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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그 많던 커뮤니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모임이라는 것의 단계 part 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1. 8.

지난번엔 모임이라는 것의 단계, 그러니까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이번에는 커뮤니티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변해왔고 또 지금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 볼까 한다. (물론, 이 글에서 말하려는 '커뮤니티' 란 대부분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동인'
들이 난립하는 일련의 커뮤니티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난번에 다루었던 '커뮤니티' 는 위에 언급한 대로 인터넷망의 보급과 함께 기존 통신망의 동호
인들이 새로운 클럽으로 재편되면서 빠르게 확산되며 신규 동호인을 끌어들이던 1999년~2001년
에 만들어진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짧은 나의 지식 안에서 커뮤니티라는 것의 세대를 구분해 보자면..


1세대 - 초기 KETEL 시절 소수의 PC사용자(모뎀을 따로 구입해서 PC에 설치할 수 있었던)
들의 커뮤니티.

2세대 - PC의 보급과 함께 14.4 내지 28.8k모뎀이 기본 채용되면서 늘어난 PC통신 유저가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서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

3세대 - 인터넷망의 보급과 함께 신규 회원을 끌어들이며 규모와 회원 수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룬 시기. 커뮤니티 회원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이야기하고, 인터넷 채팅에서 다시
커뮤니티의 신입 회원을 이끄는 작용 반작용이 이루어진 시기.

4세대 - 개인 인스턴트 메신저의 출현 및 커뮤니티의 성숙으로 커뮤니티 자체가 생활의 중심
에서 멀어지고 블로그(우리나라의 경우는 싸이월드)의 보급으로 인터넷 생활 단위가
커뮤니티에서 개인으로 옮겨온 시기.

나는 2세대 즈음부터 네트워크 커뮤니티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3세대에 비로소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4세대에서는 새로이 재편되는 인터넷 문화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지 블로깅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3세대에서 편입된 많은 동호인(이 글에서는 주로 게이머)들은 넷 상에서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동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했을 것이고, 항상 혼자
자신의 취미를 즐기다가 비로소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는 문화에 익숙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나우누리로 PC통신을 접하고 게임 동호회에 들어가 보았을 때가 중학교 2학년이였는데 나
역시 그곳에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박사였고 게임에 대해서 나만큼
아는 사람은 대략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네트워크 속에는 게임을 하다가 이미 일본어
를 독파한 사람은 물론 질려버릴 정도의 코어 게이머도 있었고 자칭 게임박사였던 내가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게임 지식이 풍부한 사람 또한 있었다. 세상은 참 넓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을 때였다.

지금 내가 2세대를 추억하고 있듯이, 그때 그곳에는 1세대를 추억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그들은
일단 그 시기에 개인 PC를 자기 손으로 모뎀을 설치하고 세팅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2세대
,3세대인 우리들이 느낀 충격도 어마어마했는데 PC라는 물건이 고가의 교육용 기기이던 시절에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대학생층의 코어 유저였다)

추억은 아련할수록 더욱 빛나는 법. 누구나 자신이 처음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할 때가 가장 즐거웠
던 때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코어 게이머의 집합소이기도 했던 2세대의 PC통신 때
보다 코어 유저와 라이트 유저가 한곳에 몰려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던 시기(2000년 전후)
가 가장 괜찮았던 시기가 아니였나 싶다.
인터넷의 폭발적 보급 증가로 국가는 IT산업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고 닷컴 폭풍이 일었다. 우후죽
순으로 vod서비스를 내보내는 인터넷 방송국이 난립하고 대형 포털 사이트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
했다. 커뮤니티는 새로운 만남이였다. 일단 한가지 주제로 커뮤니티를 만들면 비슷한 취미를 공유
하는 사람들이 일정 이상 모여들었고 자유로운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남보다 조금 더 PC실력이
있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세대에서 3세대로 옮겨갈 때의 엄청난 물리적 변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3세대 커뮤니
티 문화는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PC의 사양도 크게 변한것은 없고 인터넷 인프라도 약간의 발전을
이룩했을 뿐인데 인터넷 커뮤니티가 꽃피웠던 수많은 만남과 토론의 장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채팅 사이트도 피폐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려면 온라인 게임을 다운받고
접속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아바타를 통한 대화만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3세대의 빠른 몰락과 함께 이루어진 4세대. 이젠 일기를 종이에 쓰지 않는다. 종이로 써서 몇 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는 일기는 어떤 책보다도 재미있지만 쓰자마자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일기의 재미는 따라갈 수 없다. 사람들로 북적댔던 커뮤니티는 이제 없고, 메신저의
친구 목록만 늘어나 있다. 새로운 일기는 새로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되고, 거기서 예전에
커뮤니티에서 알던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집단 규모의 커뮤니티 문화가 개인 규모의 블로그 문화로
재편되는 순간이다. 블로그의 성장과 더불어 접근성이 낮은 개인 홈페이지도 서서히 문을 닫게 된다.
친구등록이 안되는 홈피는 이제 홈피의 생명력을 더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글루스라는 것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올해 초였지만 이 이글루스에 2세대에 알았던 사람들이 여기로
옮겨와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안 사실이였다. 파란 화면에 실명 이름이 포함된 아이디로 글을 쓰던 사람
들이 개인 블로그라는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기분이랄까. (아쉽게도 2세대때 활동을 활발히
한 것은 아니라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서도..)

짧은 소견으로 커뮤니티에서 블로그 문화로 옮겨오는 과정을 끄적거려 보았다. 내가 4세대라고 칭한
현상들도 이미 옛것이 된 지 오래일 지 모른다. 어떤 문화가 또 우리를 새로운 집으로 이사시킬까?
그때 만나는 모습은 또 어떠할까?

어쨌든 찬란했던(?)3세대 문화가 나의 군복무 기간동안 스러져 간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