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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도쿄 라멘탐방기

도쿄도 하치오지 시 미나미신초의 짜파게티 라멘, 중화요리 치토세(ちとせ)

by 대학맛탕 2024. 4. 24.

지난글보기>>> 도쿄도 쵸후 시 츠츠지가오카의 시바사키테이(柴崎亭)와 코쿠료쵸의 이시카와야(いしかわや)

 

나는 짜파게티를 신봉한다.
라면 이야기가 아니라 라멘 이야기인데 짜파게티라니 왠 뚱딴지같은 소리? 하지만 오늘의 중요한 주제이니 조금만 짚고 넘어가자. 
 
먼저 이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연재 수를 자랑하는 (인스턴트) 라면 이야기. 그 첫 타자가 바로 짜파게티다.
이 글을 쓸 적에 태어난 아이가 벌써 고3이 됐을 테니 세월이 참 빠르다.
 
지난글보기>>> [음식] 라면 이야기 - 1. 짜파게티 먹는 법

 

[음식] 라면 이야기 - 1. 짜파게티 먹는 법

라면이야기 첫번째. 나는 라면 중독자다. 밥보다 라면이 좋다. 농심의 노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대략 20년 가까이 온 국민의 사랑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는 짜파게티. 10년 쯤 이

willucy.tistory.com

 
블로그에서 '짜파게티' 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을 검색하니 윗 글을 포함해서 12개. 게다가 라면 이야기에서는 짜장 큰사발과 짜장범벅도 따로 다루었다. 
 
가끔 짜파게티로 예술도 한다. (거짓말)

 
 
이 블로그의 짜파게티 관련 포스팅에도 반복해서 언급되는 '과립스프'. 그 제법 하나로 수많은 짜장라면을 KO시킨 그 재료는 무엇일까? 짜장면을 인스턴트 라면으로 만든 제품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짜파게티의 과립스프는 짜장면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원재료명에도 춘장이 없다.
 

출처 : 농심몰(https://nongshimmall.com/product/%EC%98%AC%EB%A6%AC%EB%B8%8C%EC%A7%9C%ED%8C%8C%EA%B2%8C%ED%8B%B0140g5/2674/)

 
 
작년에 발매된 짜파게티 만능소스는 먹어보면 짜파게티와는 달리 춘장 맛이 강한데, 재료를 살펴보니 역시나 춘장이 있다.
 

 


 
 
구글에 짜파게티 원료, 원재료를 검색해 봐도 몸에 나쁜 것만 들어있다는 저주를 뿜는 블로그가 하나 나오고, 다른 검색결과에도 원료의 화학 조미료만 나열하는 정도다. 이 짜장도 아니면서 짜장스러우면서 너무나 중독적인  '과립스프'의 맛은 어디서 오는지는 오랫동안 풀고 싶은 수수께끼였다. 
 
 
왜 라멘 탐방기에서 이렇게 짜파게티 이야기를 길게 하냐면, 그 맛의 원류가 아닌가 하는 맛의 라멘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치오지 역에서 꽤 걸어가야 하는 중화요리 치토세(ちとせ).
 
 
각설하고 먼저 쇼유 탄멘(醤油タンメン)을 보자. 

 
쇼유 라멘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짜장면처럼 새까만 국물은 일본 라멘에서 본 적이 없다. (다른 데에 혹시 있으면 제보 바란다.) 이 국물은 웍에 볶아낸 야채와 함께 아주 구수한 풍미를 자랑한다. 

 
 
처음 먹으러 갔을 때 '음? 이 향기는 어디서 많이 맡아본 기억이 있는데..' 하고 의아해하다가, 젓가락으로 면을 건진 후 바로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짜파게티잖아......!!
 
면이 살짝 가늘기 때문에 짜장범벅에 좀 더 가까운 모양새지만, 아무튼 이런 색깔의 면 중에 짜파게티 말고 다른 면이 있을까? 그리고 풍미가 정말 짜파게티 국물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짜파게티를 수백 그릇은 먹었고, 그때문에 그 풍미가 거의 신경에 새겨질 정도로 익숙한 나이기에 이건 틀림이 없다고 믿는다.

 
 
면을 좀 먹은 뒤 국물이 드러나면 정체가 더욱 확연해진다. 짜장범벅 한참 먹는 도중의 그 비주얼이 아닌다.
 

