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재원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이후였지만, 그 강의를 꼭
신청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왜였을까?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
지 않는다. 게임을 만들어 보고자 생각했던 군대 시절인지, 아니면 제대 직후 WOW를 플레이하다
가 그 세계관에 놀랄 때였는지 알 수 없다.
신화에 대한 관심은 항상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서 즐거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화 해설서의 명저로 꼽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도통 무슨 이야
기인지 몰라서 졸음만 쏟아졌고, 큰 기대를 갖고 집어든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해설
이 없는 원저의 해석에 가까운 느낌이라 지루했다. 누가 누굴 죽였다. 누가 누굴 끌고갔다. 어떤 신이
누구를 도왔다. 등의 내용으로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좋아하고 싶은'마음만 계속되던 차, 결국엔 현대 신화 해설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불핀치의 저작을 읽게 됐다. 희랍신화 코너를 엿볼 때마다 10권 이상은 보이던,
판형은 다르지만 저자는 같았던 그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깔끔하다. 신과 영웅들의 시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 베르길리우
스의 아이네이아스 이야기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의 초석이 다져져 있다.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한 번씩 다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른 책을
좀 읽은 탓인지 너무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신화라는
것을 있는 대로 풀다보면 한도끝도 없으니 이정도가 딱 좋다. (난 두꺼운 책에 약하다.)
책을 덮은 후에는 무언가 계보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다가, 이내 지쳐버린다. 여기저기서 자주
봤던 이야기들을 쭉 다시 보았는데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정리를 하려면 이 책을 두번은 더 읽어야
할 것 같고, 그 의미까지 느끼려면 다른 책들은 물론 해설서도 읽어봐야 한다. 대체 언제쯤 되어야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을 내 안에 품을 수 있을 지 까마득하다. 하지만 그때문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유랑 끝에 로마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다시 평화롭게 살았다는
것은 조금 황당했지만.
원저에도 있는 것인지, 이 번역판에서 다른 저작을 발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도와 북구신화,
그리고 아일랜드 지방의 신화와 전설도 실려 있다.
신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재미가 없다. 문학 시간에 배우던 고전가요가 그렇듯이. 더구나 몇 천년
간을 운문으로 이어져온 이야기들을 현대의 한국에서 사는 우리가 느낄 수 있을 리 없다. 신화의
불합리성 역시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자문하게 한다. (신화에서 합리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그러나 해설서는 재미있다. 특히 해설이 지금 살고있는 삶에도 지침이 될 수 있을 때
더욱 그렇게 느낀다.
던져놓았던 구스타프 슈바브의....4권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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