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 이야기지만, 나는 게임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책만 읽었다.
9살때 게임월드를 샀을 때부터 게임을 본격적으로 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해야 하나..어쨌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집에서 엄청난 숫자의 책들이 우리 집으로 건너왔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정말 8살까지 읽은 책들의 지식으로 10년은 버텼다.
-_-;
돌이켜보면, 테이프가 구비된 1~12월이야기를 몇십번 고쳐들으며 읽었고, 테이프가 부재된 전래
동화는 5번 이하, 과학앨범 70권은 과장 조금 섞어 백 번 넘게, 세계명작동화는 한번 겨우 다 읽었다.
그리고 셜록 홈즈 전집은 5번쯤 읽었던 것 같다. 잠깐, 셜록 홈즈 전집? 유치원생이 읽을 책은 아니
잖아 이거..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이 그 책을 보고 자기도 어렸을 때 읽었다고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인터넷을 잠시 뒤져보니 이글루에 정체가 있었다. 오랫만에 기억난 계림문고판 '명탐정 호움즈'
어쨌든, 어렸을 때 열독했던 기억 때문에 꼭 이 책은 보자마자 덥썩 집어버렸다. 그리고 읽는 동안
19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빠졌다. 왓슨이 홈즈를 서술하는 방식도 그렇고 "~~하게", "했네"
같은 말투, 범인 뿐만 아니라 왓슨, 즉 독자들까지도 뒤통수를 맞는 듯한 사건의 해결 장면까지..
책을 덮는 순간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왜 다시 찾아서 읽지 않았을까..
물론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도 가끔 읽은 적은 있었는데, 이미 홈즈 스타일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추리소설을 즐겼다기 보다는 홈즈 그 자체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김전일같은 경우
가 영락없는 홈즈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그 전에 일본 추리만화 중 홈즈의 굴레에서 벗
어난 것이 몇이나 될까. (혹은 어지간한 추리소설이 다 그렇다거나..)
'대표 단편선'이라는 제목에 맞지 않게 책에 수록된 사건들은 소소한 것들 뿐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얼룩 끈, 사라진 마부, 나폴레옹의 조각상 같이 극적인 해결 장면이 없어서 약간 맥이 풀리는
면이 없지 않다. 책 표지에 그린이가 따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 삽화는...계림문고판의 그것보다 몇
년쯤 더 먼저 그려진 듯한 분위기다. 오래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장
인물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데스노트나 난무하는 스릴러 영화 때문에 더이상 반전이 반전이 아닌 것이 됐지만, 역시나 변치않
는 재미를 선사한다. 비교적 소소한 작품이 모였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데스노트나 스릴
러 영화같은 것들에 이리저리 치여 왔으니 이런 것들은 자극이 되지 않는 것일지도..
그 장르의 르네상스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바로 고전이라 한다. 홈즈는
그런 의미에서 추리소설의 고전 그 자체다. 코난이나 김전일같은 추리만화만 보아 왔다면, 이거 한번
읽어보시라. 잔혹한 살인극이 벌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고우영 옹 책 다 읽으면 홈즈 전집이나 다시한번 싸그리 독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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