 
하지만 짜파게티와는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맛이다. 인스턴트 조미료가 아니라 푹 우러낸 쇼유 국물의 깊이가 전혀 다르다. 어쩌면 망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짜파게티가 이 계열의 라멘에서 온 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을 해 봤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여기까지 읽고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짜파게티에 왜 국물이 있어요? 이건 짜파게티가 아닌데?' 
 
이 유사성에 대한 큰 인상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온 것이기는 하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짜파게티를 끓여주실 때 항상 물을 버리지 않고 끓여주시는 바람에, 나는 꽤 오랫동안 짜파게티가 이렇게 국물이 있는 라면으로 생각하고 먹었다. 그래서 지금도 두 번에 한 번은 국물이 있는 채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렇게 먹는 사람을 나 외에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이 맛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본래의 레시피와는 달리 약간 짜장면과 비슷한 풍미가 난다. 싱거운 춘장 맛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하나.
 
반면 국물이 상당히 짠 편이라, 먹는 내내 짜장범벅 최후반 턴의 그 맛이 난다. 짜장범벅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맛인 것이다. 
 

 
일본 간장 쇼유도 메주를 띄워 만드니, 어떻게 국물을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춘장에 가까운 맛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이 맛은 다른 쇼유 국물에서는 한 번도 맛 보지 못했다. 혹시 비슷한 라멘을 보신 분 계시면 제보 바란다.
 
※짜파게티의 원류가 아닐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미각에 의한 가설임을 밝혀둔다.


라멘 치토세의 또하나 놀라운 점은 가격.
첫 사진의 쇼유탄멘이 550엔, 두 번째 사진의 미역 라멘이 500엔이다.

 
미역 라멘도 면을 강조하느라 먹는 도중의 사진을 먼저 올렸지만, 이렇게 챠슈, 콩깍지, 메추리알, 멘마, 다진 양파까지 본 레시피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나온다. '10년 전 가격 그대로!?' 를 외치고 싶지만 10년 전에도 이것보다 비샀다.

 
 

아무튼 이렇게 나에게 감동의 도가니를 선사하여 내 멋대로 짜파게티 라멘이라 이름붙인 치토세는, 하치오지 역에서도 조금 더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여행객에게 추천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도쿄 라멘 탐방기에 올릴 생각은 없었지만, 지난주 TBS 프로그램 동네 중국집에서 먹자!(町中華で飲ろうぜ、まちちゅうかでやろうぜ)에 치토세가 등장했다! 
 

町中華で飲ろうぜ이거 어떻게 번역하나

 
 
가 본 가게가 갑자기 TV에 나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 

 
 
창업주이신 주인 할머니는 가끔 계셨는데 가게를 연 지 무려 5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본래는 소바, 우동 가게였다고.

 
가격이 그대로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올리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으로, 무려 30년 동안 같은 가격이라고 한다. 이런 인터뷰에서 으레 '젊은이들이 마음껏 배불리 먹기 위해서' 같은거 말하시는데 '내가 못 올리게 해요' 한마디로 끝. 

 
 
아드님인 지금의 점장님이 이어받기로 하면서 중화요리로 전환했다고 한다. 소바와 중화요리를 같이 하는 것은 밑작업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중화요리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소바집의 간판메뉴 가츠동과 오야코동은 메뉴에 있다. 가쓰오, 다시마, 표고버섯을 푹 삶아 육수를 우러낸다고.

 
라멘이 주력이라 종종 잊지만, 팔각형 그릇이 중화요리집인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안주용으로 밥을 적게 한 것이라지만, 이 퀄리티가 500엔. 밥 있는것도 600엔이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코로나가 한창일 때 방영된 회차의 재방송이었다.

 
 
중화요리 치토세는 신주쿠에서 케이오 선(京王線)의 종점인 케이오 하치오지(京王八王子)역, 혹은 JR 주오 선(中央線)을 타고 JR 하치오지 역에서 내린 후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짜파게티를 좋아하고 하치오지 방면으로 갈 일이 있는 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토요일은 휴일이니 주의)

 

 

언젠가는 이 국물의 비밀을 물어봐야 하는데..

 
 
 
 
P.S.
구글지도의 사진 중 볶음요리인 호이코로(回鍋肉, ホイコーロー)가 완전 짜장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언젠가 다시 가서 이걸 먹어보고 내 가설을 검증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