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인문

[책] 입시 공화국의 종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11.


 잘 만들어진 게임, 재미있는 영화, 긍정적인 현상을 두고 왜 좋은지를 설명하기는 대단히 쉽다.
쓰레기 같은 게임, 너무도 따분한 영화, 욕을 먹는 사람을 두고 왜 나쁜지를 설명하기는 훨씬
더 쉽고, 공감을 얻는 것 역시 쉽다.

 이 책, 제목부터 대략 눈길을 끈다. 조금 훑어보면 꽤나 심각하게 썩어있는 입시 중심의 사회를
비판한 탓에 꽤나 읽을 만 해 보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흥미진진한(?) 내용과 신랄한 비판이
계속되기 때문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이건 칼럼이나 사설로 한마디 할 일이지 책으로까지 쓸 수준
이 아니라는 것. 물론 이 더럽고 추악한 현실이 반복되는 한국 교육계를 비탄하는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 다양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이라는 데에는 100% 동감한다. 

 특히 대입 논술에 출제되는 문제가 대학원 수준의 철학문제이고, 정작 대학에서는 토론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현실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읽으면서 곱씹어보니 정말 신입생, 아니
재학생 중에도 그런 예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너무 흥분했다. 말리고 싶을 정도로. 이건 신랄한 비판이 아니라 격앙된 감정이다. 표현
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무엇보다 단정해 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계속되는
저자 특유의 점층법(?)을 계속해서 볼 때엔 그야말로 짜증이 샘솟을 정도.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한국 사회가 '인재'를 기르는 기본 공식은 학생들을 어린 시절부터
전 사회적 차원의 거대한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며 처벌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수의를
입은 채 획일적인 공부 기계로 주조된다. 그들은 기계 인간으로 주조된다.
 p.31, '몸을 구속하는 교복'내용 중에서..

 했던 말 또 하는것도 지겨운데 반복하면서 점점 격앙되어 간다. 애들이 노예로 갇혀서 감시와 처벌
을 받는다는 표현을 10번은 본 것 같다. 미셀 푸코의 저작을 너무 감명깊게 읽으신 건지.. 
 

 책 내용 대부분 맞는 지적이고, 이론적 근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장해서는 감화될 사람은
그다지 없다. 태도 자체가 '이거 정말 문제이니 바꾸어보지 않을까요?' 가 아니라 '우매한 대중들이여
언제까지 이러고 살텐가?'식이니 말이다. 디 워 토론떄의 진중권 교수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
맞는 말이지만, 그 논리에 따르면 디 워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문화적 우민'이 되니, 당사자들에게
어디 받아들여지겠는가?

 대안으로 내놓는 정책은 지극히 이상적인 것들이고(대학 서열을 철폐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
다.) 그 근거는 대부분 저자가 독일 유학시절 겪은 것과 프랑스의 예, 그러니까 유럽식이다. 교육 문화
가 유럽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대학이란 것이 태동한 역사만 보아도 지당한 일이다. 사유를 중시
하는 그들의 문화와 다른 우리의 특성은 애초에 고려도 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교육 방식을 정답으로
가정한 것 같다. 정답과 획일화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 책의 요지인데 말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입시제도에서 대학,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정말 광범위하게 깐다. 원인은
모두 교육 제도에 있다..이긴 한데 이래서야 대한민국은 그냥 사람 살 곳이 아니다. 

 수능 본지도 꽤 지났고 대학의 현실에 한탄하는 입장이다보니 현재 대학의 이야기들을 적어놓은 데에
는 으레 공감이 갔다. 하지만 여기서도 격앙된 감정때문에 반감이 일어났다. 

 한번 생각해 보라. 과연 한국의 그 어떠한 교수님이 이러한 과제를 내고, 학생들에게 기초 학문
으로서 그리고 비판 정신을 길러줄 수 있는 철학 교육을 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도 1학년 1학기에
말이다. ...(후략) 
p.220 '제대로 된 대학 교육' 중에서

 이 대목에서는 나조차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저런 교수님은 한국에
있다. 내 눈으로 목격했으며, 그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카페를 알려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단정짓고, 쉽게 퍼부어버리는지 모르겠다.저자가 느낀 경험을 나도 느꼈고, 그래서
존경하는 교수님이 있는데, 한국에는 그런 교수님이 없다니 화가 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래서
야 '너 잘났다', '그럼 독일가서 살아라' 라는 냉소적인 비판이 나와도 저자는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의 교육 문제라는 것이, 10년 후가 끔찍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에서 가치가 있었다. 교육용 게임을 만드는거야! 하고 생각(만)해본다..
저자가 2004년에 쓴 '위장된 학교'는 카테고리만 봐서는 이 책과 유사하고, 무려 360페이지라는데..
훑어봐서 결국 이 책이랑 같은거면 정말 화낼거다 -ㅅ-