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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에세이

[책] 불안 (알랭 드 보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14.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지위를 잃는(혹은 지위가 내려가는) 상황에 대한 불안, 이런 재미있는 주제에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의 정의에서 언급하는 지위, 그리고 지위에 대한 불안을 정의한 내용만 읽어봐도 그 기대는 절반 쯤 충족된다.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을 때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개념을 (조금 특이한) 인문학적 안경으로 바라보는 그 시각은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 내용은 '보다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원인과 결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원인 -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지위에 대한 욕망을 사랑에 대한 욕구로 풀어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육체적 갈망이 없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점만 제외하면 지위에 대한 욕구는 사랑에 대한 욕망에 다름 아니다. (내가 위이든 아래이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지위'라는 것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고, 그것을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끼는 요즈음이라 느끼는 바가 더 많았다. 내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원래 그랬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인지는 항상 모호하지만 말이다.

 중세 시대에는 지위가 낮은 사람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살았지만 능력주의가 된 현대사회에서는 지위가 낮으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시각 역시 신선했다. 다만, 이전이 더 나았다는 가정은 '그 때에 살아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는 반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세의 노예가 현대의 서민 계급보다 나았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서민이 받는 고통은 그 자신의 책임이므로 어쩔 수 없다'라는 오류는 범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해법 -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사실 요 며칠간 그 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조금 힘들었다. 한동안 나를 떠나 있었던 지위(그중 금전)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시금 나에게 엉켜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내가 낮은 지위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고통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안 뒤 주위를 돌아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내 주위의 것들이 갑자기 너무 부족해 보이고, 무언가 더 필요할 것 같고, 그것을 얻을 방법은 좀처럼 나타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비로소 고통을 낳았다.

 이런 문제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주로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각에서 자아를 생각할 때 생기는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니고, 실제로 내가 부족한 탓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 뿐이다. 작년 말부터 온갖 세속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은근히 지위가 상승한 듯한 느낌에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 뿐이었다. 아이폰의 기능에 감탄하며, 이런 작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바로 세속적인 지위였다.

 그래서인지 원인을 읽을 때처럼 새로운 시각이니 무엇이니 하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공감이 갔고, 그 덕분에 힘든 와중에도 비교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을 돌아보니, 역시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혹은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 말이다. 평일에 조금 일찍 퇴근해서 함께 마시는 맥주, 음악, 그리고 대화..무엇이 더 필요하랴.

 사회문화적 이야기라서 내내 감성적일 수 있었던 '우리는 사랑일까'에 비하면 조금 딱딱하지만, 읽는 재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인용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좀 산만해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제목을 볼 때 느낀 기대감은 90% 이상 충족했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에 만족했던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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