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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영화, 전시

[미술전]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by 일본맛탕 2009. 7. 19.

자타공인 미소년 김선생님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르누아르전을 보러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열심히 줄을 서서 입장하고 오디오가이드를 빌렸다.
미처 예습을 하지 못하고 관람하게 되어서 쵸큼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오디오가이드 덕분에 안심! ㅎㅎ

격동의 시대에서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결코 절박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다소 비현실적일 정도로 일상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화폭 속에 담았다는 르누아르.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어야 한다'는 예술 철학으로 평생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감상하는 동안에는 과연 어떤 게 행복한 그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서지는 빛과 볼이 발그레한 소녀들, 밝고 알록달록한 색감은 확실히 따뜻한 느낌을 주었지만, 행복한 그림이니만큼 그림 속 여성들의 표정도 응당 환희에 찬 유쾌한 표정일 것이라고 추측한 내 기대가 무너져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인물들의 표정은 그냥 평범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굉장히 평온해 보였다. 아! 그래... 평온이다. 환희가 아닌 평온.

르누아르가 생각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흥분이나 환희와 같은 일시적인 격정이 아닌 평화롭고 따사로운 분위기, 꾸미지 않은 표정. 인위적이지 않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어려운 일이니만큼 어떻게 보면 그의 그림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는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 성립되지 않는 인체도 종종 표현하고 있다는데, 그만큼 화가 본인이 절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아름다움을 고집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보러 가기 전엔 르누아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곳곳에 있는 그의 일대기를 읽어 보니 끌로드 모네와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그와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끌로드 모네라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그의 첫 아내인 까미유 모네가 생각난다. 수많은 그림에 등장하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거나 파라솔 따위를 들고 있던 까미유. 그리고 그녀의 임종까지도 화폭에 담았던 절박함. 빛의 화가라 불리던 모네가 종반에는 백내장을 앓으며 빛의 왜곡을 서서히 보여 주던 모습과 더불어,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이었고 격렬하기까지 했던 모네와 비교하면, 르누아르의 그림에서는 이상향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리며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평생의 후원자이자 든든한 친구였던 뒤랑 뤼엘, 존재 자체만으로 유쾌해진다던 친구이자 화가 알베르 앙드레와 그의 부인과 같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마음은 따뜻했던 화가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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