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5.6
추정컨대 이 일기는 하도 쓸 일이 없어서 대략 1년 전의 일을 재활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슈퍼패미컴을 사기
전이니 PC엔진을 굴릴 때인건 맞지만, 스플래터 하우스와 손손은 4학년 때 한참 즐기던 게임이였고, 이맘때는
PC엔진은 이미 관심에 없고 여름이 되면 슈퍼패미컴을 사리라 벼르던 때일 테니까.
나는 패밀리를 직접 굴린 적은 없어서 갖고있던 게임기 계보를 따져보면 첫 게임기가 대우 IQ 1000(MSX1)였고
두번째가 바로 이 PC엔진이다. 사촌형 집에 놀러갔다가 손손2의 화면을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했고, 울며 떼쓰기
신공(?)을 발휘해서 8시간만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사촌형이 게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수험생이라 가능한
일이였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난 어린것들의 공습에 할 말이 없다.
언제나의 방식대로 손손2와 스플래터 하우스의 스샷을 주욱 깔아보려고 했으나 매직엔진 데모버전의 5분 압박
으로 GG. '이럴바엔 실기로 스샷을 찍자!'라는 각오로 먼지를 털어가며 PC엔진을 꺼냈다.
두둥..듀오일 리가 없지 않은가! 87년에 발매된 가장 첫 버전 PC엔진으로, CPU는 8비트지만 그래픽 프로세서가
16비트이기에 사실상 16비트 게임기로 취급되던 물건이다. 후에 슈퍼 CD-ROM과 CD-ROM^2라는 CD구동 확장
기기가 발매되고, 결국엔 일체형인 DUO까지 발매되기에 이른다. 이곳을 자주 들르시는, 더구나 이 카테고리를
보시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PC엔진의 특이점이라면 당시의 주류였던 롬팩이 아니라 휴카드라는 색다른 매체를 사용했다는 것. 물론
세가마크 3 역시 카드 매체를 사용한 게임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팩이랑 다를 바가 없어 큰 의미는 없었다.
CD-ROM^2 시절부터는 PC엔진이라고 하면 대부분 CD게임을 이야기했지만 간간히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
기는 했다. 철없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은 게임잡지에 나온 멋진 게임(스내쳐, 에메랄드 드래곤)들을 보고
'이거 우리 집에서 되는거다!'친구들에게 우겼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당시 주변에 CD-ROM이 무엇인지 가
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던가..?
트랜스까지 가동해서 힘겹게 전원을 켰지만 화면도 나오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10년 전쯤에 키우던
강아지가 뼈다귀로 착각해서 빈사상태가 된 AV케이블 때문. 겨우 구부리고 맞추어서 화면을 띄우니 날
반기는 옐로 스크린. 하지만 뭐 10년 넘게 겪어오는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이럴 땐 어떻게? 카드라고 팩
이랑 다를 건 없다. 빼서 삽입부의 먼지를 몇 번 불어준 후에 조심스럽게 다시 끼울 뿐...옐로, 화이트, 블
루의 다양한 색상을 경험한 후에야 게임을 구동하는데 성공했다.
화면에 사운드까지 띄웠건만 결국엔 패드가 말썽. 공격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이 패드도 처음에 있던
패드가 고장나서 다시 산 거였는데..듀오용인지 코어 그래픽스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게임기로서
생명을 다했다고 해야 할까나..버튼 고장이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본체 접속부 고장인 것 같다. 게임기는
지름보다 보관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구나..ㅠㅜ
손손2(SONSON 2) 성검전설 2와 더불어 내 생에 최고의 명작게임 중 하나. 타이틀 화면만 보면 NEC어베뉴가 캡콤의 라이센스를
얻어 손손의 속편 격으로 만든 것 같기는 한데..게임을 해 보면 캡콤 수준이고..알쏭달쏭.
잘 짜여진 레벨 디자인과 오소독스한 점프 조작 밸런스, 보스들의 알고리즘도 즐거운 편이고 복잡하지 않게 딱 액
션게임 수준으로 조화된 RPG성, 풍성한 볼륨까지..가정용 액션 게임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픽은 메가드라이브
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 PC엔진 휴카드의 명작은 대부분 슈팅 게임들이 꼽히는데, 액션 중에서는 단연 이 게임이다.
스플래터 하우스(SPLATTER HOUSE)
1988년에 남코에서 아케이드용으로 내놓았던 액션 게임을 PC엔진으로 이식한 것. 기본적으로 좜비물로 시작해서
공포영화에 나올 만한 것들은 죄다 적으로 나오는 게임. 액션성이 괜찮긴 하지만, 그보다는 게임의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게임월드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게임으로, 안에 공략이 실려있는데 3스테이지에서는
'총알 8발을 전부 맞춰도 죽지 않는 강력한 보스'(총 2정을 바꿔들고가서 11발을 맞추면 그대로 골로 간다.) 5스테
이지에서 구해낸 주인공의 애인 제니퍼가 갑자기 괴물로 변한 장면에서는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말을
끝으로 공략이 끝난다.(이 게임은 7스테이지까지 있다.) 그런 것이 공략으로 통하던 1990년 8월이였다.
제니퍼의 변신 장면은 지금봐도 슬프다. 막상 공격해 오면 결국 죽이게 되는..
실물 휴카드는 교환해버린 지 10년이 훨씬 넘은지라 루리웹에서 발견한 오픈케이스를 실어본다.
대우에서 정식 발매한 PC엔진 셔틀용으로 정발된 스플래터 하우스
아아 그리워라.. 매뉴얼에는 대략 이런 시놉시스가 적혀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XX박사는 몇 년간의 실험으로 생물들을 만들어냈으나 그들에게 살해당하고 몇년 후,
여행을 갔던 릭과 제니퍼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제니퍼는 괴물들에게 잡혀가고
정신을 잃은 릭이 깨어났을 때, 그의 옆에는 하얀 가면이 있었다. 어쩌구저쩌구..'
공략에 '굉장히 강력한 필살기술' 로 소개되었던 슬라이딩 킥. 점프 후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 + 공격 키를
누르면 나간다. 자코를 쓸어버릴때는 유용하지만 보스에게 쓰면 데미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필살기는 아니다.
저작권 문제인지 북미판에서는 릭의 가면이 보라색에 피에로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다. 몰입도 대폭 하락.
2스테이지 보스 폴터가이스트. 아마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를 소재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샹들리에, 칼, 벽의 그림 순으로 공격해온다. 유니크한 움직임을 어떻게 봉쇄하느냐가 관건.
눈깔액자랑 한참 싸우던 중에 게임이 멈췄다. 그렇다. 매직엔진 데모버전은 5분의 제한시간이 있다.
변신물도 아니고...누군가 정식버전을 주시면 손손과 이 게임의 충실한 리뷰를 포스팅하기로 약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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