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일기장

교수님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2. 5.
 일문학 수업을 듣다 보면 경이로울 때가 있다. 강독이나 독해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님들은 대개 일본에서
10년 정도 공부하다 돌아온 분이 많은데, 와카나 만요슈, 모노가타리의 자구 해석 등을 가지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는 것은 박사학위의 소유 여부를 떠나 존경할 만하다. 문학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을 가지는
요즘이지만,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도대체 교수 자격이 있는건지 의심되는 사람도 있다. 복학 직후 한참 공부에 올인하던 작년 1학기,
5~6페이지에 달하는 매 과를 항상 노트에 한자까지 옮겨적고 예습해 간 뒤 수업을 듣곤 했는데, 강사(나는
자격이 없는 교수/강사에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의 해석 수준이 딱 전자사전을 가진 나와 똑같았다.
그나마 나는 예습이라도 했지, 수업시간 내내 계속되는 의미없는 직역에는 두손 다 들 지경이였다. 내가 예
습하는 동안 모르는 것은 강사도 몰랐다. 허허..

하루는 이런일이 있었다. 수업중 손을 들어 질문한 나는..

   나: 교수님, 여기서 もっとも의 뜻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말할때는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강사: 그래요? 잠깐만요..(당황)
        ...
        ...으음..
        ...
        ...음..이게 뭐였더라..제가 다음 시간까지 알아 올께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질문했던 것은 尤も로, 주로 쓰이는 '가장, 제일'의 뜻인 '最も'와 달리 '지당함,
당연함'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였다. 사람은 사전이 아니니까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외나 해야 할
그런 실력이라면 예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듣자하니 어학 계열의 석사 학위정도 딴 듯 한데, 성적은
A+을 받았지만 아무것도 배운 것 같지가 않았다. 강의 평가서를 전부 OTL로 도배했지만, 그 강사는 올해도
강독 수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수업듣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년의 재탕..더 큰 문제는 그런 강사가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무서운 세상이 됐다. 단어 하나 이상하게 설명하면 학생들은 즉석에서
코지엔을 찾아 웅성거리고, 이내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대니 얼마나 난처하랴. 하지만 2학기 때 다른 교수
님한테 강독 강의 를 들으면서 전자사전이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교수님은 머릿속에 코지엔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설명에 여유가 있고, 해석에는 주관이 있었다. 교수는 그런 사람이 하는 거다. 적어도
교양이 아닌 전공 필수 과목에는 말이다.

 그런 레벨을 넘어선 교수님은 두 가지 유형중 하나다. 하나는 자기가 공부했던 문학의 정취를 관심없는 학생
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유형과, 날로 먹는 수업을 하면서 학점도 잘 안주는, 연구나 해야 할 유형이다.
작년 1, 2학기 독해 수업을 첫번째 유형의 교수님에게 들었는데, 문학, 특히 일문학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는
나도 작품의 정취에 빠져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수업을 들으면 비싼 등록금이 아깝지 않다.



 내년엔 유재원 교수님의 강의가 다시 개설되어야 할 텐데...강의에서 인생을 배울 기회도 있다.



 

'사는 이야기 >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절학기 타임 어택  (0) 2006.12.25
알송 쓰다가 슬퍼질 때  (0) 2006.12.23
슬픈 인터뷰  (0) 2006.12.05
그간의 잡상(11월)  (0) 2006.11.17
주말은 간다 (잡상 종합 선물세트)  (0) 2006.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