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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괴짜경제학

두릅이 2008. 9. 27. 14:43
 
 몇 주 전 내가 기안한 정책을 가지고 논의를 하던 중이었다. 내 기안 중의 하나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
보상을 주는 것이었고, 나는 동기유발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정도의 보상은 오히려 행
동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반박에 더이상 주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첫 번째 장에서 '인센티브'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에피소드가 바로 내가
위에서 들었던 반박의 근거이기도 했다.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 때문에 3달러의 벌
금 제도를 실시했더니 오히려 지각이 늘어났다는 것. '죄책감'은 경우에 따라 강력한 강제 수단이 될
수 있는데, 지각이라는 3달러의 가치를 매김으로서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3달러의 비용을 지불
하고 지각을 한 것이다. 상대방이 의견의 근거로 제시했었던 내용을 책에서 발견하니 참 반갑기도 하
고, 그 때의 내 기획에는 대단히 근거가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었고 한편으로 씁쓸했던 부분이,

 약물 복용이 들통난 운동선수들은 대개 비난을 받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적어도 그의 동기만큼은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규칙을 어겼겠는가. (야구선수 마크 그레이스가 말했듯이, "부정행위
를 저지르고 있지 않다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지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운동선수
는 명예의 전당 대신 지옥의 전당에 떨어지게 된다. 
 P.62 스모 선수와 승률 중에서..

 그래서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서 도핑 물약은 주 수익모델이고 어뷰징은 처단의 대상이다!!

....라고 결론을 지으면 좀 바보같은가?

 우리는 물약을 사용한 선수들의 팬이 아니다. 최대한 정당한 경기를 유도해서 재미를 주어야 하는데, 초기
기획 단계부터 도핑 물약 사용을 고려하고, 유저들이 그것을 많이 사도록 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다시금
느껴졌다. 앞으로 '재미'를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교사와 스모 선수의 부정행위, 마약 판매상의 일생, KKK단..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너무 흥미진진해서
읽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랄까? 저자가 '경제학'적으로 접근
한 과정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책에 경제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지만..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읽을 때처럼.

 마지막 챕터인 이름에 의한 운명 분석은 다른 챕터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가장 많은 테이블이 사용되지만
얻어낸 결론은 '상류층에서 사용된 이름은 하류층으로 전파되고, 상류층은 곧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라는 것. 분석 과정은 대단하지만 얻어낸 결론은 굳이 통계가 필요 없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저자도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는 세상의 '이면'을 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이면을 보려면
상식과 통념을 깨야 하는데, 그것은 여간해서 쉽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에 기반한 생각이 필요하다.
책의 모든 내용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중에서 유의미한 케이스를 필터링해서 다시 검증하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된다.

 사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통계를 잘 모르지만 분석 도구는 어떻게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분석의 '기준'이다. 계산은 고민할 것이 없지만 기준을 세
우는 데에는 별 수 없이 논리 대신 직관이 개입한다. 때문에 '기준'을 잘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분석 경
험이 필요한 것이다. 계산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온라인 게임기획의 경우에는 항상 '예측'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준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미
벌어진 일을 분석하는 데에도 기준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시뮬레이션하는
데에는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유저는 매 번 예상을 뛰어넘는다!)

 데이터에 기반한 추론 과정에서 얻어지는 통찰에 경탄하면서, 세상을 곧이곧대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유저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 기획자의 입장에서 이런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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