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
이야기 1
아버지가 없다. 이것은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로, 있는 것이 더 어색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도 한 10년 이상 지난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과음한 채 나는 울면서 내 자신에게 자백하고 말았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새싹이를 나처럼 만들지 않겠다고. 꼰대같다고 생각한 그런 마음가짐을 내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강한 척 했지만 사실은 나약한 나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그리고 내가 하고싶은 대로 자라게 한 어머니 덕분에 나는 내 성격에 비해 주도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 아들은 어떤 사람이 될까? 나와는 분명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갈 텐데 말이다.
나와는 다른 삶을 주도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은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까? 그 전에 내가 어떻게 되도록 이끌겠다는 생각이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들지도 모를까 싶기도 하고..어렵다. 판단 보류.
이야기 2
게임기획 일을 시작하고 5년쯤 지난 뒤,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강렬히 받았다. 정확히는 이 사람에게 너무나 배우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첫 프로젝트의 선배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 쓰는 초식의 거의 대부분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 방식이 거의 온 디멘드였을 뿐. 그래서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때 찾아서 연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꼭 배우고 싶었던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후,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다시 접었다. 그냥 잠시 나약해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들었고, 내가 그냥 팬질을 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 전 처음으로 소위 '부사수'라고 일컫는 친구를 내 밑에 두게 었다. 게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없이 열정만 가지고 시작했던 나와는 달리,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기초를 가졌고, 열정도 누구못지 않다.
아직까지는 지금 만드는 게임에 대한 문답을 몇 번 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친구에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신도 엄청 열심히 달려왔지만, 내가 좀 더 빨리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 1 때와 마찬가지로 첨삭과 방임 사이에서 어떻게 할 지 고민했지만, 이 경우는 결론을 내렸다. 첨삭하기로. 그러면서 나도 같이 배우기로.
부자와 도제 관계를 동시에 각각 시작하게 된 요즘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