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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게임 이야기

[FC] 호리이 유지 어드벤처 2종(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홋카이도 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6.
 *본문 중에는 두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글을 살포시 닫아주세요.



 이번 일본행에서 예정에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리버티 8호점 구석탱이에 몇 안 남은 게임들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것이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호리이 유우지가 드래곤 퀘스트를 만들기 전인 1985년에 만든 어드벤처 게임이다. 케이스는 처음 보지만 보는 순간 94년 게임월드(몇월호인지는 기억에 없다.)에서 그때까지 발매된 패미콤의 모든 게임을 정리한 기사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그 때 본 것이 아마도 요 그림.   (출처는 http://ameblo.jp/bgm-ddc-sds/day-20090217.html)

 본격 추리 어드벤처 정도로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저택에서 일어나는 밀실 살인 분위기(당시 읽던 호움즈 같은)일 거라 추측했었다. 94년이면 성검전설2를 할 때니까 '와 이런 그림도 게임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일본어도 전혀 모르던 때라 그냥 이런 것이 있구나..하고 지나쳤을 뿐인데. 


그리고 또 하나의 게임이 있었다. 바로 홋카이도 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 1987년에 나온 게임으로, 역시 호리이 유우지의 게임. 시스템과 게임의 구성으로 볼 때 사실상 포토피아의 속편이다. 게임월드에는 위의 그림 근처에 이 그림이 실려있었다. (출처는 http://retrogamez.net/archives/221)

  게임의 내용이 '살인사건'이라는 점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포토피아의 스크린샷이 귀신 나오는 집 같은 분위기라 그냥 추측이 될 정도였다면, 이 스크린샷은 경찰과 시체의 존재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경찰청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 기억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18년 동안 전혀 생각하지 않은 기억이 순간 돌아왔으니 말이다. 패키지를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혔을 텐데...뭔가 급작스럽게 삘받은 나는 일단 두 게임을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집에 와서 하려니 패미컴이 없었다. 슈퍼패미컴도 꺼내기 귀찮았는데 마침 잘됐다 싶어 이런 세트를 장만했다.

휴대용 슈퍼패미컴 게임기 + 슈퍼패미컴용 패미컴 어댑터 + 패미컴 팩


사실 지난번에 일본 갔을 때 살까말까 엄청 고민을 했던 물건인데 망설이다 포기하고 후회했기 때문에 이번엔 큰 맘 먹고 구매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쇼핑몰에서도 팔고 있었다는 게 함정...OTL 게다가 이 게임기와 컨버터 모두 살 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게임기
 - 위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액정 화질이 좋지 않다. 오히려 슈퍼패미컴 게임은 폰트가 커서 그럭저럭 할만하다.
 - 게임기 본체의 사운드 볼륨을 켜면 음이 날 때마다 화면이 영향을 받아서 떨린다. 
 - 데드픽셀이 있었다. 운빨이 작용하겠지만 판매처에서 교환도 불가. 난 공항에서 뜯어서 어차피 포기하긴 했지만..

패미컴 어댑터
 - 실제 슈퍼패미컴에 물려서 하면 TV에 화상이 출력되지 않는다.  패미컴 어댑터에 달린 TV-OUT단자를 사용해도 마찬가지. 
 - 일부 게임에서 사운드가 반 키 낮게 들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차라리 안 나오면 나을텐데 엄청 신경쓰인다.


여튼 그래서 둘 다 돈 주고 살 물건이 못된다. 그냥 기념품 산 것으로 생각해야..ㅠㅜ





 나쁜 일은 모두 잊고, 포토피아를 먼저 켜 보았다. 로고나 타이틀 화면도 없이 바로 게임화면!? 이 아니고 이게 타이틀 화면이다. 폰트가 잘 안보이는 것은 사진 화질때문이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폰트가 이렇게 보인다. 액션은 모르겠는데 이 게임은 무리. 할 수 없이 TV-OUT으로 연결하니 


 주인공인 보스가 조수인 야스에게 명령을 내리는 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오른쪽에 장소이동, 사람에게 물어라, 사람을 조사해라, 무언가 보여줘라, 사람을 찾아라, 불러라, 체포하라의 7개 명령이 있고 다음 페이지엔 무언가 조사해라, 소지품, 두드려라, 무언가 집어라, 추리해라, 전화를 걸어라, 수사를 중단해라의 7개 명령이 더 있다. 

