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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기장

레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8. 9.
 내가 어렸을 때 사촌누나는 나를 엄청 귀여워했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내가 이모네 집에 맡겨졌을
때 누나는 내가 너무 귀여워서 데리고 놀다가 고입시험을 망쳤다나 어쨌다나..초등학교 저학년 동안은 방학
때 이모네 집에 가서 누나랑 지내곤 했다. 누나는 내가 갖고싶어하는 장난감을 다 사줬는데, 이상하게 레고
는 항상 사줄 기회가 없었다. 친구네서 만들어봤던 레고가 너무 갖고 싶어서 누나한테 사달라고 하면 누나는
'그거 사려면 잠실까지 나가야 되. 오늘은 시간없어' 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이모네 집이 지금 지내고 있는
암사동의 이모네 집이다. 재건축하느라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옮기긴 했지만.
 그 때 초등학교 1학년이였고 6살 이후로 줄곧 인천에서만 살았던 내가 잠실이 어딘지 알 리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레고를 사려면 잠실이란 곳에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1년 후 누나가 나를 롯데월드에 데리고 갔을 때 개장 2주년이라고 크게 써붙여 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이 바
로 잠실이였지만 롯데월드에 정신이 팔려 레고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이렇게저렇게 레고는 빗
나갔고 게임에 푹 빠진 후부터는 장난감을 갖고놀지 않게 되었다.

 그제가 조카 생일이라서 선물을 뭘 사줄까 하고 끙끙대다가 레고가 떠올랐다. 그 조카는 위에 쓴 누나의 동생.
그러니까 사촌형의 아들인데, 미운 일곱살이라 솔직히 귀엽다기보다는 피곤하다. 누나는 내가 그 나이때 나를
그렇게 귀여워했는지..그래도 좋은 장난감을 선물해주고 싶은 건 누나가 지금 미국에 있어서 뭔가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레고를 사기로 결정을 했고 그제 퇴근시간이라 밤늦게 딱히 살 곳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렸
는데, 거기가 바로 '레고를 파는' 잠실이였다. 롯데마트에서 레고를 사가지고 위로 올라오는데 거기가 롯데월
드. 개장 17주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지나갔나..허허. 누나가 언젠가는 잠실에서 사 오겠지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억도 이미 15년이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레고를 사고 있다. 아무도 없
는 롯데월드 시계탑 아래에서 나도 모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느낌을.

 레고는 생각보다 꽤 비쌌다. 어렸을 때 수많은 장난감을 접한 기억으로 박스 크기를 보면 이만한건 만원, 이만
한건 2.5만원 정도로 견적을 뽑을 수가 있는데 레고는 만원 크기의 박스는 2.5만원, 2만원 크기는 5만원 정도였
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가 레고를 사주지 못한 건 가격 때문은 아니였나 싶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집 여러채
랑 나무랑 사람도 많~은 걸 사줘'고 조르곤 했는데, 지금 시세로 보면 그런 세트는 15만원 정도는 할 거 같으니..

 포장을 뜯어본 조카는 뛸듯이 좋아하기보다 너무 어렵다고 '삼촌 다 만들어줘!!'하고 심술을 부린다.  어렸을
때의 나였다면 그냥 좋다고 방방방 뛰었을 텐데..뭔가 아쉬운 기분도 들고....할 수 없이 아침마다 출근 전에
만들어주고 있다.



 
너무 재밌다-_-;;



내가 사준건 이녀석. 표지의 드래곤은 물론이고
전갈도 만들고

킹기도라도 만들 수 있는데 얼마나 재밌나!!


이거 완전히 내가 갖고놀 선물을 사준 기분이 들어서 조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계속 이러다간 아무래도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지를 것 같아 고민이다. 데스 스타는 30만원이던데..OTL..
자세한 것은 레고 홈페이지 를 참조합시다.

상념에 젖은 글을 쓰다가 개그가 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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