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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

[책] 항우와 유방 1/2/3 (시바 료타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2. 2.
 다 읽고나서 새삼스럽게 다시한번 느낀 건데, 초한지를 각기 다른 버전으로 3번째 보면서도 나는 사면
초가의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아군이 모두 떠나고 사방에 빈 초가집들 뿐이라 사면초가였나...하고
얼핏 생각한 정도. 왜 그런고 했더니 고우영의 초한지도 마지막 권을 읽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 이유
가 7권까지 읽고 왠지 제대로 된 원전을 읽고싶은 마음에 이 책 1권을 빌려온 탓이었는데..무슨 일로 바빠
서인지 부리나케 읽고 덮어둔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서 초한지 자체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바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시간이 남는 요즘인지라, 2권
을 주문해서 읽고, 3권은 YES24와 반디앤루니스 죄다 품절이라(잘 팔린다기보다는 절판 분위기인데..) 강
남 리브로에서 겨우 3권을 찾아냈다. 그리고 또 후다닥. 확실히 소설은 읽으면서 생각을 덜 해도 되기 때문
인지, 빨리 읽을수가 있다. (그래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토지 같은건..ㄷㄷ)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의 문체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고
우영 옹 버전보다 좀 더 원전의 내용을 파고들고 싶어서 읽은 것이었는데, 극적인 장면들에 대한 세부묘사
가 너무 부족하다.  오히려 썰(?)을 푸는 부분이 고우영 옹 버전보다 지나치게 많다. 내용의 반 정도가 사실
보다는 인물평이며, 그에 더해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항우가 정이 넘치고 대의명분을
중시하지만,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포악해진다는 이야기를 10번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인물평이 줄줄줄 이어지다가 중요 인물들의 죽음이라는 사실은 두어 줄로 처리될 때 꽤나 언짢았다. 
역시나 인물이 죽은 후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고우영 옹 식의 해석과 상치되서 거부감이 드는 건지도..

 전반적으로 은영전을 읽을 때 자주 나오는 '후세의 역사가들은..'식의 문체를 보는 느낌이 드는데, 은영전
이 다나카 요시키의 머릿속에서 창작된 것이기에 그럴듯하게 들리는 반면, 이 경우에는 원전이 있고, 저자
의 판단에서 좀 주관적인 면모가 느껴저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는
데, 근대나 근세의 상황까지 예를 들어 '후세엔 이러이러했다'식의 서술이 많다. 그런 점은 나름대로 신선
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전반적으로 원전을 단순히 개작했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초한지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고전을 제대로 읽으려고 하는 나의 욕구와는 완전히 상충된 것이었다. 도리어 초한지를 질리
도록 읽은 사람이 또다른 시각을 느끼고자 할 때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사이드 라벨에 있
는 '원전 초한지의 감동을 느낀다!'는 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