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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신주쿠역 오다큐 백화점이 사라졌다

by 대학맛탕 2024. 4. 2.

 
재외국민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주쿠 역 니시구치를 지나는데, 묘하게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등을 스쳤다. 


그리고 보이는 서쪽 출구의 유니클로 옆 공사현장용 바리케이트. 신주쿠역 동쪽 출구야 거의 20년 넘게 이런 풍경이라서 익숙하지만 서쪽이 이랬었나? 하고 묘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오다큐 백화점이 사라졌다

는 것을..

그리고나서 먼 곳을 바라보니 신주쿠 타임스퀘어 빌딩이 깔끔하게 보인다. 신주쿠를 꽤 벗어나도 잘 보이는 건물이라 되려 위화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 왼쪽의 신주쿠 newWomen빌딩을 포함해서, 본래 있었던 오다큐 백화점으로 스카이라인을 그리면 아예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른쪽의 케이오 백화점(京王百貨店) 건물이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것처럼 처량하게 남아있다. 철거가 아니라 재건축이니 시간이 지나면 크고 웅장하게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오다큐 백화점과 케이오 백화점에 대해 잠깐 알아보도록 하자.
 
두 백화점은 그 자체가 오다큐센(小田急線)과 케이오센(京王線)의 역사 건물이다.

먼저 오다큐센은 도쿄에서 오다와라(小田原)로 가는 급행(急行, きゅうこう)으로, 그 줄임말이 노선명이 된 것이다. 비슷한 예로는 후지산으로 가는 급행인 후지큐(富士急, ふじきゅう)가 있다.
 
아래 지도의 3가지 루트 중 가장 위쪽 루트가 오다큐 선이다. 가장 아래쪽의 주황색은 도쿄에서 나고야를 거쳐 오사카로 가는 도카이도 센(東海道線)이고, 가운데에 매우 빠르고 편리해 보이는 루트는 신요코하마 역에서 신칸센을 갈아타는 코스다. (총 교통비가 3,820엔이다!) 
 

 
오다와라는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가 하코네(箱根)의 입구이기도 해서 오다큐 선에서는 하코네까지 75분 만에 가는 로망스카(ロマンスカー)도 운영한다. 1949년에 개통했으니 75년 동안 하코네까지의 관광 수요를 책임져 온 셈이다. 

케이오 선 역시 도쿄(東京)에서 하치오지(八王子, はちおうじ)로 가는 노선이다. 한국 수도권 철도의 경인선과 같은 작명법으로, 경왕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다만 현재는 하치오지 시도 도쿄도 내의 시이기 때문에, 예전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도 진출한 호텔 체인 토요코인을 운영하는 토요코센(東横線) 역시 도쿄와 요코하마를 잇는 노선으로 비슷한 작명법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아래 지도 위쪽의 주황색 루트가 JR 주오 선(中央線), 아랫쪽의 구불구불 루트가 케이오 선(京王線)이다. 
 

 
 
케이오 선은 1910년 처음 개통할 때는 사사즈카(笹塚) 역에서 쵸후(調布) 역까지만 연결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1호선 구일역에서 부평역 정도의 거리만 개통한 셈.

야마노테 선이 서울지하철 2호선과 같은 컬러의 환형 노선이고, 신주쿠 역의 위치가 신도림 역과 얼추 비슷해서, 그로부터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케이오 선은 마치 지하철 1호선 같은 느낌을 준다.

이름을 처음부터 케이오선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처음부터 지금의 노선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자투리로, 소울 시리즈로 유명한 프롬 소프트웨어의 사무실이 오랜 기간동안 사사즈카 역에 있다가, 지금은 니시신주쿠로 이전했다.

한국에서 대히트했던 겟앰프드의 개발사 사이버스텝은 겟앰프드 개발 당시 쵸후 역에 있었고, 재미있게도 지금은 프롬 소프트웨어가 있던 사사즈카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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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ucy.tistory.com

 
 

백화점 이야기로 돌아와서, 덩그러니 남은 케이오 백화점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케이오 백화점은 오다큐만큼 돈이 없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다큐가 굴리는 노선도 길고, 케이오 선에는 오다와라같은 관광수요가 없는 점, 그러면서도 오다큐가 더 비싼 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오다큐가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 때다 싶어서  회사규모를 찾아봤다. 

관동지역의 여러 지역을 커버하는 토부(東武) 철도와 도쿄 중심부와 토요코 선을 가지고 있는 토큐(東急) 전, 우에노에서 나리타 공항을 잇는 케이세이(京成) 전철까지 포함해서 5개 대형 사철의 사업규모를 사이트가 있어서 많은 공부가 됐다.
 

출처: https://es-labo.com/flow/industryresearch/railway/private-railway-major-companies-difference/

 
 
예상대로 오다큐가 케이오보다 매출이 20퍼센트 더 넘게 높아서 그 규모를 실감하게 했다.

사이트에는 그 밖에도 회사 별 부동산, 유통업, 생활 서비스 등의 사업부문 별 매출과 이익률, 변동성이 따로 정리되어 있는 등 흥미로운 통계가 많으니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란다.
 

 

일본의 대형 사철 5개 회사 비교기사 링크

 
오다큐 백화점 부문의 2023년 연매출은 무려 293억 8500만엔이라고 한다. 상당한 모험을 하는 셈이다. 다만 신주쿠점은 개업한 것이 1967년이니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오다큐 백화점 신주쿠점 매출은 어느정도인가 찾아보다가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오다큐 선 위의 오다큐 백화점 신주쿠점은 완전히 폐점하고, 해당 건물은'신주쿠 그랜드 터미널' 이라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 지상 48층의 260미터짜리 고층 빌딩으로 거듭나 거대한 오피스 및 상업시설이 들어선다고 한다. 2029년 준공 예정이라는 그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오다큐 백화점은 진짜로 사라졌던 것이다

오다큐 백화점은 신주쿠 HALC(아래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낯익은 건물)에 통합 재개장한다고 한다. 오다큐에서 2021년 7월에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위의 내용과 아래의 사진을 함께 발표했다. 초콜렛처럼 생긴 그 건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처:https://www.odakyu.jp/news/o5oaa1000001z2w5-att/o5oaa1000001z2wc.pdf

 
 
코로나 기간동안 신주쿠를 거의 안 나가게 된 동안 밀레니엄 타워가부키쵸 타워만 생긴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을 주도하는 것은 토큐 전철의 토큐 부동산으로, 시부야의 토큐 백화점 본점 재건축도 그렇고 엄청난 규모로 부동산에 재투자를 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기간동안 세이부신주쿠 근처에 세워진 가부키쵸 타워

 
신주쿠 서쪽출구는 그냥 예전보다 조금 더 높아진 스카이라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규모라면 주변 경관이 모두 탈바꿈하게 될 것 같다.  몇 년 지나면 다시 못 볼 거라는 생각에 다른 곳에서의 뷰도 몇 장 남겨봤다.

 
 

 

블로그의 다른 글을 통해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나는 오다큐보다는 케이오에 애착이 있다. 제목은 사실 좀 낚시성으로 써놓고 오다큐에 대한 약간의 질투를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런 전개가 되어버리니 조금 황망한 기분.
 
밤하늘의 신주쿠 서쪽출구 사진을 남기며 이번 도쿄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 

케이오 백화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