'이라 불리는(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안토니 브렌타노에게 헌정한다. 이로 짐작건대 베토벤이 디아벨리의 주제에서 보았던 그 무언가는 상당히 로맨틱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추측(내지는 기대)해 본다. (그..그랬다면 불륜이겠지만 ㄱ-)

베토벤이 1812년 연인을 향해 쓴 3통의 편지의 주인공
'불멸의 연인'으로 추측되는 안토니 브렌타노

이 변주곡들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과 비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데, 둘 다 나름의 특징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아벨리 변주곡 쪽이 더 다이내믹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후기의 베토벤은 주제부의 선율이나 음형에 장식을 더하는 '장식 변주'보다는 주제의 특징만 남겨 놓고 죄다 바꿔 버리는 '성격 변주'를 선호했다고 하고, 변주곡뿐 아니라 후기의 소나타에서도 이런 식의 변형을 즐겼다고 한다. 디아벨리 변주곡 역시 다양한 곡상을 살려 변주의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듣다 보면 이게 진짜 변주곡인가 싶은(?) 변주들도 종종 등장한다.

"The theme has ceased to reign over its unruly offspring.
Rather, the variations decide what the theme may have to offer them.
Instead of being confirmed, adorned and glorified,
it is improved, parodied, ridiculed, disclaimed, transfigured,
mourned, stamped out and finally uplifted."
 
"주제는 다루기 벅찬 자손 위에서 군림하는 것을 그만뒀다.
주제가 변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들을 도리어 변주가 결정한다.
주제는 확인되고, 장식되고, 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향상되고, 모방되고, 조롱되고, 부인되고, 변모되고,
애도되고, 제거되었다가도 마침내 힘껏 부상한다."

변주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Alfred Brendel이 디아벨리 변주곡에 대해 남긴 말이다. 아래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의 연주를 악보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국제 악보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악보를 pdf로 열람할 수 있고, 그곳에서 제공하는 mp3 파일을 들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브렌델의 연주가 좋아서 CD를 소장하고 있다.

베토벤이 왜 33곡이나 되는 변주곡을 작곡했는지,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 속에서 베토벤은 과연 무엇을 보았는지, 직접 곡을 들으면서 상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