 '사람을 조사해라'를 선택하면 용의자가 표시되고, 용의자를 선택하면 정보가 보여지는 식. 한 페이즈에서 선택 가능한 14개의 행동이 있고, 각 행동에는 최대 3~5가지의 선택지가 또 있으니 대략 50여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 셈이다.

 스내처를 해 본 적이 있어서 어드벤처 하면 조사하다, 보다, 이야기하다 정도의 커맨드가 있고 커맨드를 선택하면 적절한 것을 알아서 골라주는 것을 생각했는데, 1985년에 그런 방식을 바란 것이 무리였다. 뭐랄까 스마트하지 않은 느낌. 힌트를 찾기 위해서는 전부 몸으로 부딪혀 봐야 한다. 

 하지만 문자열을 직접 입력하는 이전의 어드벤처에 비하면 그야말로 혁명. 이 시스템 덕분에 패미컴으로 이식될 수 있었을 것이고, 이후 나온 수많은 어드벤처 게임에도 영향을 주었다. 커맨드 선택 식 어드벤처 중 이 방식에서 자유로운 게임이 몇 없을 것 같다. 그림 내에 특점 지점을 클릭하는 조사 시스템도 존재한다.

 이야기는 고베의 하나쿠마쵸에서 고리대금업자 코조가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야스: 여기가 사건이 발생한 하나쿠마쵸입니다. 어떻게 조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장소이동'을 선택하면) 
야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대략 이런 식. 제대로 각오하고 플레이하지 않으면 클리어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았다..게다가 충격적인 사실 또 하나.



세이브가 없다. (안 되는게 아니다. 없다.)


아무리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나지만, 수비범위가 슈퍼패미컴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정성스레 가져온 게임팩은 무용지물. 뭐 공략을 찾아보면 되겠지만 그러면 복선을 풀어가는 어드벤처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부딪히자니 시간도 없고 세이브도 없고...사온 뒤 2주가 지나서는 이 게임들은 플레이할 게임 리스트에서 사라져 있었다. 6학년때의 인상적인 기억은 이렇게 흐트러져 가는 것인가...하지만 의외로 단순하게 문제가 풀렸다. 

 어느날 루리웹 추억의 게임 게시판에 패키지 사진을 올렸다가 덧글로 네타를 당한 것이다. 

 범인은야스(가능하면 긁어보지 마시고, 끝까지 글을 읽은 후 긁어보시기를..)

....그 5글자는 거의 이 게임의 존재 이유였다. 고3때 텔미썸딩으로 네타를 당하고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한 이후, 스포일러에 뭔가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긴 나에게 충격은 더 컸다. ....덧글 단 사람에게 덧글을 지워달라고 했지만 이미 이 스포일러는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일본에서 유명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유주얼 서스펙트 절름발이를 생각하면 비유가 딱 맞을 듯. (엔하위키 링크)

 뭔가 억울해서 집에와서 공략 페이지를 찾았다. 위에서 설명한 예전 게임이라 깨기 힘들다는 단점은 공략집이 있으면 역으로 장점이 됐다. 힌트를 찾는 선택지는 많지만 시간을 끄는 시스템이 없어서 정답만 알면 척척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냥 고르기만 하면 10분이면 클리어한다는 이야기에 당장 게임을 시작했다. (최단 공략 페이지 링크) 텍스트는 최대한 읽으면서 했지만 정답을 고르니 역시 제대로 된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뭐 이미 90%를 앞서가고 플레이하는 느낌이니..사건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진범이 가소로운 훼이크를 날리는 것도 나름 맛은 있지만, 이런건 깨고 다시 봐야 하는건데.. 

 플레이를 해 보니 대화의 흐름이나 단서를 추적해서 선택지를 고르는 것 이외에도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가 돌아오기, 화면 내의 그림에서 특정한 지점 조사해서 증거 찾기,  알아낸 전화번호로 전화 걸기 등이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종이에 메모해가며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마지막 하일라이트 부분에서는 무려 위저드리 스타일의 미로 던전이 등장했다. 제작 당시에 호리이 유지가 위저드리를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니 이상하지 않을 상황. 
 

장소 이동을 선택하면  

방향키만 눌러 이동한다.

야스: 몬스터 서프라이즈드 유 라고 쓰여 있는뎁쇼???
(위저드리에서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했을 때 뜨는 메시지다 ㅋㅋㅋ)

야스: 보스! 막다른 길에 금고가 있습니다. 

