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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무서운 용팔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7. 18.
 y님의 덧글에 갑자기 기억난 용산의 추억.

 2000년 3월. 수험생인 나는 게임에 대한 욕구를 달래고자 원더스완을 사러 용산에 갔다. 중학교때부터의
패턴대로 나진상가에선 구경만 하고 전자랜드 지하에서 물건을 샀는데, 인상적이였던 2가지 사건.

 원더스완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옆에 와서 PS2를 구입하고 있었다. 같이 사는
게임은 드럼매니아와 드럼콘. 그저 부럽다...하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백만원짜리
수표를 꺼냈고 받는 거스름돈은 만원짜리 10장 이하였다. 입이 딱 벌어져서 겜점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PS2 84만원...OTL. 고3이라 어차피 게임기를 할 시간도 없었지만 마냥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윽고 틀어놓는 결전 오프닝을 보면서 차세대의 차세대가 시작됐구나..하고 감상에 젖은 순간,
아주 마음착해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10분만에 게임기를 사갔다.


아저씨: 우리 애가 오락기를 사달라고 하도 졸라서...요즘 나온 좋은 거 있나요?
용팔이: 아이가 몇 살인가요?
아저씨: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요
용팔이: 아, 그럼 이게 좋겠네요.(무언가를 꺼내든다)
아저씨: 이게 요즘 잘나가는 건가봐요?
용팔이: 네, 기본으로 52가지 게임도 들어있고 제가 서비스로 게임 하나 드릴께요.

이쯤에서 숙련된 게임 키드는 예상하겠지만 그 게임기는 '패미컴 호환기종' 이였다.
꺼내든 팩은 이름모를 국산 바둑 게임.

아저씨: 음..바둑이라 제가 바둑 좋아하니 잘됐네요. 그런데 이거 얼마죠?
용팔이: 요새는 가격이 많이 내렸어요. 9만원에 팩까지 가져가세요.
아저씨: 아 가격이 꽤 싸네요? 자 여기요. 우리애가 좋아하겠네.


나      : ...............(속으로 이런 생각을 백만번도 더 했다.)










                                                       그거 5년 전에 5만원이였거든!?       

                         
 그리고 몇 분이 더 지난뒤 나는 원더스완과 로봇대전 컴팩트를 받았다. 돈을 내면서 용팔이를 다시한번
주의깊게 쳐다보았다. 한 가지 질문으로 고객의 소비수준을 단번에 파악한 후 최고의 수익성을 가진 게임기를
팔아먹는 그 상술은 사기를 초월하여 그저 대단해 보일 뿐이였다. PS2야 희소성이 있고 일본에서도 프리미엄이
꽤 되니 84만원 받아서 많이 챙겨봐야 10만원 정도겠지만, 패밀리 호환기종은 내가볼때 반입가가 2만원도 안될
것 같았다. 수익률만으로 보면 무려 300%대를 챙겨먹은 거다.


 따지고 보니 더욱 놀라운건 나온지 일주일 된 게임기와 나온지 16년 된 게임기를 20분 사이에 모두 팔았다는 사실.



이래서 용산에 롯데리아 생겼을 때 '치즈버거 세트 얼마까지 해줘요?' 하는 유행어가 돌았던 게 아니였을까..?
부담스러운 호객행위와 가격수준이 전혀 맞지 않으면 딴데 가서 사라는 등의 횡포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뿐이고 인터넷으로 가격정보가 공개된 마당에 예전처럼 사기칠 일은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새는 역사에서
나가는게 너무 멀고 귀찮아서 용산에 가질 않는다. (국전 올라가기도 귀찮은 마당에..)

*물론 이런 가게가 다는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깔아둔다. 하지만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