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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기장

그간의 잡상(11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1. 17.

 사내 PT가 끝났다. 만든 것의 20%도 보여주지 못했던 8월의 그 날과 비교하면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의 50%도 구현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버전이라는 점에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됐기 때문에, 게임의 기조를 유지하고 공유해 나가는 것
이 그것을 설정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해졌다. 마음맞는 대학생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기획서도 없이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꿈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야말로 동인 게임계에서나 가능한 이야
기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창고에서 애플을 만들어낸 것이 창세기 이전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게임업계는 그보다 속도가 몇 배로 빠르기까지 하다.

 써놓고 보니 이런 말, 게임 기획관련 서적이나 소프트웨어 개발론에서 항상 나오는 단골 멘트다. 수많
은 책들에서 이런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역시나 그런 건 읽어서는 알 수가 없다. 몸으로 겪어야 왜들
그러는지를 몸소 깨닫게 된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게임 개발팀도 하나의 사회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려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때로는 정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구성원 각자가 자기자신이 원하는 것
만 쫓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상위 컨셉이 꼭 필요하다. 질서 유지를 위해 헌법이 만들어지
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가 정말로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게임문화에서 나온 '게임왕국 일본을 건설한
거인들'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개발환경이 태동하기 시작한 2001년에
기계어로 코딩할 시절의 이야기를 읽고 결심을 했으니, 나는 전설을 쫓아 무작정 집을 나선 소년이나 마
찬가지였다. 떠나자마자 이내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 더 아쉽지만.

 뭔가 개발 서적이나 쓸 듯이 휘갈겨 놓았는데, 아직은 경험과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빨리 방학이나 해야 하고싶은 것좀 하며 살텐데..이래서야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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