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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

[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3.



 어제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데, 나이 지긋하신 택시기사 아저씨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 :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면서 왜 이렇게 무법이 난자하는 걸까 학생?"
나       : "글쎄요..왜일까요?"
아저씨 : "나는 내 아들한테 세상은 법대로 사는 거라고 가르쳐 왔는데, 세상이 이래서야
             어디 말이 되나? 젊은 사람들은 어른을 보고 쌍 욕을 하고 말이야..."

 아, 이야기 늘어놓기 좋아하시는 어른이시구나..하고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 : "이렇게 된 게 왜인지 알어? 이 나라가 박정희 때부터 쿠데타에 하극상으로 시작
             됐기 때문이야. 박정희 때부터." "신군부는 더했지, 전두환이..."
나       : "아저씨 실례지만 고향이 어디신가요?"

 아저씨 고향은 역시나 호남 지역이었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요새 알아가고 있는 광주
이야기
를 꺼냈다. 또다시 아저씨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야기를 듣다가 놀란 것이,
아저씨가 말하시는 투나 강준만씨가 누군지 모르는 것으로 봐서는 사료를 뒤진다거나
할 리는 없는데, 하시는 이야기가 아래의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
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개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
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버렸다.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가슴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P.125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된 거리 내용 중에서..

 아저씨는 이어서 광주 학살이 정말 끔찍한 이유가 신군부가 모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고,
이후의 언론 통제가 계속된 지역 감정을 유발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 역시 책의 내용과 거
의 일치한다. 캐나다에는 방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내릴 때까지 아저씨와 많
은 이야기를 했다. 학생같은 친구들이 많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머쓱하면서 왠지 아쉬운 생
각도 들었고..

 광주 학살이 정말 끔찍했던 것은 '관객의 부재' 였다.

 "여기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 곳에서는 모른다
는 것이다. 서울의 풀브라이트 담당관인 마크 피터슨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
다. 여기 모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채 비탄에 잠겨 있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다른 지역) 사람
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을 수 없을 것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P.140 당시 광주에 거주했던 인류학자 리나 루이스의 이야기 중에서..

 광주 사태가 끝나갈 무렵 벌어진 양민 학살은 더하다. 그냥 죽인거다. 아무 이유 없이..

 지난번 광주 이야기를 할 때는 딱 여기까지 읽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 후의 이야기는 더 황당
하다. 언론 탄압을 넘어 언론 통제가 대한민국 사회를 얼마나 부패시켰는지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하는 걸까?

 1권은 위에 말한 광주 학살과 그 이후의 언론통제 내용이 전부다. 아저씨의 이야기나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호남인들의 편견'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이 책은 객관적인
관점의 역사서라기 보다는 하나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책이다. 현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는 언
제나 생각해야 한다. 이런 글을 보면 또 다른 생각도 들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책에 울분이 있을 망정 과장이나 허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빨갱이 논리 끌어다
붙이지 말고 사실만 가지고 80년대에 벌어진 사실만을 이야기해보자. 과연 몇이나 나와서 떳떳
하다고 할 수 있을지..

 국사책은 근대사까지만 보고 현대사는 이 책을 보길 추천한다. 특히 '보수주의'라는 입장으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변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동의하라는 뜻이 아니고, 사실을 알자는
취지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