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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강의록] 2006/02/27 신화와 상상력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3. 1.
 신화로서 영화를 이야기해보자. 무슨 영화를 이야기할까?  쉬리를 안 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은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당시의 촬영기술에 비하면 혁신적이였던 화면들과 감동의 눈물을 뿜어내게 하는 스토리.
그 속에 신화가 있을까? 상상들을 해 보자. 무엇이 생각나는지..


쉬리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주인공 유중원이 진술받는 장면에서 이방희는 히드라였다고 말한다. 그당시 고등학생이였고 히드라 하면 스타크래프트의 그것 외에 그저 어떤 괴물이다 정도의 연상을 했던 나조차도 히드라라는 단어 하나로 애절함이 훨씬 증폭되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 아홉달린 괴물일
뿐이지 이방희의 존재 이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마 강제규 감독은 멋드러진 사유로서 감동을 주려고 히드라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왜 멀리서 찾는 건가? 바로 우리나라 신화에 있는 낙랑공주가 딱 맞아떨어지는데 말이다. 적국의 남자를 사랑해 조국을 등진 여자의 이야
기를 그리스 신화 속에서 찾아보면 이아손을 도왔던 메데이아나 테세우스를 위해 실타래를 건네준 아리아드네가 떠오른다. 그녀들은 적국의 남자를 사랑해서 가족을 배신한다. 그런 여자들의 미래는 어떤가? 결코 행복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들은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이런 여인들의 성향은 현세의 그리스 여인들에게서 그대로 보여진다. 그들은 핏줄보다 사랑이 먼저다. 자신이 사랑을 바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가족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유태인들은 어떨까?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를 보면 그들은 결코 이방인과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사랑보다 핏줄이 우선이다. 편협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 역시 알라신이 모든것의 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두 민족이 붙어있으니 바람 잘 날이 있겠는가? 유태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독일 나치들에게 대량 학살당하기도 했다.

그럼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 여인들은 적국의 남자와 사랑할 수 있는가? 있다. 그럼 조국을 배반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자명고를 찢고 나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낙랑공주나, 끝까지 사랑과 조국에의 충성 사이에서 방황하다 죽게 되는 이방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역시 우리나라 여자들의 정신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결혼한 후에도 친정을 그리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정 식구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양 쪽의 경계에 걸쳐있는 것이다.

쉬리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방희의 전화 녹음 메시지 내용에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중원씨, 다른사람 보내'

우리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데 감동을 안 받을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누구나 다 아는 반지의 제왕을 한번 생각해보자. J.R.R톨킨이 쓴 판타지의 고전 그 자체라는 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고, 실제로 신화적으로 이야기를 뜯어 보면 켈트 신화를 멋지게 다시 그려낸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야말로 켈트 신화 그 자체이다. 반지의 제왕은 이야기의 중심에 절대반지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Q. 당신이 절대반지를 끼어서 완벽한 투명인간이 되고,  다시 모든 걸 리셋할 수도 있다면 대체 뭘 하고 싶은가?



당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거나 세속을 모두 씻어낸 현자가 아니라면 분명 그것은 얄팍한 욕망에 불과할 것이다. 얄팍한 욕망으로만 물든 자가 반지를 보면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든 가지려 할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죽인다. 오랫동안 반지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린다. 자신이 볼 수 없었던 실제 자신의 모습은 그
욕망만큼이나 점점 추악해진다. 그렇다. 바로 골룸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정의의 주인공들이 그것을 파괴하든, 사우론으로 대표되는 강대한 야심과 누구보다도 강한 욕망을 가진 존재가 반지를 얻어 세계를 지배하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얄팍한 욕망만을 가진 존재가 반지를 가지게 되면 제2, 제3의 골룸만을 낳고, 그것은 그저 비극으로 끝날 뿐이다.

그런데 현세에도 절대반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익명성이다. 실제로는 아무 힘도 없고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인터넷에 접속해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덧글을 입력할때 그는 절대반지를 낀 존재가 된다. 아무도 그를 볼 수 없고 그를 나무랄 수 없다. 그 현실은 어떠한가? 다수를 점하는 골룸과 같은 존재들이 남긴 덧글들을 보면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끔찍할 뿐이다. '할로우 맨'에서 주인공이 투명인간이 된 후 추악한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 지금 절대반지를 낀 당신 자신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자기자신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블록버스터로 얼룩진 헐리웃 영화는 볼만한 게 없다. 반지의 제왕은 원전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지만 정의의 편인 우리들과 그저 악일 따름인 적들이 완벽하게 흑백으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한계를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마법사라는 존재, 즉 켈트 신화에서의 마법사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매지션이라기 보다는 천사에 가깝다. 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가 쓰는 마법들을 보면 그것은 눈 앞의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히 세계를 바꾸는 수준이라 할 만하다. 간달프는 천사장 미카엘을 상징하고 사우론은 사탄과 곧장 연결된다. 그는 절대반지로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그야말로 절대악이다. 그들의 군사인 오크는 그저 지능조차 없어 보이는 괴물일 뿐이다. 그들의 목적과 이상에 상관없이 그들은 죽어 사라져야 할 존재다.  이것이 지금의 미국이 주도하는 아랍권에 대한 시각과 무엇이 다른가?

부시가 집권한 후 가장 높이 살만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반미정서를 완벽하게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미국이 사실상 문화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미국에 동화되어 가지만 '미국화'의 야욕을 드러내는 즉시 모두가 반미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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