 

하지만 훼이크. 위저드리 메시지는 (2), 금고는 (5)의 구역인데 사실은 그냥 (6)으로 가면 클리어다.



 위저드리를 지도 그려가며 했다는 이야기는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 사카구치 아저씨가 하던 호랑이 담배필 적 이야기인데 호리이 유지 아저씨 덕분에 잠시나마 나도 그 느낌을 느껴보았다. 오토맵핑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그야말로..지옥이다 -_-; 재작년에 마법천자문 DS를 할 때 후반부에 이런 미로가 나와서 당황했었는데 혹시 그 제작자 분도 이 게임을 해 보신건 아닐지?

 미로를 클리어하면 살해당한 코조의 일기장이 발견된다. 일기는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비서이자 사기를 쳐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와키의 딸인 후미에에게 주겠다는 내용. 코조는 후미에가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비서로 온 것도 알고 있었지만, 죗값을 치르고자 더 악랄하게 돈을 벌어 후미에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야스는 유력한 용의자인 후미에의 오빠가 이 사실을 알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한다. 

 무언가 씁쓸한 기분으로 조사본부로 돌아와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보스(플레이어)는 야스에게 겉옷을 벗어보라고 한다. '무언가를 집어든다' 커맨드로 '옷'을 선택하면 야스가 곤란해하고, 커맨드를 3회 반복하면..

이전에 후미에의 오빠에게 있다던 나비모양의 반점이 보인다.
(못 찍어서 긁어온 스크린샷. 출처는 http://numa5.blog.so-net.ne.jp/index/11)


야스: 보스, 멋진 수사였습니다. 제가 친척에게 맡겨져 있던 후미에의 오빠입니다
코조와 카와무라를 죽인 것은 저입니다.


그리고 후미에가 끼어들어 밀실 트릭을 밝히고, 게임은 끝난다.


  흥미진진하다! 그래 이것이 바로 어드벤처의 참맛! ...일 리가 없잖아!! ㅠㅜ

 이렇게 6학년 때의 강렬한 궁금증은 모두 해결되었다. 플레이 시간은 30분 남짓. 결말을 모르고 플레이했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지만, 네타를 당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열어보지도 못하고 세월이 흘렀을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린데다가 갑자기 필을 제대로 받아서 홋카이도 연쇄살인 오호츠크에 사라지다 플레이를 시작했다. 속편쯤 되니 한시간쯤이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함정이었다..3시간쯤 걸려 플레이하고 나니 어느새 새벽 2시. 


그래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초반부 진행을 끝내면 멋진 타이틀 화면이 나온다.

차례차례 해변가에서 발견되는 시체들

초등학생 정도일 때 했다면 흠칫 무서웠을 시체발견 신

하지만 살아있었다.

세이브는 불가능하지만 패스워드가 생겼다. 히라가나 25글자. 
사진으로 찍어서 해결했지만 당시엔 종이에 적어서 했을 듯.

전자상가에서 패미컴을 집어들면..

이 게임을 광고한다. 이미 샀다구!

마지막엔 역시나 다시 등장하는 위저드리 식 던전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일일히 커맨드를 선택해서 움직이는 방식이 되서 불편해졌다.

회심의 일격(드래곤 퀘스트에서 치명타를 일컫는 용어)이 여기에도 등장.

전작과 달리 해피엔딩. 그러나 보스가 나중에 뭔가 다른 비밀을 알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아시는 분?

오프닝과 같이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종료 화면

 분량은 4배로 늘었고 전반적인 그래픽과 묘사가 향상되었으며, 효과음도 없던 전작과 달리 다양한 배경 효과음과 긴장감을 돋구는 BGM까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사운드는 전작과 비 모든 것이 파워업했고 스토리는 좀 더 드라마같은 전개가 되었지만 포토피아같이 커다란 반전은 없었고, 전형적인 트릭을 가진 추리물이 되었다. 뭐 전작이 워낙 강렬했으니..

 여하튼 이렇게 두 게임의 결말을 모두 보게 되었다. 게임월드에서 두 게임을 본 것이 18년 전인데, 당시로서는 9년 전 게임인데도 포토피아는 그래픽 때문에 마치 태곳적 게임같아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27년 전 게임이라니..시간이 참 빠르다. 하긴 이 게임이 나올 당시 애플 컴퓨터로 위저드리를 즐기던 의대생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정도이니 뭐: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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